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신선한 수박을 고를 때 꼭지 상태를 살핀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꼭지가 갈색으로 변한 것은 품질이 낮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이는 과거 재배기법이 후진적이고 유통기간이 길 때 사정이다. 요즘처럼 유통기한이 짧고 냉장이 잘 되는 상황에서 이런 구별법이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농가에선 수박 꼭지가 빨리 시들지 않도록 ‘T’자 모양으로 길게 다듬어 유통시키고 있다.
지난해 충남대 산학협력단이 수박 꼭지 여부에 따른 품질 분석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수행한 결과 꼭지는 당도 및 신선도와 아무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꼭지를 제거하면 경제적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고, 꼭지가 마른 수박의 평가절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가에서 꼭지는 T자 모양으로 만드는 데 가위질을 3차례나 해야 한다. 그만큼 노동력이 더 소요된다. 수확·유통 중에 꼭지가 떨어지면 정상가의 절반 수준으로 가격이 낮아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관행을 바꾸기 위해 꼭지를 1㎝ 정도로 유지하면 인건비 절감, 가치하락 방지 등을 통해 연간 최대 약 627억원의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농협은 지난 27일부터 꼭지 자른 수박 공급을 전국 주요 판매장으로 확대했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에서도 지난 28일부터 시범 판매를 시작했다.
수박의 고향은 남아프리카 중앙부 칼리하리(Kalahali)과 주변 사바나 지대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는 1950년대까지 주로 일본에서 육성한 수박 품종을 도입해 재배했다. 이후 서양에서 들여온 품종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품종을 육종했다. 1967년 중앙종묘에서 개발한 ‘수원(壽園)’은 국내 최초의 1대 잡종 품종이다. 2012년 5월 31일까지 등록된 품종은 총 49품종이며 생산·수입판매 신고가 된 품종은 591개다.
수박은 박과에 속한 일년생 고온성 채소로 건조한 기후와 양지를 좋아한다. 생육 적온은 주간 25~30도, 야간 18~23도다. 10도 전후로 내려가면 생장점에 문제가 생겨 순멎이 현상(순이 자라지 않음)이 나타난다. 적당한 토양 산도는 약산성인 pH 5.0~6.8로 통기와 배수가 잘 돼야 생육에 유리하다. 주위 환경과 병해에 약해 국내에서는 주로 접목재배가 이뤄진다. 고지박(박모)의 뿌리와 줄기에 이파리 하나를 남겨두고 줄기를 대각으로 자른 뒤 수박모의 줄기를 얹혀 필립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직파재배보다는 옮겨심기를 해주는 게 수량과 상품성을 약 40% 향상시킬 수 있다. 종자의 크기는 품종에 따라 다르다. 대개 과실이 작은 품종은 종자 크기가 작다.
국내 수박 품종은 대부분 중·대과로 과일 형태가 둥글고 껍질은 녹색으로 호피 무늬이며 과육색이 홍색이다. 민간기업에서는 무늬가 선명하고 잘 깨지지 않으며 고당도의 단맛이 과육 전체에 고루 분포하는 것을 목표로 품종을 개량해왔다. 최근에는 크기가 작은 수박이 재배돼 시판되고 있지만 선물용 등으로 용도가 제한돼 있다. 최근 수박재배는 농자재의 개발과 재배기술의 향상으로 철 당겨 가꾸기(촉성재배)에서 시설억제재배(지연재배)에 이르기까지 재배양식도 다양화돼 연중 공급이 가능하다.
국내 수박 생산액은 약 1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전국 1만3800여 농가에서 약 79만t을 생산했다. 최근에는 햇수박 출하 시기가 앞당겨져 5월이면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보인다. 국내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서 수박이 가장 많이 들어올 때는 하루에 1000t 이상이 들어온다. 이 시기가 2010년만해도 7월 초중순에 몰렸지만 지금은 6월초부터 7월까지로 기간이 늘어났다.
수박 속은 카로티노이드계 색소 중 하나인 라이코펜에 의해 붉은색을 띤다. 이는 광합성을 통해 생성되며 노화방지 및 혈당저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암세포 성장을 도모하는 주요 조절인자인 인슐린양성장인자(IGF)를 억제하는 효능을 지녔다. 수분 함량이 100%에 가까워 갈증해소 및 탈수예방에 탁월하다. 수분, 과당, 포도당도 풍부해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가꿔주는 데 한 몫한다. 최근 연구를 통해 남성의 전립선암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수박의 라이코펜 함유량은 토마토나 적포도주보다 약 3~6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쁜 콜레스테롤로 꼽히는 저밀도지단백(LDL) 결합 콜레스테롤의 과잉축적을 방지해 혈관을 부드럽게 하고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심장마비 발생 위험도 떨어뜨린다.
수박은 성질이 차고 칼륨 함량이 높아 이뇨작용이 활발해지도록 돕는다. 하지만 몸이 차고 소화기능이 약한 소음인은 많이 먹지 않는 게 좋다. 체력이 약하고 밥맛이 없는 사람은 기운이 약해질 수 있다. 체질에 관계없이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 사람도 과다복용을 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름철이 되면 피부온도는 올라가지만 뱃속은 차가워져 찬 과일을 섭취하면 배탈·설사가 나기 쉽다.
수박의 당분은 과육의 중심부를 들어갈 수록 많아진다. 바깥 쪽보다 약 2% 많다. 보관 온도가 낮을수록 과당이 높아지며 소금을 조금 뿌리면 맛의 상승효과에 의해 단맛이 배가된다. 소금은 성질이 따뜻해 수박의 차가움을 중화시키는 작용도 한다.
수박씨는 맛이 쓰지 않아 중국요리집에서는 볶아 식사 전에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수박은 본래 수박씨를 먹기 위한 목적으로 재배됐다. 현지에선 수박씨 기름이 팔리고 있다. 노폐물을 내보내고 혈압을 낮추는 효능도 있어 과육과 함께 먹는 게 좋다. 수박껍질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시트룰린(Citrulline)이 풍부해 부종을 가라앉히는데 좋다. 하지만 딱딱한 식감 때문에 먹기 힘들다면 피클 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또 풋고추와 함께 아삭하게 볶은 수박껍질 요리는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박껍질 요리가 콜레스테롤과 나트륨을 줄이는 데 좋다고 발표한 바 있다.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씨 없는 수박을 국내에 널리 알린 사람이지 발명하지는 않았다. 일본인 기하라 히토시 전 교토대 명예교수가 연구한 것을 도입한 것이다. 무등산 수박은 예부터 임금에서 진상되던 것으로 푸랭이 수박으로 불린다. 모등산 이외의 지역에서 전혀 생산되지 않는다. 무게는 보통 4~5㎏으로 큰 것은 30㎏까지 나간다. 껍질이 두꺼워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무등산 중턱 낙엽으로 형성된 비옥한 토질 속에 재배된다. 청록빛깔에 줄무늬가 없고 씨는 머릿부분의 눈만 검다. 8월 중하순 이후 출하되며 생산량도 적어 귀하다. 예부터 결실기가 가까워지면 재배하는 사람은 상갓집에 가지 않으며 상중인 사람도 밭에 절대 들어와서 안되는 금기사항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