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엄마 콤플렉스’서 벗어나야 … 자신이 모든 것 해낼 수 없다고 인정해야 ‘좀비엄마化’ 막는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4일 서울 종로 플레이스빌딩에서 열린 웅진씽크빅 좋은엄마사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워킹맘 김 모씨(35)의 하루는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리면서 시작된다. 주섬주섬 일어나 회사에 가기 위해 치장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코앞에 두고도 ‘양말이 어딨느냐’며 칭얼대는 남편을 출근시키고 일어나기 싫어하는 아이와 ‘늦잠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겨우겨우 어린이집에 보내고 회사로 출근한다. 남편과 비슷한 수준으로 바쁜 일을 하고 있지만 집안일은 김 씨의 몫이다. 맞벌이를 그만 둘 상황도 아니고,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쩔 수 없다.
아이 숙제 봐주기, 놀아주기도 김 씨의 몫이다.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라 여긴다. 평소 집에서 챙겨주지 못한 죄책감에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매일 새벽 1~2시쯤에 하루를 마감한다. 마음놓고 푹 자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김 씨처럼 일과 집안일 모두를 떠맡고 있는 워킹맘의 고충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신의진 새누리당 국회의원(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가 4일 서울 종로플레이스타워에서 열린 ‘웅진씽크빅 좋은엄마 사관학교’에서 강의를 맡았다.
이날 신 의원은 “우리나라는 심각한 저출산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출산율 저하로 향할 수밖에 없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여성들이 왜 아이를 낳는 것을 기피하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지극히 남성중심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정책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출산장려금 지급’과 ‘보육료 지원’ 등 돈만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인식이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다.
두 아이를 가진 신 의원 자신도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강의에 참석한 워킹맘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모성애, 한 생명의 탄생은 결국 유전자의 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를 막는 게 현실의 문화”라고 비유했다.
아직까지 ‘여자는 아이들만 잘 키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육아는 지극히 당연하게 엄마만의 몫’으로 이어진다.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면 엄마의 뇌는 ‘마약에 중독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와 같은 강렬한 희열과 자극을 느끼게 되고 엄마와 아이의 유대관계가 공고해지면서 강렬한 모성애를 만든다. 하지만 이런 강박이 심해지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좋은엄마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시대에 일을 안할 수는 없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겨우겨우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원초적인 경제문제가 아니더라도 ‘자아실현’을 위해서도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
신의진 교수는 “아무리 똑똑한 여성이라도 집안에만 있으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오직 자식들 성적관리에만 쏟아붓게 된다”며 “엄마일 때 느끼는 행복, 직업을 가진 상황에서 느끼는 자존감·성취감은 각기 달라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함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0~50대 여성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낸 뒤 ‘빈둥지증후군’에 빠지는 것도 가정에 ‘맹충’하는 것에 기인하는 셈이다. ‘아이의 엄마’만이 아닌 ‘나 자신’으로도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무조건 ‘일이냐 아이냐’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한다. 당장 두 가지를 유지하는 게 어렵고 힘들지만 성급한 결정은 나중에 배제당한 욕구가 고개를 들 때 어떻게 다뤄야할지 고통스럽고 과거를 후회하게 된다.
대다수 워킹맘은 자신이 ‘만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자신의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다해내겠다고 생각하다가 자기도 파멸되고 육아도 망칠 수 있다. 완벽주의 워킹맘들은 아이에게 소홀히하지 않을까하는 죄책감을 방어하려고 애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안느마리 피이오자는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 나는 아무 문제 없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것은 죄책감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로 봤다. 워킹맘들은 실제로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직면조차 못하고 ‘모든 게 다 괜찮다’고 자위하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신 의원은 “직장일과 아이돌보기, 살림은 엄마 혼자서 절대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며 “엄마들은 ‘내가 다 해내겠다’는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우선순위를 1~10위까지 정리해본 뒤 3위까지의 일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리스트도 정해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신 의원은 “자신이 우울한 지도 몰라 생동감 없이 아이와 제대로 교감하지 못하는 ‘좀비엄마’들이 적잖다”며 “사실 ‘좋은 엄마’란 정해진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이들의 성향과 모습이 각기 다르듯 그에 맞는 좋은 엄마의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해야 한다’라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가 만든 평가잣대이자 환상일 뿐, 당신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장 특별한 엄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누구도 누군가의 ‘엄마’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 모든 선택은 엄마에게 달려 있으며, 죄책감은 엄마뿐만 아니라 아이와 가정까지 망칠 수 있다. 신 의원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무능력하고 엄마로서의 도리를 잘 하지 못한 게 아니다”며 “아이에게는 오히려 엄마 외의 두세 명의 어른과 애착을 형성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성공적인 워킹맘이 되려면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성공한 여성의 대표 모델 중 하나로 꼽히는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는 “경력을 쌓고 싶어하는 여성은 자신이 평생의 동반자를 맞이할 것인지, 동반자로 누굴 선택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결정일 것”이라며 “리더의 자리에 오른 여성에게는 아내의 경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남편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자가 주는 감정적 지지와 육아 경험의 공유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며 “나 자신도 함께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도와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서는 이런 발상을 하는 것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요즘엔 ‘스칸디 대디’(북유럽의 자상하고도 가사분담 잘하는 남편상)나 능력있고 친절한 연예인 남편의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사회분위기가 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여자가 애보는 게 당연하지’라고 여기는 남성이 훨씬 많다.
신 의원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회가 갑작스레 변하는 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결국엔 ‘적응’하는 게 살아남는 법”이라고 말했다. 무조건 참고 견디며 순응하라는 게 아니라 일과 육아 사이에서의 균형을 유지하고, 이에 적응하며 다른사람도 함께 적응하도록 분위기를 띄우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나 자신’을 아는 게 선행돼야 한다. 엄마로서 일할 때가 즐겁고 행복한지, 아이와 함께 있는 게 더 좋은지에 대한 자기만의 답을 갖고 있어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적응할 수 있다. 그래야 아이도 엄마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균형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엄마의 불안감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신 의원은 “워킹맘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여성들도 함께 분위기 바꾸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예컨대 ‘가족친화인증기업’의 제품을 애용하고, 워킹맘에게 불합리한 행사를 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권리를 원한다면 순응할 게 아니라 원하는 바에 대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라고 주문했다.
신 의원의 이번 강연은 오는 7일 수원 광교홀, 11일 부산 국제신문사 대강당, 14일 부천 플레이도시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