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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
박근혜 정부 ‘영리 자회사 허용’은 의료민영화 위한 꼼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3-12-18 17:11:00
  • 수정 2013-12-20 1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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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리 자회사 설립은 공공성 약화와 의료비 상승 유발 … 수익창출 위한 부대사업에만 집중 우려

미국의 의료민영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 ‘식코’ 포스터

정부가 지난 13일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 허용 등의 내용을 포함한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후 한반도 전체가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들썩이고 있다. 이번 정부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대한병원협회와 달리 시민단체와 대한의사협회 등은 정부가 의료상업화에 앞장서고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여론도 심상치 않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시작된 ‘의료민영화 반대’ 서명운동에는 18일 현재 7만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동참했다. 이에 정부는 “의료민영화나 영리병원과는 무관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여론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전국 848개 의료법인은 외부 출자를 받아 자회사를 설립, 온천·숙박업·여행업 등 영리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서울대병원이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학교법인과 사회복지법인에 한해서만 자회사 설립을 통한 영리사업이 허용됐다. 반면 의료법인은 구내식당, 의료인 교육, 장례식장 등 의료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불황, 수가 저하, 보험급여 확대 등으로 재정상황이 악화되자 병원계는 정부에 영리사업 허용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는 의료법인에는 분당차병원, 가천대 길병원, 을지병원, 제일병원 등 전국의 대형병원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이들 병원은 앞으로 온천 및 목욕장업, 의료기기·건강식품 개발, 바이오산업, 의료기관 임대, 외국인 환자 유치, 여행 및 숙박업 등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면 삼성서울병원이나 현대아산병원 등 대기업 계열 병원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있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M&A)도 허용돼 경영상태가 부실한 의료기관과 우량 병원의 통합이 가능해진다. 지금까지는 병원이 폐업하기 전까지 합병이 불가능했다. 또 해외환자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입원 가능한 병상 수가 늘어난다. 현행법상 상급종합병원은 총 병상 수의 5%까지만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국내 환자의 이용률이 낮은 1인실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경우 외국인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기존 2000개에서 4500개로 두 배 이상 증가한다.

병협은 이번 정부안에 대해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춘균 대한병원협회 대변인은 “최근 수익구조 악화로 병원들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자회사를 통한 의료기기 판매, 제약유통업, 해외환자 유치 등 부대사업이 활성화될 경우 수익을 보전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협은 또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의 경우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 및 국민 편의성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정부안대로 부대사업 범위가 확대되면 악화된 재정상황을 개선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보건의료시민단체와 의사단체 등은 병원이 자회사를 통해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면 의료공공성은 훼손되고 진료비는 상승할 수 밖에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예컨대 병원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자회사의 물품이나 서비스만을 사용하게 되고 이는 독점공급으로 인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환자에게 자회사의 의료기기나 약품을 권유함으로써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정책실장은 “어떻게 하면 돈이 될까를 궁리하면서 환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수익사업이 생겨날 것”이라며 “의료계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의협 관계자도 “영리법인 허용은 원칙을 무시하고 편법을 확대하는 정책”이라며 “정상 진료를 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왜곡된 현행 건강보험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또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논란이 됐던 영리병원 도입이 이번 정부안에 빠진 것에 대해 ‘자회사 설립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비난을 최소화하면서 영리병원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투자개방형 병원(For-profit hospital), 이른바 영리병원은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자본을 투자받아 병원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의 의료기관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기관 개설주체는 의료인 및 비영리법인(의료법인·사회복지법인·학교법인)으로 한정된다. 이 때문에 일반기업이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영리법인을 설립해야 하는데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삼성의료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개설 주체로 돼 있다.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되면 누구나 제한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의료비가 상승하고 의료기관으로서의 공공성이 감소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영리병원 도입을 시도했지만 국민과 시민단체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의 어두운 면은 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국민 중 약 4700만명은 비싼 보험료 탓에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약 1800만명은 의료보험은 들었지만 병원비가 너무 비싸 아파도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성공사례도 있다. 태국은 의료민영화를 바탕으로 한 영리병원 제도가 가장 활성화된 국가로 한해 150만명 이상의 외국인 환자가 방문한다. 태국 정부는 올해 외국인 환자 유치로 2조원 이상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는 13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정부안은 보건의료서비스 육성으로 포장된 명백한 의료영리화·의료상업화 계획”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의료영리화·상업화를 보건의료정책기조로 내세우겠다는 것으로 국내 의료시스템이 급속하게 영리화·상업화의 길로 들어서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 단체는 “의료기관의 자법인 설립 허용은 주식회사 영리병원 허용의 전(前)단계로 사실상 주식회사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통로를 만들겠다는 의미”라며 “자회사라는 우회로를 통해 외부자본 투입, 영리사업, 이윤 배분 등을 추진함으로써 영리병원 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자법인을 통한 부대사업 범위의 확대 방침과 관련해 “의료기관들이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보다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대사업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도 “현행 의료법상 공익적 기관이자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영리형 부대사업을 지나치게 확장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의료법의 기본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병원간 인수·합병 허용은 ‘영리 네트워크병원’을 합법화하려는 것으로 병원 인력의 구조조정을 초래해 치료의 안정성을 낮추고 병원인력의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자회사가 수익성을 추구하면 병원 전체가 수익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여길 수밖에 없다”며 “이는 병원은 진료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료법의 기본 취지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자법인 허용은 이름만 바꾼 의료민영화”라며 “대책이 가시화되면 의료상업화는 더욱 확대되고 국내 의료시스템은 일부 특정병원과 재벌기업 중심의 독점 형태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병원의 영리행위가 허용되면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의료비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환자의 부담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도 18일 성명서를 통해 “영리형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은 간접적인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정책과 다름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이번 사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의료와 의료영리화는 대한민국 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이는 정부가 국민이 아닌 대형의료 법인의 편에 선 것으로 건강권에 대한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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