감자와 고구마는 대표적인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예부터 서민에게는 고마운 먹거리였다.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일년 농사를 망치면 농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감자나 고구마를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 최근에는 다양한 영양소를 함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강식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감자는 ‘허니버터칩 열풍’으로 인해 요즘엔 ‘금(金)자’로도 불릴 정도다. 고구마는 달콤한 맛으로 겨울이 되면 별식으로 대접받는다.
감자는 가지과의 다년생 줄기채소로 원산지는 남미 안데스 지역인 페루와 북부 볼리비아로 알려져 있다. 주로 온대 지방에서 재배되지만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아 그린란드에서도 자란다. 1570년대 신항로 개척으로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도입됐다. 초기에는 감자가 나병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돌아 악마의 작물이란 불명예를 안기도 있다. 18~19세기 세계적으로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인구 부양문제가 떠오르면서 값 싸고 실용적인 농작물로 자리잡았다. 프랑스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감자꽃을 머리 장식으로 사용할 정도로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다. 중국에는 명나라 때 옥수수, 고구마 등과 함께 전래됐으며 일본에는 1603년 네덜란드를 통해 전해졌다.
국내에는 1825년경(조선시대 순조 25년) 청나라 상인에 의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한반도의 산삼(山蔘)을 찾기 위해 몰래 왔다가 식량으로 감자를 재배했다.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는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던 함경도 화전민조차 외면할 정도로 맛이 없어 널리 퍼지지 않다가 품종개량이 이뤄지면서 전국적으로 퍼졌다.
1920년대 초반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북한에 위치)에서 농업연구를 하던 독일인 매그린이 개발한 난곡 1~5호 감자가 대규모로 기르면서 강원도 감자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강원도에는 약 35만명의 화전민이 거주했다. 강원도의 기후조건이 감자를 재배하기 적절하고 다른 작물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확량도 많아 쌀을 경작하기 어려웠던 이 지역 화전민을 중심으로 감자가 길러졌다.
고구마는 매꽃과의 한해살이 뿌리채소로 중남미의 유카탄 반도와 남미 베네수엘라 오리노코강 지역이 고향이다. 15세기 말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과 스페인으로, 다시 희망봉과 인도양을 거쳐 동양으로 전파됐다. 한국에는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들여와 동래(현 부산)에 심게 하면서 국내에 들어왔다. 하지만 초기에는 월동 방법을 자세히 몰라 모두 동사했다. 고구마는 감자에 비해 추위에 매우 약하다. 이후 1764년 동대부사로 부임한 강필리가 대마도 사람에게 재배법을 듣고와 ‘감저보’란 책자를 발간하면서 널리 보급됐다.
감자의 어원은 감저(甘藷)다. 이는 본래 고구마를 가르키던 말이다. 고구마보다 늦게 국내에 들어온 감자는 ‘북방에서 온 감저’라는 뜻으로 북감저(北甘藷)라고 불렸다. 북감저가 전국에 널리 퍼지자 ‘북’이란 접두어를 떼어버리고 감저, 즉 감자가 됐다. 제주도에는 아직 감저라는 말이 쓰인다.
고구마는 남감저(南甘藷)로 불리다가 감자에게 감저란 이름을 뺏기고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고구마는 일본 쓰시마섬(대마도) 사투리인 ‘고오시마(こうしま)’에서 비롯됐다. 고오시마를 한자어로 옮겨 ‘고귀위마(古貴爲麻)’로 전해졌다. 대마도에는 가뭄이 들었을 때 어느 효자가 고구마를 심어 부모를 공양했다고 해 효자가 심은 마라는 뜻의 ‘효자마’로도 불린다. 일본 본토에서 고구마는 사쓰마 이모다.
감자는 100g당 55㎉의 열량을 가졌다. 필수아미노산, 비타민B군 복합체, 칼슘, 칼륨, 철분, 마그네슘 등을 함유해 건강식으로 적절하다. 미국 예일대 그리핀예방연구센터는 식품이 가진 다양한 건강가치를 100점을 기준으로 평가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약 5만개 식품 중 건강식으로 각광받는 현미 82점이었다. 감자는 현미보다 높은 93점을 획득했다. 특히 감자는 비타민C가 많다. 감자 100g에 들어 있는 비타민C는 약 20㎎으로 사과의 약 3배 이상이다. 감자 2개만 먹으면 성인의 1일 비타민C 권장량을 섭취한다. 하지만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가 85~90으로 사과(40)의 두 배가 넘는다. 감자를 섭취하면 혈당이 급하게 올라가므로 당뇨병 관리에 해로움을 인식해야 한다.
고구마의 열량은 100g당 128㎉로 감자보다 약 2배 높다. 반면 혈당지수는 40 수준으로 낮아 다이어트식으로 좋다. 혈당지수가 높으면 탄수화물이 포도당으로 빠르게 변해 혈당이 높아지고, 이를 낮추기 위한 인슐린과 지방을 저장시키는 효소가 분비돼 살이 찌기 쉽다. 조리법에 따라 혈당지수가 달라지는데 그냥 쪄서 먹으면 40이지만 구우면 80까지 올라간다. 군고구마가 빵이나 쌀밥 못잖게 혈당을 올리는 셈이다. 참고로 찌거나 구운 고구마는 100g당 열량이 120~130㎉이지만 말린 고구마는 320~400㎉에 달한다. 수분, 식이섬유, 비타민 등이 풍부해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많이 느낄 수 있다.
고구마의 ‘얄라핀’(jalapin)은 장 안을 청소하는 기능을 가져 대장암을 예방하고 배변활동을 돕는다.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와 장 기능을 활성화해 주는 비타민B1도 풍부하다. 이런 성분들은 고구마 속 식이섬유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배변을 더욱 원활하게 한다. 하지만 야식으로 고구마는 추천되지 않는다. 야간에는 신체의 신진대사 기능이 떨어져 고구마 속 당이 누적되고 장내 부패와 혈액 산성화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당뇨병, 류머티즘 환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고구마꽃은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고구마꽃을 ‘백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귀한 꽃’이라고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했다. 연보라색을 띠고 나팔꽃과 유사한 모양을 가진다. 아열대 지역에만 꽃을 피우며 온대기후인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최근에는 잦은 기상이변과 폭염 등으로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고구마꽃의 말은 ‘행운’으로 1945년 광복, 1953년 한국전쟁 휴전, 1970년 남북공동성명발표 직전에 피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
유기농 고구마는 따뜻하고 바람 들지 않는 곳에 3일 정도 놔두면 싹이 난다. 가공된 고구마는 아예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오래 걸린다. ‘오래된 고구마가 싹이 난다’는 틀린 말이다. 착색제로 처리한 고구마는 한동안 싹을 못 틔우다가 시간이 지나 싹이 나는 경우도 있다. 고구마 싹은 그 부분만 잘라내고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보관하면 20일~1개월간 싹이 나지 않는다.
감자의 싹에는 솔라닌(Solanine)이라는 독소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싹을 완전히 도려내면 안전하다. 감자를 햇볕에 오래 노출시키거나 보관하면 표면이 초록색으로 변한다. 이런 부분에도 솔라닌이 생긴다. 토마토, 고추 등에도 들어있지만 극히 소량으로 안심해도 된다. 솔라닌은 감자의 아린맛을 늘리고 구토, 식중독, 현기증, 가려움 등을 유발하며 심할 경우 호흡곤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민감한 사람은 작은 양에도 편두통이 생긴다.
지난달 대표적인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감자 20㎏당 5만4000원선이었다. 2만7000원 수준이던 지난해보다 약 2배 올랐다. 감자 가격의 상승은 허니버터칩으로 대표되는 감자칩의 폭발적인 인기 덕분이다. 겨우내 저장되던 감자가 제과용으로 사용되면서 가격 인상을 부추겼다. 게다가 올해 초 극심한 봄가뭄으로 작황 사정이 좋지 않아 수확량도 적었다. 하지만 정작 농민들은 가격 상승에 아무런 덕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전국 감자 생산량의 약 75%는 일명 ‘밭떼기‘로 불리는 중간상인과의 계약재배로 출하된다. 도매시장 가격은 지난해보다 2배 올랐지만 3.3㎡당 계약재배 금액은 5000원으로 동일하다. 결국 중간상인만 배를 키우고 있다.
고구마는 7월 하순부터 10월까지 수확한다. 시장에 출하하려면 9월 중순까지 캐는 게 가격면에서 유리하다. 저장을 하거나 전분용으로 사용하려면 전분 가격이 오르는 10월 이후 수확하는 게 좋다. 너무 늦으면 서리의 피해를 입어 저장성이 낮아지므로 기온이 9도 이하로 낮아지기 전에 거둬들여야 한다. 비가 오거나 토양이 습할 때에는 고구마의 수분함량이 높아 저장고 내 습도가 높아진다. 이로 인해 호흡작용이 방해를 받아 유해물질이 생기고 썩기 쉽다. 고구마는 맑은 날 수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