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외모를 나이가 들어서까지 유지하도록 돕는 ‘안티에이징’에 대한 여성의 관심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새로운 시술이나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셀프관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시도해보는 여성이 적잖다.
국내서 쁘띠성형이 유행하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비수술적 성형시술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1997년과 2010년도의 미국 성형시장을 분석한 결과, 외과수술이 동반된 성형 시술은 13년간 172% 증가했지만 비수술적 성형시술은 709%나 늘었다. 수술로 인한 부작용이나 긴 회복기간으로 인한 지장을 피하려는 환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에서 일부 연예인을 중심으로 ‘미용침’이 눈길을 끈 것이다. 약물을 주입하지 않아 부작용을 현저히 줄인 것도 특장점으로 꼽혔다.
서양에서는 침술을 이용한 피부재생의 기전을 침에 의한 미세한 자극과 외상이 피부의 복원기능을 촉진시키고, 이 과정에서 표피 및 진피가 재생되며, 콜라겐 및 엘라스틴 생산이 촉진돼 피부가 젊고 건강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 안면부 국소 부위의 혈액 및 림프 순환을 촉진시키고, 호르몬 조정에도 영향을 주는 것도 침의 효과라고 보고 있다.
서구에서 시행되는 미용침법은 대개 경혈을 자극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한국에서 시행되는 미용침법은 경혈자극과 더불어 얼굴·목·머리의 경근을 여러 깊이와 방향으로 자침하는 것에 차이가 난다. 이로써 안면부의 혈액·림프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고 표정근의 긴장과 이완이 조절돼 좋은 인상의 얼굴을 연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방 미용시술은 크게 미용침·매선자입으로 나뉜다. 윤영희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는 “칙칙해진 얼굴과 짙은 표정주름에는 보톡스와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는 얼굴미용침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얼굴미용침은 얼굴·머리·목의 근육과 경혈에 침을 놔서 얼굴로 가는 혈액 및 림프 순환을 원활하게 만든다. 이는 안색 및 피부탄력을 개선해 피부 미용효과를 낸다.
또 표정근육의 구축(단단히 뭉침)을 회복하고 근육의 탄력을 회복시켜 ‘표정주름’으로 불리는 팔자주름 등을 개선할 수 있다. 시술 후 멍이 드는 것 외에 다른 부작용이 없는 안전한 시술로 20~30대 젊은 연령에서부터 40~60대의 여성에서 안색개선 및 표정주름의 회복을 원하되 약물 없이 필러·보톡스 효과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다.
얼굴처짐으로 인한 주름에는 미용침보다 ‘매선요법(埋線療法)’이 효과적이다. 매선요법은 전통적인 침치료법을 응용한 것으로 인체 내에서 수개월이 지나면서 녹게 되는 약실을 안면의 지방조직에 삽입한다. 삽입된 실은 지방조직 내에서 녹으면서 지방을 분해하고 콜라겐을 생성한다. 이런 원리로 무너진 턱선·처진 볼살을 리프팅시켜 궁극적으로는 피부처짐과 주름에 효과를 보인다.
윤영희 교수는 “보통 40대 이상의 여성 중 얼굴처짐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다”며 “대개 2회에 걸쳐 시술되며, 시술 후 멍이 들 수 있지만 다른 보형물이나 지방이식 등의 시술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간혹 한방시술은 서양의학에 비해 ‘데이터가 부족하다’·‘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알려져 이를 못미더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미용침치료에 대한 연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일례로 1996년 대한침구학회지에 ‘안면미용요법에 관한 고찰’(A Study of Manual Techniques for Facial Beauty)이라는 영어논문이 게재된 바 있다. 이 논문은 당시 경희대 한의대 침구학교실 대학원 과정에 유학중인 외국인 의사가 지도교수와 함께 발표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윤영희 교수팀이 얼굴미용침의 얼굴 탄력개선에의 효과에 관한 예비연구 결과가 국제저널 ‘근거중심보완대체의학’(Evidence Based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에 게재되기도 했다.
당시 40~59세 건강한 여성을 대상으로 3주 동안 5회에 걸쳐 미용침 시술을 받게 한 뒤 시술 전후로 안면등고선을 촬영해 비교한 결과 시험대상자들의 평균 안면등고선 점수가 1.70점에서 2.26점으로 높아졌다. 안면등고선 점수가 높다는 젊었을 때처럼 얼굴이 탄력있어 입체적 감각이 살아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10살 간격으로 해당 연령대의 여성의 탄력정도를 설명할 때 쓰이는 지표다. 한국형 미용침법의 유효성이나 안전성에 관한 국내의 연구는 이뤄지고 있었으나 국제저널에 게재되거나 국제학회에서 발표된 것은 이 연구가 처음이다.
윤 교수는 지난해 12월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의학침술과 연관기술에 관한 국제회의’(ICMART, International Congress of Medical Acupuncture and Related Technique)에도 참여해 한국 미용침술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이 학회는 1983년 침술에 관심있는 유럽지역 의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단체로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의학 침술 학회다. 유럽의 경우 ‘미용침술’이 생소하지만 관심이 가장 많아 첫 회의에서 발표해 호응을 얻었다.
이같은 연구와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시술받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대중화된 것’은 아니다. 이제 막 국제 무대에 발걸음을 내딛은 만큼 오히려 ‘스페셜 케어’ 정도로 간주되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음대에 재학중인 이 모씨(27·여)는 “미용침이 좋다는 것은 ‘한국사람’이라서 아는 것이지, 이를 받으려고 한방이나 침술소를 굳이 찾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며 “연예인들도 이벤트성으로 한두번 시술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까지 미국내 한방병원에서 미용침 시술은 한인이나 중국인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미국 뉴욕대에 재학중인 치대생 서 모씨도 “아직까지도 서구인들은 카이로프랙틱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체의학에 의존하지 않고 서양의학만 신뢰하는 분위기”라며 “침술보다는 보톡스를 선호하지만 이를 커버하는 의료보험을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여서 그저 관심만 가질 뿐 막상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훈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교수는 “미용침 차트의 표준화를 통해 개별증례 수집 및 분석, 학회 중심의 신치료 기술개발, 관련 연구기관의 기전 연구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체계적이고 확고한 학문적 기반을 다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미용침은 외국인 환자나 외국에서 견학 온 의료인들이 대단히 관심을 많이 갖는 주제로, 요즘 떠오르는 의료관광에서도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