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진 박사는 편안하고 인간적이며 환자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10여년전 몸짱 열풍을 시작으로 한국사회에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했다.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닮고 싶다는 생각에 같은 브랜드의 옷과 악세서리를 착용했고, 심지어 얼굴도 비슷하게 성형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즐비한 성형외과와 비만클리닉의 간판들은 남보다 더 예뻐지고, 날씬해지고, 어려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 미(美)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은 자신만의 개성을 잃게 만들었고 ‘의란성 쌍둥이’이라는 씁쓸한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외모 집착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가뜩이나 삶에 지친 현대인의 심신을 더욱 병들게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 한 의사가 방송에 출연해 ‘내적 안티에이징’을 강조하고 나섰다.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위해 무조건 메스나 주사를 들이대기보단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처음엔 ‘무슨 소리야?’라며 반신반의했던 사람들도 그의 입담과 해박한 의학지식에 이끌려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주부들과 중장년층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의사가 됐다. 이는 ‘국민 주치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오한진 비에비스나무병원 갱년기·노화방지센터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얘기다.
노화방지, 비만 및 갱년기 관리 분야 권위자인 오한진 박사(54)는 충남 대전 출신으로 1985년 충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전선병원·대전을지병원·제일병원 가정의학과장, 성균관대·관동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등을 지냈다. 제일병원 근무 당시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이를 통해 가정의학과의 입지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제일병원에서 진료와 방송을 병행하던 그는 지난 7월 서울 강남에 있는 소화기질환 전문 비에비스나무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쌓아왔던 의대 교수라는 명예를 내려놓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오 박사는 “병원을 포함한 모든 조직은 구성원이 가진 장점이나 특징을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며 “비에비스나무병원에선 방송활동과 진료를 더 수월하게 병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수연금 등 경제적 혜택이 아깝지 않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65세 정년이 지나면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자리를 옮기자 제일병원을 찾았던 일부 환자들이 진료비를 돌려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환자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원만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오 박사는 환자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고 소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환자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일관하는 일부 의사들이 보고 배워야 할 덕목이다. 그는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할지, 어려운 의학적 소견을 환자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등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며 “환자와 격없이 지내고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 박사가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환자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그는 KBS 2TV ‘비타민’, MBN 이색토크쇼 ‘황금알’, SBS ‘좋은 아침’, KBS1 ‘생로병사의 비밀’ 등 다양한 예능·다큐프로그램에 출현해 올바른 건강정보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보통 의사들은 패널로 방송에 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풍부한 방송경험을 토대로 아예 진행까지 맡고 있다. 현재 MBN ‘건강비법 100세로’와 KBS1 라디오 ‘오한진·이정민의 황금사과’의 진행을 맡아 전문MC 못지 않은 입담을 뽐내고 있다. KBS 2TV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서는 가족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대부분 생방송으로 진행돼 방송이 부담스러울법도 한데 그에게선 오히려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오 박사는 “빡빡한 일정이 다소 힘들긴 하지만 즐기자는 마음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다”며 “방송을 통해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시야가 넓어지고, 환자와 눈높이를 맞추기가 한결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출연을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묵묵히 환자 진료에만 신경쓰다보니 우연히 방송 출연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그의 유머와 예능감은 예사롭지 않은 젊은 시절에서 비롯됐다. 그가 대학교 입학 후 친구들과 밴드를 구성, 주변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드럼을 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드럼 연주는 오 교수의 취미생활 중 하나다.
시련도 있었다. 진료 활동 외에 건강보험 관련 컴퓨터프로그램 개발 등 사업을 벌였지만 모두 대실패였다. 이 때 겪은 실패 경험은 환자와 눈높이를 맞추는 데 도움됐다. 특히 극심한 상실감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안정이 건강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면 외모도 자연스럽게 젊어진다. 오 박사는 “남보다 어려보이고 호감을 주는 동안(童顔)을 원한다면 성형에 집착하기보단 스트레스부터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스 극복을 통한 내적 안티에이징이 노화 방지의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신체 노화속도가 빠르다”며 “가족이나 지인을 잃거나 실연을 당한 뒤 얼굴이 급격히 늙어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음이 편해야 얼굴이 활짝 핀다’는 말처럼 정신적인 만족이 선행돼야 건강하고 즐겁게 나이먹을 수 있다”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알고 사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만으로도 동안이 되기 위한 조건을 70%는 갖춘 셈”이라고 강조했다.
오한진 박사가 지난해 12월 대전 롯데백화점에서 ‘노화방지 항산화요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노화를 유발하는 또다른 원인은 활성산소다. 그가 예로 든 노화이론(damage theory)에 따르면 활성산소가 많이 만들어질수록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활성산소 생성을 촉진하는 요인은 스트레스, 과식, 과도한 운동, 흡연, 과음, 방사선, 자외선 등이다. 오 교수는 “활성산소가 뇌세포에 영향을 미치면 치매, 눈에 작용하면 시력저하·백내장·노안, 귀에 영향을 끼치면 난청이 올 수 있다”며 “스트레스 관리, 적절한 식습관, 적정 강도의 운동으로 활성산소 생성을 최소화하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된다”고 설명했다.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다이어트에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최근 유행하는 다이어트를 무작정 따라하면 전보다 살이 쉽게 찌는 체질로 바뀌거나 건강을 해칠 위험이 크다”며 “특히 40세 이상 중년층은 자극적인 방법으로 몸을 망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나이를 먹을수록 살을 빼기 어려운 이유는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노화로 성장호르몬이 감소하고 근육량이 줄어든 데다가 기초대사량까지 함께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나잇살’이 찌게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기를 모았던 ‘간헐적 단식’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끼니를 굶으면 인체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남은 에너지를 체내에 축적하기 때문에 공복이 반복되면 비만 위험이 높아진다”며 “지방이 체내에 계속 축적될 경우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헐적 단식을 무조건 따르기보단 자신의 체질에 맞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혈당이 쉽게 떨어지는 사람은 아침식사를 먹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오 박사가 꼽는 가장 효과적인 건강관리법은 금연과 적당한 운동이다. 담배는 무조건 끊어야 하고, 커피는 설탕과 크림을 빼고 하루 한두 잔만 마시는 게 좋다. 하지만 ‘오한잔’이라는 별명답게 유독 술에는 관대하다. 그는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정도로 술을 간단히 즐기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노화방지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니트(NEAT, Non-exercise activity thermogenesis, 비운동성 활동 열생성)’ 운동을 추천했다. 이 운동은 생활 속에서 활동량을 늘려 건강을 관리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걸어서 출·퇴근하기,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기,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일하기, 서서 청소하기 등이 해당된다. 과격한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움직임을 늘리면 하루 에너지소비량이 20% 증가하고 근육도 생기게 된다.
진료현장과 방송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해온 오 박사는 지난 1월 국내 최고 권위의 의학 학술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비만, 갱년기장애, 노인의학 분야에서 9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10여편의 교과서 및 서적을 집필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는 “의학한림원의 정회원으로 선출돼 뿌듯했다”면서 “한림원처럼 권위있는 전문가 단체에서 가정의학의 비중이 더 커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올해 초에는 국회 소속 녹색재단 상임대표로 임명됐다. 녹색재단은 국회에 등록·인가된 비영리 공익 연구재단법인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녹색산업의 육성 및 입법 관련 연구를 지원했다. 저탄소 녹색성장 특성화 민간 지식집단으로 ‘녹색 삶의 생활화’를 위한 범국민 캠페인 등을 추진하고 있다. 초등학생 교통지도로 잘 알려진 녹색어머니회를 산하 단체로 두고 있다.
그는 현재 대한비만건강학회장, 대한임상영양의학회장, 대한탈모학회장,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영양조사 제5기 조정자문위원, 질병관리본부 골·관절 건강관리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 위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노화를 이기는 팔자 건강법’, ‘동안습관’, ‘명의 14인의 365일 건강밥상(공저)’, ‘마흔의 다이어트는 달라야 한다’, ‘고령자 생활습관병 진료의 실제’, ‘통합의학 교과서’ 등이 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오 박사는 쉽고 편안하며 인간적인 의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환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의료인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이를 통해 국민들의 내적 안티에이징과 가정의학 분야 발전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오한진(吳漢鎭) 박사 프로필
1985년 충남대 의대 졸업
1994~1995년 대전선병원 가정의학과장
1995~1997년 대전을지병원 가정의학과장
1997년 성균관대 삼성제일병원 가정의학과장
1997년 성균관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부교수
1998년 대한일차의료학회 총무이사
2001~2003년 대한임상노인의학회 재무이사
2002년 대한임상영양학회 이사
2003년 대한가정의학회 홍보이사, 대한골대사학회 보험위원, 대한골다공증학회 홍보위원
2005년 대한가정의학회 학술이사
2010~2014년 제일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관동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2014년 現 비에비스나무병원 갱년기노화방지센터장
現 대한비만건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