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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떡값’ 하루아침에 없어질까요 … 제약사-병원 공존의 ‘덫’
  • 문형민 기자
  • 등록 2014-01-15 15:35:07
  • 수정 2019-11-06 01: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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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약 리베이트를 해부한다(2) … 제약매출 20~60%가 판관비로, 리베이트 병원매출 3~5% 차지

의약분업 시행 이후 정형화된 의약품 관련 리베이트는 제약사-의사간 공생관계를 유도하고 있어 R&D중심의 제약산업 발전 유도와 의약품 유통구조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림 김태원

국내 제약업계의 납품 관련 리베이트는 해방 이후 한복지, 고급볼펜, 스위스나이프로 시작해 최근에는 앰불란스, 법인카드 등으로 규모와 발상에서 ‘변신’과 ‘진화’를 거듭해왔다.

제약 리베이트의 시초는 1945년 8월 광복을 맞아 제약사들이 시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시에는 실제 ‘떡값’이란 명목으로 명절이나 생일을 빙자해 현금이나 쌀, 떡, 건빵, 분유, 건포도, 한복지, 과일, 육류, 건어물 등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물자가 부족해 리베이트로 돌리는 돈의 액수나 품목이 지금과 비교하면 굉장히 소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다국적제약사들이 국내제약사들과 손잡고 영업을 진행하면서 고급볼펜, 스위스제 다용도나이프, 가방 등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작은 물품을 선물하는 수준에서 싹을 틔웠다.

제약사들이 본격적으로 리베이트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처방약 결정에 미치는 중소병원의 봉직의나 개원의에게 처방권유를 위해 마케팅 활동을 벌이면서부터다.

19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후 관행화된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영업은 현금 등 금품제공에서 회식비 대리 결제, 병원 물품 대리 구입 등으로 변화돼갔다.
2000년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는 돈을 주는 루트나 명목이 다양화됐다. 휴가여행비, PMS(시판 후 임상조사)참여비용, 키닥터 자문료 및 학술강연료, 논문 번역료, 세미나·국내외학회 참가비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제약사가 의사에게 건네는 리베이트 형태는 점점 치밀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다국적제약사는 해외 현지에 있는 본사를 통해 의사 자녀의 유학비를 지원해주거나 해외학술대회 참가비를 지원해준다.

동아제약의 경우 제약사와 의사간에 에이전시를 두고 의사가 동영상 강의 등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면 제약회사는 에이전시를 통해 강의료 명목의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삼일제약은 논문번역업체 F사 최모(52·불구속 기소) 대표에게 번역을 의뢰한 뒤 거래처 의사들에게 논문번역 참여를 유도하는 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이밖에 현금, 상품권, 호텔식사권, 기프트카드, 법인카드, 골프채, 노트북, 항공권, TV 등 다양한 형태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리베이트로 사용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카드로 물품을 구매한 것처럼 가장하는 ‘카드깡’까지 동원했다.

CJ제일제당은 자사에 우호적이거나 의약품 지정 권한이 있는 이른바 ‘키 닥터(key doctor)’ 의사 266명에게 43억원 상당의 법인카드를 제공했다. 이들에게 제공된 법인카드는 병원에서의 지위를 고려해 적게는 200만원, 많게는 1억원까지 각각 다른 한도액이 책정됐다.
2010년 11월 리베이트 제공 업체와 의사가 함께 처벌받는 쌍벌제가 시행되자 법인카드를 주말에 의사에게 빌려주고, 다음 주 초 돌려받는 수법으로 2억원 상당을 사용케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쌍벌제 시행 이전과 합치면 모두 45억원이다.

제약사들이 이런 방식의 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1대1로 영업사원을 붙여 의사를 서포트하면 관리하기 편하고, 중간 중간 처방실적을 확인한 뒤 그에 따른 리베이트를 건넬 수 있어 안전하다는 측면 때문이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리베이트를 없애기 위해서는 리베이트가 소멸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며 “현재의 의약품 유통구조를 그대로 두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봐야 다수의 보건의료산업의 피해자가 양산되고, 보건의료산업의 경쟁력만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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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이트 쌍벌제 이후 의사와 제약사측 모두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판매관리비(광고선전비, 마케팅비용 등으로 구성되며 이중 일부가 리베이트로 유용됨)는 제약사 매출액의 20%부터 심한 경우 60%를 상회하는 등 여전히 제약사 영업활동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의 구조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이상 의약품을 판매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는 리베이트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업계의 공감대가 공고하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문제는 한국 제약시장이 제네릭에만 편중돼 있다는 데서 시작한다. 의약품 레시피(제조능력)만 가지고 숱한 제약사들이 불나방처럼 제약업에 뛰어들어 결국에는 리베이트 영업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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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릭만 생산하는 두 제약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A라는 제약사가 리베이트를 돌려 일대의 병원과 약국의 점유율을 높이면 같은 영역권에 있는 B라는 제약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B 제약사는 더 많은 뒷돈을 써가며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 혈안이 된다. 한술 더 떠 이들의 고객인 의사나 약사는 두 회사의 경쟁을 부추겨 더욱 많은 금품을 받아내려 머리를 굴리게 된다.

이런 상황은 오리지널약이나 개량신약의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제네릭은 효능이나 품질 면에서 서로 비슷비슷하다보니 고객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는 가격과 의사·약사의 환심을 사는 수단밖에 없다.

중견 제약사인 B사에서 3년간 근무한 영업사원 J씨(현재 퇴직)는 “내과나 정형외과 등 제약사간 경쟁이 과열된 분야에서는 처방약가 대비 30% 이상의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으면 문전박대”라며 “리베이트는 근절돼야 하는 일이고 제공하는 규모도 점진적으로 줄여야하지만 현실은 멀다”고 말했다.

같은 성분의 약품에 수십개 회사가 몰려들어 복제해 판매하는 국내 제약산업 구조상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영업력과 브랜드 파워가 높은 상위제약사와 달리 중소제약사는 리베이트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형제약사 출신 영업부장 L씨는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리베이트 영업방식은 거의 동일하지만 자금 조달력에 큰 차이를 보인다”며 “대기업은 내부 영업방침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신속한데 비해 중소기업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고 자금 규모도 열악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은 기존 영업망이 두터워 기존 의사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영업을 벌이는데 반해 중소기업은 거래망이 빈약하다 보니 리베이트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사들은 의사가 자사의 제품을 대량 처방해줄 경우 보상 차원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게 관례로 굳었다”며 “외형상 리베이트 적게 주더라도 병원의 요구로 수천만원대의 앰뷸런스나 수술기자재를 사주는 등 편법을 동원해 병원장에게 이익을 준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수의 영업사원들은 “리베이트 근절에는 찬성하지만 이 수단이 없어지면 사실상 영업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리베이트 수사가 확대되면서 적발된 제약사들이 형사 및 행정처분에 이어 세무조사에 따른 세금징수까지 받고 있지만 여전히 의사의 처방 유도를 위해 리베이트라는 시한폭탄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의사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이들의 사정도 딱하다. 정부의 낮은 의료수가정책 때문에 정상적으로만 영업해서는 병원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현상은 국민의 건강을 훼손한다.

서울 용산구의 한 내과 원장은 “통상 개원의들의 전체 매출액 중 리베이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3~5%정도”라며 “리베이트가 없어진다면 의사들이 오히려 안전하고 유효성이 입증된 오리지널약품을 처방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당초 의도처럼 중저가 제네릭 처방이 늘어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의 피부과 원장은 “다른 분야, 예컨대 건설업종은 제약계 보다 리베이트가 더 만연하고 규모도 방대하다”며 “어떻게 보면 정부가 사적인 경제영역까지 법으로 제단하려 든다”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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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수가는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의사나 약사에게 의료서비스를 받고 그 대가로 제공하는 돈을 말한다.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정도, 서비스 제공자(의료인)의 소득, 물가상승률 같은 경제지표 등을 토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한다.

2012년 11월 23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주최한 ‘OECD국가의 주요 의료수가 비교연구’에서 건강보험국제연합자료를 이용해 수가를 비교한 결과 2011년도 국내 제왕절개수술 평균 의료수가는 약1769달러로서 미국1만4374달러, 칠레 3589달러에 한참 밑도는 최하위였다.

의사들은 이처럼 낮은 의료수가가 병원경영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리베이트에 대한 의존성을 높인다고 하소연한다. 다수가 리베이트 근절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동화 속 이야기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결국 현재의 의료제도나 제약산업구조는 의사와 제약회사를 범법자로 내몰고 불쌍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제약산업의 구조조정, 시장경제원리의 보다 과감한 도입을 통해 리베이트 대신 연구개발에 따른 R&D실력과 의과학적 이론에 기반한 근거마케팅으로 경쟁토록 제약회사를 유도해야 풀릴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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