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한 건 참아도 불쾌한 건 못 잊는”게 환자 심리 … 환자 첫 대면 ‘1초’가 병원 신뢰 가른다
의사가 아무리 ‘명의’이거나 ‘친절왕’이더라도 병원의 얼굴인 접수직원이 환자의 기분을 망치면 그 병원을 다시 찾고 싶지 않기 마련이다.
# 최근 산부인과를 찾은 대학생 김 모씨(24·여)는 ‘다시는 그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의사선생님도 다정하고 섬세해 2년 넘게 다니던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이같은 마음을 먹은 것은 데스크에서 접수하는 병원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 때문이었다.
김 씨는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를 맞기 전 전반적인 부인과 검진을 받았다. 검사 결과 몇가지 균이 검출된 것을 알게 됐다. 성매개로 전파되는 균이라 창피했지만 3회 약물치료를 받아야 했다. 중간에 잠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바람에 2번 치료를 받은 뒤 6개월 후에 병원을 방문하게 됐다.
문제의 직원은 김 씨에게 초진·재진 여부를 물은 뒤 “왜 치료를 안 받고 방치했대?”라며 “아무튼 남자 많이 만나는 애들은…”이라며 모든 사람이 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핀잔을 줬다. 게다가 병명을 크게 말하는 바람에 주변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쏠리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 재수를 마치고 대입에 성공해 입학선물로 성형수술을 하게 된 박 모씨(21)는 상담해주던 병원 코디네이터의 말에 상처만 입고 성형수술은 포기했다. 단순히 쌍꺼풀수술만 하고 싶었던 그는 의사를 만나기 전 ‘상담실장’에게 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상담실장은 자신이 마치 의사라도 되는 양 “당신은 눈은 물론이고 얼굴윤곽, 코 라인도 다 잡아야 성형한 티가 나지 않고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지르면서 ‘견적’을 냈다. 하지만 외모콤플렉스를 심히 건드리자 ‘성형으로 다시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의기소침해졌다.
비웃는 듯한 말투의 상담실장의 말에 울컥 반발심이 들어 ‘의사도 아닌 주제에’ 하는 억울한 마음도 생겼다. 친구들이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면 두손 들고 말릴 생각이다.
# 한방병원을 찾은 직장인 정 모씨(25·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꽤 큰 병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무과에서 일을 처리하는 태도가 영 ‘꽝’이었다. 수납 직원은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을 찾겠다며 창구 앞의 정 씨를 우두커니 내버려두고 다른 동료들에게 ‘카톡’을 해댔다. 카톡이 끝났다 싶었더니 남자 동료와 농담 따먹기를 하며 ‘밀당’하는 모습에 부아가 솟구쳤다. 과거의 치료경험 때문에 한의사에 대한 신뢰도 높았던 터에 실망이 컸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참지 않고, 의사에게 ‘고자질’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인터넷 등의 발달로 환자들의 의료지식은 높아지고 있다. 병원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예전의 ‘권위’만 세우던 의사의 모습도 점점 사라지고, 마치 서비스 종사자처럼 손님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TV에 나오는 스타의사들도 위엄을 버리고 상냥하고 친절한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일반인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스스로 ‘망가진’ 모습으로 개인 일상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의사가 인기다.
잘 나가는 의사들 대부분은 실력·스펙은 물론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이벤트 등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를 모시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마케팅하면서 그들이 간과하는 게 ‘직원의 친절’이다.
사실 환자가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보는 사람은 의사가 아닌 ‘접수직원’ 등이다. 의사가 아무리 ‘명의’이거나 ‘친절왕’이더라도 병원의 얼굴인 접수직원이 한번 환자의 기분을 망치면 그 병원에 들어오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의료인 서비스교육 전문업체인 메디탑서비스연구소의 나현숙 대표는 “병원은 신뢰와 배려를 기본으로 한 공간”이라며 “이런 곳에서는 사소한 말투와 목소리톤이 환자의 신경을 거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심신이 약해진 경우가 많고, 성형외과 등 예뻐지기 위해 찾더라도 ‘새로운 변신’을 앞두고 싱숭생숭 불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병원 종사자가 처음 대면할 때 ‘1초의 따뜻함’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처음 문을 열고 접수처나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 눈을 맞추고 웃는 것만으로도 첫 이미지가 좋아져 환자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데에는 1초 정도 걸린다.
나현숙 대표는 “그렇다고 환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나치게 떠받드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며 “친절은 거창한 게 아니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게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예쁘게 말을 해도 가식적으로 들린다면 그것은 완벽한 친절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그는 “바쁜 업무에 시달리는 탓에 병원 직원들이 무표정한 경우가 많은데 이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며 “환자는 불편한 것은 참아도 불쾌한 것은 참지 못한다”고 조언했다.
3~5분 짧은 시간 안에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들도 피곤하긴 매한가지다. 의사도 사람인 만큼 항상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일부 의사 가운데에는 ‘의사의 권위’만을 중시하며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설명으로 낫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
나 대표는 “환자의 정보수준이 높아지고 의사수도 많아지는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했을 때 환자들은 친절하고 상냥한 병원을 찾게 된다”며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말투와 태도가 곧 ‘병원의 신뢰도’로 이어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즉,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의사라면 환자와 관계가 좋은 사람을 더 찾게 된다는 의미다. 더구나 치료란 것은 한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인 만큼 신뢰관계 구축은 분명 중요한 문제다.
그는 “신뢰라는 게 꼭 실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며 “‘권위 문제’를 내세우며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권위는 주위에서 만들어주는 것으로 친절한 의사가 권위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