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원들이 고사 상태에 이르면서 개원 의사를 주축으로 하는 대한의사협회의 경영 상황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재정난, 의협에 대한 불신 등을 이유로 회원의 절반 가까이가 회비를 납부하지 않아 사실상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의협 감사단은 최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회비납부율 감소와 고유사업 누적적자 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회비 납부율은 2005년 80.8%에서 2012년 65%, 지난해 59.9%까지 급감했다. 특히 대학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이 몰려 있는 서울·경기지역을 포함해 대전, 부산, 제주 등은 회비 납부율이 전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 재정도 계속되고 있다. 적자 규모는 2012년 13억원에 달했다가 2013년 7800만원으로 감소했고 지난해 다시 2억2000만원 정도로 커졌다. 의협 총 예산은 2014년 278억7100만원에서 2015년 273억3700만원으로 5억3400만원 줄었다. 이 중 예산 상당액이 의료사고 발생에 대비한 의료배상공제조합 예산이다.
감사단은 “의사협회 기금 총액은 마이너스 2억8000만원으로 자본잠식에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며 “퇴직급여충당금 46억원 중 부족액이 36억원에 이르는 것도 문제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의사협회 감사단은 “이같은 재정 상태는 의협 존립을 위협한다”며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고 퇴직연금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협 조사 결과 회비 미납 이유는 ‘회비 부담’이 48.2%로 가장 많았고 ‘회비 사용의 비적정성’(39.2%), ‘협회 역할 미비’(24%) 등이 뒤를 이었다.
회비 납부를 위한 개선 필요사항으로는 ‘회비 납부의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답변이 3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투명성 강화’(29%), ‘협회의 가시적 성과’(22%), ‘납부 방식의 다양화’(10%) 순이었다.
회비 납비율 감소는 의협 집행부에 대한 회원들의 민심을 보여준다. 개인 정형외과 원장 Y모 씨는 “의협은 자신들이 의사 전체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히 회원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말은 그럴듯 하지만 정작 바뀐 것은 찾아보기 어렵고 절망적인 의료환경은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특히 노환규 회장 시절 사사건건 부딪히는 집행부와 대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협회 직원에 대한 과도한 복리후생성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감사단 관계자는 “총 연봉이 5000만원을 넘는 직원의 수를 조정하고, 각종 수당과 과도한 복리후생성 지출을 정비해야 한다”며 “특히 퇴직금누진제, 호봉승급 등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본예산(승인예산) 대비 예산집행률로 표시되고 있는 예산과 집행에 관한 표시를 실제로 확보된 예산(실행예산) 대비 집행률로 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추무진 회장의 파격 인사도 도마에 올랐다. 진보 색채가 강한 임원진 구성에 신선하다는 입장과 의사들의 의중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불통·밀실인사라는 반대론이 첨예한 상황이다. 추 회장은 임원진 중 절반 이상은 회무의 연속성과 안전성을 위해 대다수 유임시키는 한편 전체 상임이사 중 8명만 새롭게 영입해 자기체제화를 공고히 했다. 특히 의료정책연구소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주장하는 진보 성향의 이진석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를 연구조정실장으로 앉혀 회원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의료정책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행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이 보고서는 의료계나 의료정책을 수립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만큼 연구조정실장도 중요한 보직 중 하나로 꼽힌다. 다수 회원들은 이 교수가 ‘국민건강보험 하나로운동’을 주장하는 등 의협의 정책 방향과는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이 교수는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등 진보성향이 뚜렷한 인물로 평가된다. 의료계 진보적 인사들이 만든 건강정책포럼,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등에 적극 참여해 의사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다. 이밖에 건강보험 보장성 90% 확대, 입원부문 포괄수가제 전면실시, 보장성과 지출구조 개편을 연계한 건보료 인상, 1차의료 주치의제 전면 시행, 3차병원 지역 병상총량제 등 정책대안을 주장해왔다.
평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이 교수는 포괄수가제 반대 투쟁 때 이 제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등 반의료계적 활동을 해왔다”며 “추무진 집행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기본 소신과 철학이 도대체 무엇인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며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진석 교수는 “자신이 지금보다 젊었을 때 급진적인 행보를 한게 사실이고 일부는 진의가 잘못 전달된 측면도 있다”며 “의사로서 의사들의 중앙단체인 의협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