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구고령화와 레저·스포츠활동 증가 등으로 척추질환자가 늘면서 몇 년새 척추·관절 전문병원 수도 급증했다. 다른 진료과보다 비급여 항목이 많아 이익을 남기기 쉽다는 점도 ‘척추·관절 병원 춘추전국시대’를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한정된 공간·환자를 두고 경쟁하다보니 병원 수는 금세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무리한 양적 팽창은 비급여진료 남발, 과잉진료 및 수술, 연예인 광고 같은 스타마케팅 등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연령대를 불문하고 환자가 가장 많은 요추간판수핵탈출증(허리디스크)의 경우 무조건 수술부터 권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수술은 심각한 부작용과 재수술의 원인이 된다. 지난해 10월 방송된 MBC ‘불만제로 UP’에서는 척추관절 전문병원들의 과잉수술 행태가 여과없이 드러났다. 이날 방송에서는 무리한 수술을 받고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의 사연과 수술이 이뤄지는 실상이 공개됐다. 병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경쟁이 과열돼 과잉진료 및 불필요한 수술이 남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엔 수술이 부담스러운 환자들 사이에서 신경성형술 등 비수술적 요법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비용이 과도하게 비싼 데다 안전성 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과잉수술은 척추·관절 전문병원들의 치열한 매출 경쟁의 산물이다. 이들 병원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스타마케팅’을 통해 환자 끌어모으기에 열중하고 있다. 건물, 버스정류장, 버스, 지하철 등에서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등이 모델로 등장한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질환이나 치료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환자에게 유명인사를 활용한 마케팅은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 한 정형외과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를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버스나 지하철 등에 광고를 낸 뒤 문의 전화 건수가 대폭 느는 게 사실”이라며 “유명 인사가 홍보 모델을 맡으면 병원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한 마케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섭외하려면 수천만원, 수억원이 소요되는데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이다. 이로 인해 기본적인 환자 진료가 소홀해지고 비급여진료 남용, 과잉진료, 저가 치료재료 사용, 리베이트 등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게다가 과도한 홍보는 의료 전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의료이용 행태를 왜곡시킨다.
무리한 척추수술 문제는 10여년전부터 지적돼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 결과 국내 척추수술 환자는 2006~2012년 동안 84% 늘었으며, 연평균 증가율은 12%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9년 기준 국내 인구 10만명당 척추수술 건수는 일본의 3배, 미국의 1.5배에 달했다. 대표적 척추질환인 척추병증(척추관협착증 등) 수술환자는 1999년 1만5962명에서 2010년 10만368명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문제는 과잉수술을 의미하는 조정 건수(급여 적용 취소)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최근 5년간 98만건의 척추수술 중 12만9000건(13.2%)이 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전체 청구 건수의 60% 이상이 조정된 병원도 있었다.
지난해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48억1900만원이었던 척추 과잉수술 조정금액은 2011년 100억원, 2012년에는 125억9500만원으로 불었다.
그렇다면 어떤 환자들이 척추수술을 받을까. 대한통증학회가 지난해 9월 서울과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를 방문한 환자 1375명을 대상으로 척추수술 원인 질환을 조사한 결과 척추관협착증이 41%로 가장 많았으며 허리디스크가 35%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실제 척추수술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마취통증의학과에 내원한 척추수술 경험 환자 가운데 수술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환자의 비율은 23%에 그쳤으며, 척추수술에 만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통증 재발’(56%)과 ‘부작용 발생’(28%)을 꼽았다. 이들 중 75%는 향후 재수술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으며, 그 이유로 ‘재수술을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아서’(50%)를 꼽았다.
무분별한 척추수술은 재수술로 이어진다. 지난해 10월 정천기·김치헌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팀이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3년 국내에서 척추디스크로 수술받은 환자 1만8590명 중 2485명(13.4%)이 5년내 재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이내 재수술은 2246명(12.1%), 3년 이내 1948명(10.5%), 2년 이내 1678명(9%), 1년 이내 1384명(7.4%), 1달 이내 768명(4.1%)이었다. 또 재수술률은 5년간 매년 1.4%씩 증가했다.
심재항 대한통증학회 홍보이사(한양대 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도 “통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2~3개월간 비수술적 치료로도 통증관리가 전혀 되지 않거나, 팔이나 다리 등 신체기관에 마비가 발생하거나, 성기능장애나 배뇨장애가 나타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수술 없이 치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조사 결과 척추수술이 실제 환자에게 제공하는 혜택 역시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치료는 통증을 유발하는 병변을 직접 제거하고, 비수술치료는 원인 병변을 그대로 둔 채 통증 증상만을 제거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척추질환인 허리디스크와 척추관협착증의 경우 수술치료는 신경을 누르는 디스크를 직접 제거하거나 척추관을 넓히는 등 물리적인 방법으로 통증의 원인 자체를 없앤다. 반면 비수술치료는 통증의 원인을 없애는 게 아니라 약물 등을 통해 눌려 있는 신경을 안정화함으로써 화학적으로 통증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게 목적이다.
대표적인 비수술적 치료법으로는 신경성형술과 고주파성형술이 있다. 신경성형술은 세계 3대 척추 명의인 가버 라츠(gabor B. Racz) 미국 텍사스대 의대 교수가 고안한 것으로 경막외내시경술 또는 경막외신경성형술 등으로도 불린다.
피부 절개 없이 척추 염증 부위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지름 2㎜, 길이 40~50㎝의 가느다란 관을 척추 내부에 삽입한 뒤 통증을 일으키는 부위에 유착방지제, 항염제, 국소마취제 등을 투입해 허리디스크 증상을 완화시킨다.
초기 허리디스크 환자 외에도 척추 수술 후에도 허리통증이 재발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환자, 척추관 협착증 환자에게 적합하다. 전신마취가 필요 없고 20분 가량의 짧은 시술시간과 빠른 회복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평균 비용이 200만원 정도로 효과가 비슷한 신경차단술(약 5만원, 보험 적용)보다 40배 비싼 게 흠이다.
신경차단술은 척추신경, 말초신경, 뇌신경, 척추신경절, 교감신경절 등에 국소마취제 혹은 소염제를 투여해 예민해진 신경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치료법이다. 신경성형술은 시술 후 하루 정도의 입원이 필요하지만, 신경차단술은 시술 후 5시간 정도 경과를 관찰한 후 바로 귀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대학병원 교수 위주의 주류 의학계는 신경성형술의 치료효과를 신경차단술 등 기존 치료법과 비교해봤을 때 특별하게 우월한 점은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경차단술처럼 신경성형술과 효과는 비슷하고 비용 부담도 적은 치료법이 있는데 환자에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비싼 신경성형술만 권유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상당수 환자가 고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신경성형술은 효과가 일시적이거나 미미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이춘성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척추신경의 유착이 통증의 원인인지 △신경성형술로 통증의 원인이라는 신경유착을 얼마나 풀 수 있는지 △다른 치료법과 비교 시 비용 대비 효과가 우수한지 등 관점에서 이 시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신경유착은 척추수술을 받은 대부분의 환자에서 발생한다”며 “이같은 유착이 통증을 유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통증의 원인이 유착일지라도 가느다란 카테터로 병변 부위를 정확히 찾아 유착방지제를 주입하거나 유착 부위를 풀어주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한 전문의는 “신경성형술은 비수술적 요법으로 시술시간이 짧고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며 “이같은 장점은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비난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저수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개원의들의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저수가 시대에 병의원들이 경영난 타개와 고수익을 위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신경성형술에 손대는 것은 이해가 가는 바다. 하지만 신경차단술처럼 신경성형술과 효과는 비슷하고 비용 부담도 적은 치료법이 있는데 환자에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비싼 신경성형술만 권유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신경성형술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입장이다.
고주파성형술은 고주파 에너지를 이용해 디스크의 압력을 낮춘다. 0.8㎜가량의 가는 주삿바늘을 집어넣어 고주파로 척추신경을 압박하는 디스크 일부를 제거한다. 기존 레이저를 이용한 감압술에 비해 성공률이 높고 주변조직 손상도 거의 없다. 전신마취가 어려워 수술할 수 없거나, 디스크가 50% 이상 터져 나오지 않은 환자에게 주로 적용된다. 다만 튀어나온 디스크가 딱딱하게 굳었을 경우에는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가벼운 척추질환은 물리치료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뜨거운 찜질팩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척추 주변의 근육을 튼튼히 해서 허리통증을 막을 수 있다.
무중력감압술은 통증이 있는 부위에 강한 힘을 가해 디스크 속 압력을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 튀어나왔던 디스크를 제 위치로 돌려 통증을 줄인다. 시술 시간이 30분으로 짧아 환자의 부담이 적다.
만약 2~3개월간 비수술적 치료로도 통증이 완화되지 않거나, 팔이나 다리 등 신체기관에 마비 증상이 오거나, 성기능장애나 배뇨장애가 발생할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척추·관절질환은 난치성이거나 만성인 경우를 제외하면 서로 다른 성격의 치료법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다.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등 보존적 치료, 다양한 외과적 수술법 등이다. 만족스러운 치료 결과를 얻고 치료 후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의 종류와 장단점을 의료진에게 묻고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잉 의료행위로 생각될 땐 먼저 진료기록부를 확보해야 한다. 전문지식이 부족한 환자에게 진료기록부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후 수술한 주치의를 찾아가 치료 후 발생한 부작용에 대해 물어본다. 병원 측이 대화를 단절하거나 환자의 관리 잘못으로만 돌린다면 전문기관에 도움을 신청해볼 수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는 의심되는 의료사고에 대한 무료상담이 가능하다. 무료상담 후 피해자(환자)의 신청에 따라 사건에 대한 감정단의 사실조사, 인과관계, 과실유무, 후유장애 확인 등 감정업무가 이뤄진다. 하지만 중재원에서는 2012년 4월 8일 이후 발생한 의료사고만을 대상으로 조정중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전에 발생한 사건은 한국소비자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서 피해구제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