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안경점의 콘택트렌즈 할인 경쟁을 막았다가 적발된 한국존슨앤드존슨이 국내 공급하는 가격이 외국보다 높은데다가 값싼 범용 제품의 공급을 고의적으로 차단하고 비싼 프리미엄 제품만 공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대리점이나 안경점에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필수적인 저가 제품 라인 외에 원하지도 않는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을 끼워팔기 식으로 밀어 넣어 부담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초기 물건 구매시 안경원에게 상당히 많은 양을 매입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건강식품 회사에 다니는 M모 과장(35·여)은 “지난달 그동안 써오던 ‘원데이아큐브’ 렌즈를 사러 안경점에 갔는데 주인으로부터 ‘단종되어서 갖고 있던 물량이 나가면 더 이상 물량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며 “대신 상대적으로 비싼 ‘원데이아큐브 트루아이’나 ‘원데이아큐브 모이스트’를 구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곳 안경점 주인은 “원데이아큐브는 원래 우리나라에만 나오는 제품인데 단종됐다”는 식으로 고객을 설득하고 있었다. 원데이아큐브는 한국존슨앤드존슨 홈페이지의 제품 리스트에 남아있되 사실상 공급량을 줄여 품목이 사라지는 단계다. 이에 비해 존슨앤드존슨 본사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원데이아큐브 제품이 소개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의 정책상 원데이아큐브 공급을 서서히 죽이려는 측면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이윤이 박한 이 제품을 덜 취급하려는 안경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소비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원데이아큐브는 서울 주요 안경점에서 30개당(양눈의 경우 15일 사용분) 3만5000~3만8000원인데 반해 트루아이는 4만5000원, 모이스트는 4만원, 모이스트 난시용은 4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더욱이 트루아이의 경우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3만8484원, 해외 오프라인 안경점에서는 4만387원 국내 평균가격보다 4만4871원 비싸다.
국내서는 안경점과 안과 등에서 오프라인으로만 콘택트렌즈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트루아이는 4만50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반면 해외서는 최저 3만원 남짓한 금액으로도 구입할 수 있다.
M씨는 “하루에 2개씩 소비해야 하므로 콘택트렌즈 구입비도 적잖은 부담”이라며 ‘원데이아큐브’를 써도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안경점에서 프리미엄을 강권하니 불만”이라며 “해외 인터넷사이트를 통한 직접구매나 공동구매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구매자들이 자주 접속하는 블로그에는 ‘원데이아큐브 모이스트’ 30개 들이를 2만1000원에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가격은 4만원이다. 따라서 3팩 이상만 구입한다면 5만7000원이 절약된다. 물론 배송 비용이 추가로 들지만 해외사이트에서 제공되는 할인쿠폰을 활용하면 구매수량이 많을수록 절감되는 비용도 커진다. 현재 해외사이트에서 200달러를 초과해 물품을 구입할 경우 관세가 부과되지만 그 이하 금액으로는 관세도 적용받지 않는다.
서울 은평구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B씨는 “정찰제라는 명목으로 존슨앤드존슨은 해당 가격 이하로 판매할 경우 제품을 철수시키겠다고 말해왔다”며 “상대적으로 ‘을’인 안경점 입장에서는 업계 1위인 존스앤드존슨 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이번 사건이 자칫 안경점들의 가격담합으로 비춰질까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서울 충무로의 한 안경점 대표는 “본래 콘택트렌즈를 취급하지 않지만 한류 외국관광객들과 젊은 학생들을 고려해 지난해 가을 렌즈를 처음으로 구비했는데 꼭 필요한 ‘원데이아큐브’와 ‘원데이아큐브’ 외에 나머지 ‘디파인’‘모이스트’ 등도 함께 구입하라는 강압을 받고 결국 수용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안경점뿐만 아니라 존슨앤드존슨과 첫 거래하는 안경점은 초기에 많은 물량을 강제적으로 구매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국내서는 존슨앤드존슨뿐만 아니라 4대 글로벌 메이저 업체의 일회용렌즈 가격이 해외에 비해 유독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인터넷 해외구매 대행사 관계자는 “비쌀수록 좋은 제품이라 인식하는 소비심리를 이용해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서 고가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소비자들도 이를 깨닫고 무조건 비싼 제품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서 콘택트렌즈 관련 광고 경쟁이 심한 것도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이유 중 하나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국내 콘택트렌즈 시장규모는 5100억원 정도로 추정되며 전체 안경시장의 21%를 차지한다. 국내 콘택트렌즈 공급시장은 한국존슨앤드존슨, 바슈롬, 시바비전, 쿠퍼비전 등 4대 외국계 업체가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존슨앤드존슨은 2000년대 초부터 국내 시장점유율 1위(45%)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는 35.4%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제품 대부분을 직접 안경원에 공급하고 있으며, 안경원을 통한 유통비중이 99%에 달한다.
9일 발표된 공정위 조사 결과 존슨앤드존슨은 2007년부터 안경원에 거래금액의 10%를 할인해주는 대신 지정 가격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면 약정해제 및 할인금액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안경원이 판매가격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영업사원과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시장가격을 조사하기도 했다.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안경원에는 최소 2주일부터 최대 1개월간 제품 공급을 중단했다. 공식 대리점이 이 규약에 따라 할인받은 제품을 비거래처에 유출하면 거래 해제 및 할인금액을 취소한다는 약정을 맺었다.
이에 공정위는 콘택트렌즈의 판매가격을 제한해 공정거래를 저해한 혐의로 18억600만원의 과징금을 존슨앤드존슨에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