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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건보공단·심평원 ‘그들만의 리그’, 갈등 원인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2-05 11:01:52
  • 수정 2015-02-11 14: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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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료비 심사·청구권 두고 충돌, 중복 서비스로 예산 낭비 … 낮은 청렴도·방만경영 도마 위

진료비 심사·청구권 등으로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왼쪽)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올 하반기 원주 이전을 앞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게 새해 을미년은 특별한 한 해다. 국내 의료보험의 양대 축인 두 기관이 묵은 때를 벗고 새 출발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진료비 심사·청구권 이전, 업무 중복, 본부 이전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 등 해결해야 할 사안이 산더미다. 몇년째 지적받고 있는 도덕적 해이나 방만경영 문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건보공단은 임직원 민간보험료(사보험)로 33억원을 지출했다가 질타를 받았고, 심평원은 청렴도 조사에서 4등급을 받아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두 기관은 이같은 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업무영역 다툼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15년 가까이 이어진 두 기관의 다툼은 일반 국민들에게 볼썽사나운 ‘밥그릇 챙기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심평원과 건보공단의 업무영역을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항상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뿌리가 같은 두 기관이 어쩌다 견원지간이 됐는지, 원주 시대를 앞두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되짚어 본다.

올해 건보공단은 설립 35주년, 심평원은 15주년을 맞았다.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이 도입되면서 급여비용의 심사 및 평가를 담당할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88년부터 의료보험연합회가 심사평가 업무를 맡았지만 전문성, 공정성을 갖춘 기구가 필요했다. 1998년에 들어서 의료보험 전체 통합이 결정됐고 이를 계기로 심평원이 설립됐다. 심평원은 심사는 물론 의료의 질도 평가함으로써 건보공단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맡게 됐다.
현행법은 건보공단은 보험료 징수와 급여 관리, 심평원은 급여 청구·적절성 심사를 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심평원이 설립된 2000년부터 두 기관은 진료비 심사·청구권을 두고 쉴틈없이 충돌해왔다.

진료비 심사권은 의료기관 수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다. 병원 등 요양기관이 가입자에게 제공한 요양급여 비용을 받으려면 심평원에 심사 청구를 해야 한다. 심평원은 이를 심사한 뒤 결과를 요양기관과 건보공단에 통보하고, 공단은 이를 토대로 요양급여를 지급한다. 하지만 진료비 심사 및 지급 과정에서 두 기관이 서로 자료를 공유하지 않아 업무가 연계되지 않고 중복 연구를 진행하는 등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공단은 업무 중복, 방만 경영 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심평원 업무 중 우선 청구권만이라도 넘겨받는 방식으로 조직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이원화된 진료비 관리체계로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며 심평원을 압박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한 ‘건강보험 진료비 관리체계의 개선방안’을 통해 지금처럼 이원화된 진료비 관리체계는 △보험자의 경우 지출관리 비효율성, 부당수급 및 부당청구로 인한 재정누수 △요양기관은 진료비 청구업무 가중 △환자는 급여보장의 사각지대 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건보공단이 청구권을 갖고 있지 않아 일단 요양기관에 진료비를 지급한 뒤 수급자 자격 확인, 실제 제공된 의료서비스 사실 유무, 건강보험 대상자 여부 등을 확인해 뒤늦게 부당지급된 금액을 환수하는 비효율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로 인한 재정누수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공단 관계자도 “보험자 책임 밖에서 진료비 청구·지급체계가 유지되면 재정누수를 방지할 수 없다”며 “무자격자 진료, 교통사고·산재·폭행 등 타 보험 처리 대상, 부당수급건 등을 제 때 확인하기 어렵고 급여 사후관리도 수행하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심평원은 청구권이 건보공단에 넘어갈 경우 전문심사기구로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공단이 청구권을 가져가더라도 사무장병원, 자격 사칭, 비자격자의 부정수급 등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보험사기 등 부정 청구는 사전에 점검한다고 해서 잡힐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사법기관이 면밀히 조사해 파악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청구권 이양과는 상관없다는 의미다.
심평원 관계자는 “건보공단 요구대로 진료비 청구와 심사가 분리되면 요양기관에 행정력 부담과 혼선을 야기할 수 있고, 의료 질을 고려하지 않고 비용 대비 효과성만 따질 경우 안전에 대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도 “청구권 이관은 건보공단의 권한만 강화시킬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공단 측이 꾸준히 건강보험 피보험자 자격관리가 어려워 건강보험재정이 누수되고 있다고 주장하자 심평원은 자격사전점검시스템을 구축, 진료일자를 기준으로 실시간으로 무자격자나 급여제한자를 파악하는 등 업무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공단 측은 이같은 자료는 본래 있던 것으로 업무상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고, 심평원은 공단이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공단 측은 다시 말해 업무절차 상의 순서와 이중업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2013년엔 빅데이터를 활용한 질병예보서비스를 두고 충돌했다. 당시 심평원은 5년간 건강보험 청구자료와 기상청의 날씨자료를 바탕으로 질병과 날씨의 상관계를 분석해 질병 예측·알림서비스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건보공단이 국민건강정보DB와 다음소프트가 보유한 소셜미디어 정보를 활용해 도입하겠다고 밝힌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국민건강 주의예보서비스’와 도입 취지나 서비스 제공 형태 등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근거자료의 출처만 다를 뿐 결과적으로 비슷한 두 서비스를 놓고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갈등하는 것은 불통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의료계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두 서비스는 중복에 따른 예산 낭비와 국민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렇듯 사사건건 충돌하는 일이 잦자 정부는 지난해 5월 건보공단과 심평원을 아예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건보공단과 심평원 등 건강보험 관련 공공기관을 모두 통합한 통합 공단을 설치하거나, 공공기관들로부터 건강보험 관련 업무를 이관해 건보공단으로 몰아주는 2가지 방안을 검토했다가 의료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결국 백지화했다. 의료계는 통합 건보공단이 공룡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의사 출신이 심평원장을 맡아 의사들의 이해를 고려해주는 측면이 있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건보공단은 고질적인 방만경영 등 문제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심평원 업무 흡수를 통한 몸집 키우기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기관은 서로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업무영역 다툼에 정신없지만 해마다 방만경영, 도덕성 해이 등을 지적받아온 것은 쌍둥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임직원 징계현황’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금품·향응수수, 공금횡령·유용,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총 181건의 징계가 이뤄졌다. 강제추행, 폭행,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경찰이나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은 범죄사실 건수도 21건이나 됐다. 또 지난해에는 임직원 사보험 가입비로 32억8000만원을 지출해 도마위에 올랐다. 현행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운용지침’은 “업무와 관계없는 질병·부상 및 직원 가족에 대한 의료비 지원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선택적 복지제도에 통합해 운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평원도 2012년에 4명, 2013년에 7명이 성실의무 위반 및 직무소홀로 견책 징계를 받았다. 2명은 금품수수·공금횡령으로 파면 조치됐다. 이 의원은 “공공기관이 갖춰야할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청렴도 회복과 반부패 척결”이라며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직무관련 임직원 행동강령 기준 및 징계양정 기준 등의 조치로 청렴도 향상을 위해 분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평원은 2년째 청렴도가 하위권을 맴돌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청렴도 조사결과 2013년에 이어 2년 연속 4등급을 받았다. 4등급은 사실상 낙제점으로 볼 수 있다. 의료기관을 평가 및 심사하는 기관이다보니 악의적인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는 특성을 감안해도 직원들이 의료계 인사와 유착하는 과정에서 불법 또는 불법은 아니어도 배임과 같은 부정부패가 일상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심평원 내부 감사결과 직원 3명이 A의료재단 이사장으로부터 골프 및 식사 등을 접대받았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조차도 못된다고 의료계 인사들은 지적하고 있다.

10년 넘게 으르렁거리던 두 기관은 올 하반기 나란히 강원도 원주 혁신도시로 이전한다. 신사옥 건축에 소요되는 예산은 공단 1756억원, 심평원 1608억원으로 총 3364억원 정도다. 신사옥 이사 비용과 사무실 물품 구입비 등을 포함하면 소요 비용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는 원주 시대를 맞아 두 기관이 업무영역 다툼보다는 내부 쇄신을 통한 방만경영 및 도덕적 해이 개선에 집중해주길 바라고 있다.
한 보건의료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갖춰야할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청렴도 회복과 부패 척결”이라며 “건보공단과 심평원은 업무영역 다툼에 집중하기보다는 직무 관련 임직원 행동강령 기준과 징계 수준을 강화해 방만경영 논란을 해소하고 청렴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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