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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불안 느끼는 ‘의존적 성향’ 청년, “자소서라도 구입해야 안심”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2-14 14:42:17
  • 수정 2014-02-17 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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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적 만능, 스펙 위주, 부모과잉기대가 취준생 우울증으로 내몰아 … 직장서열화 고쳐나가야

성적 만능·스펙 중심에 부모 과잉기대가 취준생을 우울증으로 내모는 만큼 직장서열화를 고쳐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취업과외라도 받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요.” 이제 ‘대학교 7학년’에 접어든 여대생 이 모씨(28)는 얼마 전 두 번째 취업 그룹과외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꽤 괜찮다’는 대학을 다니고, 영어성적도 나쁘지 않지만 줄줄이 미역국을 마셨다.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는 그는 “지난해는 낙방의 연속이었다”며 “재수하는 바람에 남들보다 나이도 많아 과외까지 했는데도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취업준비생이 선호하는 기업에 다니는 임직원들이 자사 합격을 가이드하는 ‘그룹 과외’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해당 기업이 고평가해주는 스타일의 자기소개서 작성요령부터 면접 준비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한달에 약 50만원 내외로 결코 싼 비용은 아니었다. 토익학원을 3개월 정도 다닐 수 있는 돈이다. 월 4회 정도 주말에 면접 스터디를 하고, 자유롭게 자기소개서 첨삭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과외는 수강하려는 학생들이 넘치기 때문에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씨는 운좋게 두 번이나 모두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구직자의 ‘스펙’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청년실업률은 4년 만에 최고 수치인 8.7%로 급상승했다. 원하는 회사를 목표로 장수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 대학생들에게 ‘낭만’이 사라진지는 오래됐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전쟁에 돌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알아주는 직장을 목표로 취업준비에 매진하지만, 공무원·공기업·대기업·전문직만이 제대로된 직장이라는 강박은 문제가 된다. 더욱이 “대학까지 나왔는데 시시한 일 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택의 폭이 협소해진다. 학점·교내외활동·영어점수·인적성공부·봉사활동·해외연수 등을 두루 섭렵한 ‘쟁쟁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은 대량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 문턱은 너무도 높다. 결국 이들은 어딘가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TV 등에서 이른바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의 개성을 어필하라’는 조언도 전혀 현실에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이 저만큼 했는데 내가 이 정도도 안되면 상대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패배감에 젖기 일쑤다. 개성은커녕 완벽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주체적’인 취업준비를 하는 게 어려워진다. 현재 취업을 준비하는 국내 20대 전반의 학생들은 엄마의 치맛바람과 학원에 익숙해져 있다. 의존적인 성향이 다분함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구직자들이 느끼는 ‘남들보다 잘나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은 그들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심어준 가치관의 파편일 수도 있다. 현 젊은세대의 엄마들은 ‘다른집 아이보다 우리 애가 낫다’는 생각에 어릴 때부터 온갖 학원을 다녀보게 했다. 초등학교 방학숙제 전시장은 아이들의 능력이 아닌 ‘어머니 솜씨 뽐내기’의 장이다. 학교에서 ‘수행평가 제도’가 생기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아이는 공부에 집중시키고 대신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모습도 흔했다.
하지만 입시까지는 부모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취업은 얘기가 달라진다. 정해진 과목을 공부하고 면접 등을 준비해 대학입시에 비해 취업시장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낙하산’을 태워주지 않는 이상 부모가 손쓸 도리가 없다.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크게 실망시켜본 적이 없는 청년들은 취업에서 처음 좌절을 겪게 된다. 4년 전 명절엔 “우리 애는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자랑했지만 지금은 그저 ‘서울대 취업준비생’인 상황도 허다하다. 이럴 경우 청년들도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엄마나 주변 사람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다른 곳에 의존하게 된다. ‘취업 컨설팅’업체가 자꾸 생겨나는데도 망하지 않는 이유다. 수요가 워낙 많기 때문에 운영에 큰 문제는 없다. 지난해에는 이런 구직자의 절실한 마음을 이용해 허위경력을 기재, 수강생들을 받았다가 사기 혐의로 고소당한 항공사학원 대표도 있었다.
한 대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기업에 재직하는 사원에게 300만원의 거금을 주고 자기소개서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라도 해야 왠지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명문대생 박 모씨(28)도 졸업을 계속 미루고 있다. 명문 중·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취업에선 왠지 죽을 쑤고 있다. 그는 “엄마가 학생시절부터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해온 걸 알기 때문에 죽고 싶은 정도로 괴롭다”며 “심리상담도 받아봤지만 그때 뿐,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소용이 없더라”고 토로했다.
그는 올해도 취업에 실패하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부모님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대학원에라도 들어가야 명분이 설 것 같다”며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낄 토대를 찾지 못하면서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자랑스러웠던 아들이었던 자신이 고민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우 것이다. 
 
박민숙 삼육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는 성인 가운데 성장과정에서 ‘스스로 하는 습관’에 대한 훈련이 잘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성적 위주의 학교생활에서 모든 행위는 성적과 직결되기 마련인데 부모가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을 경우 자신도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면서 ‘의존적인 성향’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살아가면서 ‘좌절’은 겪을 수밖에 없는 일로, 어렸을 때부터 어느 정도의 좌절을 경험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라며 “이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숙하면서 ‘적응력’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 당장 누군가의 도움으로 ‘잘 보이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다.
박민숙 교수는 “설령 구입한 자기소개서로 회사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어쩌면 살아남기 힘들지도 모른다”며 “항상 중요한 순간에 언젠가는 빈틈이 나타나기 마련이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대처할 능력이 떨어지면 곤란한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무조건 ‘자신의 진정성을 이해해주는 회사만을 찾으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다만 취업에서 주위의 기대 등을 의식해 ‘레벨’을 정해놓고 이에 맞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지양돼야 할 자세”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해도 어릴 때부터 성적 등에 치우치고 성인이 돼서는 취업한 곳 등에 따라 ‘계급’을 만드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이를 개인에 불과한 존재가 거부한다고 해서 사회가 달라지는 게 없다는 여기는 사람이 늘면서 결국 과거보다 불안정성이 높아진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불안감, 우울증 등이 높은 이유다.
박 교수는 “이런 현상을 사회가 해결하려기보다 개인이 순응해가며 직접 감당하려는 경우가 많다 보니 통제할 수 없는 불안이 증가하는 추세라 안타깝다”며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취업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생기거나 강박증, 불안증이 심하다면 병원을 찾는 게 맞지만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다.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사회적인 시스템 문제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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