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진행됨에 따라 일부 환자에서는 복강 내에 체액이 축적되는 ‘악성 복수’가 발생한다. 복수가 과도하게 쌓이면 복부 팽만, 통증, 호흡곤란 등으로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뿐 아니라 예후도 불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악성 복수의 발생 원인과 그에 따른 미생물학적·면역학적 특성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윤진아 순천향대 부천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팀은 장, 방광, 복수액을 통합적으로 분석해 악성 복수의 미생물군집과 면역환경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2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총 66명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악성 복수가 있는 환자군(20명)과 없는 환자군(46명)을 비교 분석했다. 각 환자의 장, 방광, 복수에서 채취한 시료에 대해 16S rRNA 유전자 시퀀싱과 유세포 분석(Flow Cytometry)을 시행하여 미생물 다양성과 면역세포 분포를 평가했다.
그 결과, 복수액 내 미생물 부하는 매우 낮아 대부분이 무균 상태임을 확인했다. 장 및 방광 내 미생물 군집은 복수 유무에 따라 큰 차이는 없었으나, 복막 전이가 있는 환자에서 염증 유발 세균으로 알려진 클로스트리디아(Clostridia) 및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Gammaproteobacteria)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복막 전이가 없는 환자에서는 바실라이(Bacilli) 등 유익균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특정 미생물군이 종양의 전이 및 복수의 면역 환경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장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하위 분석에서는 4기 환자의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1기 환자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반대로 방광 미생물 다양성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장과 방광이 각각 독립된 미생물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며, 종양 부하 및 전신 염증 상태에 따라 상이하게 반응함을 의미한다.
복수액 내 면역세포 분석에서는 T세포와 NK세포의 현저한 감소가 관찰돼 복수 내 면역환경이 면역억제적임을 보여줬다. 이런 면역억제 환경은 종양의 면역 회피를 돕고, 복막 전이를 촉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윤진아 순천향대 부천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윤진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악성 복수와 복막 전이 환자에서 장 및 방광 미생물군집을 함께 분석한 최초의 시도이며, 복수가 단순한 종양 부산물이 아니라 미생물과 면역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독립적인 종양 미세환경임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또 “복수 내 미생물군과 면역세포 간의 상호작용은 향후 새로운 진단 마커 발굴과 면역기반 치료전략 수립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향후 특정 미생물을 표적으로 하는 항암보조치료 전략 수립, 장내 유익균을 활용한 면역조절 치료법 개발, 복막 전이나 질병 진행을 조기 예측할 수 있는 미생물 진단 마커 발굴 등을 위한 후속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대규모 종단 연구와 메타유전체학, 대사체학 등 고차원의 오믹스 분석기술을 도입하여 악성 복수의 미생물-면역 상호작용을 정밀 규명하고, 진행성 암환자의 맞춤형 치료전략 수립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Cancers’(5-year IF 4.9, Q1) 최신호에 게재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