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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할 때 들이킨 추억의 포천 일동막걸리와 이동막걸리
  • 정종호 기자
  • 등록 2015-02-02 09:02:54
  • 수정 2021-06-13 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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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 연천, 의정부 등에서 군생활을 한 남자라면 늦가을 ‘김장 사역’(겨우내 먹을 배추나 무를 뽑으러 군에서 배정한 경작지로 감)을 나갔다가 마셔본 막걸리맛을 못 잊을 것이다. 안주는 기껏해야 배추꼬리나 짭짤하게 간장에 담가 고춧가루가 범벅된 고추짠지였지만 들척지근하게 달달하고 영양분까지 풍부해 그많은 김장거리를 퍽퍽 서너시간 만에 군용차에 담던 기록이 새록새록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딜가서 포천막걸리를 마셔도 그맛이 나지 않는다. 배고프고 춥고 서러운 군생활시대에는 뭔들 맛있지 않았던 게 있었을까. 한데 그때 마신 막걸리가 일동막걸리였는지, 이동막걸리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두 막걸리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삼국시대에도 술을 빚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막걸리라고 확정할만한 근거는 미미한 편이다. 고려시대에서는 사찰에서, 또는 민간에서 술을 빚어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 탁주(濁酒, 출처 도은집:陶隱集) 또는 박주(薄酒, 출처 동문선:東文選)라는 마음이 처음 거명돼 지금도 막걸리의 대명사로 쓰인다.

고려시대 북송의 사신 서긍의 기록인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서민들은 왕의 술을 빚는 사온서(司
署)에서 나오는 청주와 법주 등의 고급 주류를 얻기 어려워 맛이 박(薄)하고 빛깔이 진하며 마셔도 잘 취하지 않는다는 술을 마신다’고 했다. 술의 빛깔이나 도수가 낮은 점 등이 막걸리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발달해 이화주(梨花酒) 등의 막걸리가 기록에 남아 있다.  특징과 같아 이 시기에도 역시 탁주류가 서민들의 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세수 확대를 목적으로 주세법(1909년)과 주세령(1916년)을 발령,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술을 빚을 수 없게 돼 가양주 문화가 말살됐다. 그러나 막걸리는 별도의 도구가 필요한 소주나 청주와 달리 만들기 쉽고 많은 양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민간에서 밀주(密酒)로 계속 만들어졌다.

광복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식량부족과 정부의 양곡관리법(1965년)에 따른 순곡주 제조 금지령으로 쌀 대신 외국에서 상대적으로 값싸게 수입한 또는 원조물자로 들여온 밀가루를 막걸리의 주원료로 사용하게 되었다. 광복 이전에는 밀이 귀하고 비싸서 막걸리 양조에 쓰지 못했다. 정부는 귀한 쌀 대신 밀이나 옥수수 위주의 막걸리를 장려했다가 쌀의 자급자족이 이뤄진 1978년부터 쌀막걸리를 허용했다. 그러나 다시 쌀생산량이 수요를 따라 잡지 못하자 2년만에 밀막걸리, 옥수수막걸리로 귀환했다고 한다.

막걸리의 원형은 순수 쌀막걸리다. 쌀막걸리는 단맛이 더 강하고 탁한 백색, 또는 우윳빛을 띤다. 밀막걸리는 쌀막걸리에 비해 단맛은 덜하고 신맛과 구수한 맛이 강하며 빛깔은 밀기울의 함량에 따라 누르스름한 빛깔을 띤다.

1960~1970년대에 국내 주류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 밀막걸리는 이전의 전통 쌀막걸리와 완연히 다르게 재창조된 수술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 밀막걸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지금의 쌀막걸리보다 오히려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밀막걸리는 쉽게 말해 풀을 쓴 후 누룩을 발효시키는 것이다. 밀막걸리는 단맛이 덜하므로 아스파탐, 사카린, 올리고당 같은 인공감미료를 넣게 된다.

하지만 1960~1970년대에 밀막걸리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발효와 숙성이 덜 된 제품을 생산하거나 발효기간을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불량양조업자들로 인해서 막걸리는 점차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 막걸리의 주류인 ‘쌀+밀’ 막걸리가 탄생했다. 쌀은 전분이 많고 지방질과 단백질의 함량이 적을수록 담백한 맛이 나고 숙취가 적어진다. 찹쌀이 멥쌀보다 더 좋은 맛을 낸다.

막걸리 원료 중 밀(소맥분)이 많이 들어갈수록 걸죽하고 진해진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도 쉽고 시원한 청량감과 감칠맛이 나면서도 약간 쓴 뒷맛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뒷맛이 지나치게 텁텁한 것은 오래됐거나 저장이 잘못된 것이다.

포천의 이동막걸리는 이런 밀막걸리 장점을 살린 막걸리다. 이 막걸리의 제조엔 누룩의 원료로 통밀을 50% 이상 사용한다. 술의 원료가 밀이니까 누룩도 통밀 비중을 높인 것이다. 이동막걸리는 재료 중 밀의 비율이 20∼40%를 차지한다. 더욱이 스테인레스가 아닌 옹기에서 발효시켜 옹기의 숨구멍에 자라는 미생물 덕분에 미묘한 맛이 더해진다.

백운산의 맑은 물을 사용하고 단백질과 콜린(비타민B 복합체를 이루는 원소) 등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같은 포천의 일동막걸리는 원래 밀가루 대신 옥수수전분을 10%가량 넣어 발효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동막걸리도 밀가루 함량이 10~20% 정도 된다. 옥수수전분은 쓰지 않고, 그냥 전분(올리고당)을 10~30% 쓴다. 전분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아 깔끔하고 상쾌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음산의 천연암반수와 찹쌀을 주원료로 5일 이상 자연 발효시키므로 기존 탁주에 비해 몸에 좋은 유기산이 풍부해 감칠맛과 상쾌한 맛이 나고 숙취가 적다고 알려지고 있다.
물은 무기질 함량이 많을수록 효모가 활성화돼 알코올 발효속도가 빨라져 거칠고 무거운 맛을 내게 된다. 백운산과 관음산 물맛의 차이가 막걸리맛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막걸리 제조에 옥수수나 감자를 넣는 것은 쌀이 귀한 강원도 등에서 주로 이뤄진 기법이다. 옥수수막걸리는 옥수수빵 향이 나고 청량감, 고소한 느낌, 부드러운 목넘김이 특징이다. 하지만 요즘은 옥수수 전분을 발효시킨다기 보다는 옥수수향을 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 본래의 맛은 나지 않는다는 평이다.

1980년대 접어들어 경제수준이 향상되면서 막걸리는 사양길을 걷고 맥주, 희석식 소주, 양주가 득세했다. 여기에 1999년까지 비살균 탁주의 공급구역이 시·군 단위 행정구역으로 제한된 것도 탁주 하향길을 가속화시켰다. 소수 지역 탁주 제조업체들에게 시장은 작지만 특정지역내 독과점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막걸리의 품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제기됐고 급기야 1999년 주세법 개정으로 2000년부터 비살균 탁주의 공급구역 제한이 풀려 마침내 소비자가 원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비살균 탁주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공급제한의 폐지는 술의 품질 향상과 함께 소비자의 선택폭 확장의 계기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각 지역의 소규모 제조장들이 타격을 입고 지역만의 특색이 담긴 막걸리맛이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동막걸리를 만드는 한 제조업체의 관계자는 “원래 밀막거리는 쓰고 좀 구수한 맛이 나는데 단맛을 좋아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아스파탐이나 올리고당 등 인공감미료를 충분히 넣고 있다”고 말했다. 제품에 ‘쌀막걸리’라고 표기하려면 쌀의 함량이 50%를 넘어야 한다. ‘이동쌀막걸리’의 경우 밀이 40% 함유돼 있고, ‘이동밀막걸리’는 밀 함량이 100%다.

이 관계자는 “고두밥을 쪄서 누룩을 발효시키는 전통 가양주 방식(알코올 도수 18~20도)으로 포천의 막걸리를 담으려면 적어도 막걸리 한 병당 1만~2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대량생산 방식으로 한병이 1500원인 상황에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제조기간 상으로도 전통 가양주 방식은 대량생산 방식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가양주는 일양주(1주일), 이양주(40일), 삼양주(3개월) 등 누룩을 사용해 긴 발효기간을 거쳐야 했으나 지금은 죄다 일본식 입국(粒麴)을 들여다 써 이틀만에 발효시킨다. 입국은 일본식 청주(사케)를 발효시키는 데 쓰이는 효모로 특정 효모균과 효소만을 써 맛이 획일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역마다 효모와 효소가 다른 전통누룩으로 빚은 술의 향과 풍미와 비할 수 없다. 더욱이 두달 이상은 띄운 전통누룩이어야 막걸리의 제맛을 살릴 수 있다는 게 전통주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금은 서울장수막걸리 스타일의 막걸리가 대세다. 막걸리가 달근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은 누룩곰팡이를 강화한 일본식 입국(粒麴)을 쓴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막걸리가 맥주 소주의 위세를 약화시킨 비결은 서울탁주(장수막걸리) 등이 술 빚는 방식을 과거와 달리해 막걸리의 맛을 재창조해서다.

막걸리는 쌀을 쪄서 물을 붓고 효모와 누룩으로 발효시킨 다음 걸러내는 비교적 단순한 공정을 거친다. 막걸리의 맛은 발효기술, 누룩과 효모의 종류, 수질, 쌀의 품질 등의 순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좋은 막걸리는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이 잘 어울리고 감칠맛과 시원한 맛이 있다.

막걸리병 아래쪽에 뿌옇게 앙금이 가라앉아 있는 것을 골라야 제대로 숙성된 것이고 맛 또한 더 깊다. 잔에 따랐을 때 기포가 생기면 좋은 것이다. 살균막걸리를 제외하고 효모가 살아있는 생막걸리는 기포가 올라오기 마련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출고된 지 얼마되지 않은 게 더 신선하고 풍미가 좋다.

하지만 2009년부터 시작된 막걸리 열풍이 최근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그나마 막걸리가 웰빙식품이라는 인식이 새겨져 1980~1990년대의 암흑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막걸리는 취하기 위해 먹었다보기보다는 음식의 반주로, 맛으로, 어울리기 위해 마신 전통을 가진 술이다. 대량생산시대에서 원료며, 제법이며, 누룩까지 전부 국산이나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를 절충한 방법이 나오는 게 시대의 순리에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특산의 막걸리가 사라져가는 게 아쉽다. 군대시절의 포천 이동막걸리와 일동막걸리의 차이를 알아보려는 취재방향은 여기서 일단 의미가 크게 사라졌다. 두 막걸리가 서로 닮아가 특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애주가로서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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