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육성법 개정안에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은 전혀 없으며, 한의사들의 현대의학 공부 수준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박광재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은 그동안의 판례를 예로 들며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위원은 “기존 판례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X-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초음파검사 등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며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청력검사기 등을 허용한 판결은 심리 과정에서 의협, 안과학회, 이비인후과학회 등 전문가단체의 의견 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아 절차적 공정성이 결여됐고 보건 위생상 위해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100억원 이상이 소요된 사상의학진단 툴은 한의사들 사이에서 외면받고 있고, 한의학적 원리에 의해 개발됐다는 맥진기·경락측정기·파동진찰기·경혈탐지기 등은 이용률이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에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며 “한의대 교육 중 현대의학이 차지하는 교육시간은 17%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의사들의 현대의학 공부는 수박 겉핥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의 요구를 정부와 언론은 의사·약사간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했다”며 “의료의 중심이고 전문가인 의사의 목소리에 귀 귀울이지 않고, 규제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한의사 단체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한다면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평수 의료정책연구소 위원은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된 체계에서는 감성과 형식보다 이성과 논리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법령과 기본 원리에 따라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규제하되 헌재 결정처럼 일반적인 필요성을 인정하고 사용 조건과 논리적 당위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정부는 안전성, 비용 대비 효과성 등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복지부 산하 한방의료행위전문위원회의 객관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의료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모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 의사와 한의사간 협진체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고, 1차의료를 강화해 의사의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며 “적정 규모 의료재정 확보를 전제로 한의사도 포괄수가제, 총액계약제 등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의사와 한의사간 갈등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환자가 기대하는 진료 수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의학적·한의학적 견해가 상반되거나, 환자에게 우선 필요한 진료 내용이 다르게 도출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충분한 숙고 없이 X-레이나 CT 등 의료기기를 한의사의 사용 범위에 포함시킬 경우 부작용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찬성 아니면 반대라는 식의 논쟁보다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하는 엄격한 요건이 무엇인지, 그에 부합되는 기기로는 어떤 게 있는지 등을 전문가 단체와 정부가 함께 모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민식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는 “어떤 의료기기는 허용되고 금지되는 등 미시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며 “거시적으로 전문가들이 모여 의학이 무엇이고 한의학이 무엇인지 논의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재욱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정부가 경제단체의 건의만을 토대로 규제 개선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 건강을 무시하고 있다”며 “이번 토론회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국민건강에 미칠 위험성 등을 짚어보고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럼에는 이들 외에도 도경현 대한영상의학회 방사선안전관리이사,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