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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장기이식’, 누가 먼저 선택받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3-11-14 09:31:47
  • 수정 2021-07-20 20: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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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액형·권역·친족여부 확인, 어리고 대기기간 길수록 유리 … 응급도, 폐크기, 심장무게 중요

장기밀매, 불법 장기적출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뤘던 영화 ‘공모자들’.

지난해 8월 개봉했던 영화 ‘공모자들’은 중국 원정 장기이식, 납치 후 장기적출 등 장기밀매조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을 다뤄 무더운 여름철 관객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장기밀매나 불법적출은 도시괴담의 단골소재로 인터넷 상에는 ‘할머니가 짐을 들어달라고 해 으슥한 곳으로 유인한 후 둔기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다’, ‘처음 보는 여성과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봉고차 안이었다’ 등 확인할 수 없는 얘기가 넘쳐난다.

이같은 괴담은 대부분 허위로 판명됐지만 브로커를 통해 중국에서 장기이식을 받는 사례는 실제 존재한다. 2006년 국정감사에서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대한장기이식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중국 신장 원정이식 환자는 205명, 간장이식 환자는 286명이었다. 이는 공식적인 자료여서 비공식적인 자료를 합치면 한 해 수백명의 환자가 중국으로 장기이식을 받으러 떠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식받은 환자의 약 20%가 감염증, 면역거부반응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것으로 추산돼 섣불리 중국행을 결정할 일은 아니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에서 이식수술을 기다리는 사람은 계속 증가하는데 이식 장기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즉 돈이 있어도 이식받을 장기가 없어 마냥 기다려야 할 때가 태반이다. 2011년에는 일부 대학병원이 뒷돈을 받고 장기이식 대상자의 응급도를 조작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장기이식은 어떤 과정과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지, 이식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어떤 게 있는지 등에 대해 간략히 알아봤다.

장기이식은 기존 치료법으로는 회복하기 힘든 각종 말기 질환자의 장기를 뇌사자나 다른 생체에서 기증된 건강한 장기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의학기술로는 간·심장·신장·폐 등 고형 장기와 각막·골수·뼈·인대·연골·심장판막 등 조직을 이식할 수 있다.

 
기증자가 살아있을 때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신장, 간, 조혈모세포 등이다. 신장은 2개 중 1개를 기증할 수 있고, 간은 기증자의 의학적 허용에 따라 일부를 절제해 수혜자에게 이식한다. 반면 전체 신장이나 간장, 췌장, 심장, 췌도, 소장, 폐, 각막 등은 기증자가 뇌사 상태일 때에만 적출할 수 있다.

장기이식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게 장기가 먼저 배분돼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6조’는 이식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되는 의학적 응급도, 판별기준, 항목별 점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선정기준은 이식장기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모든 장기에 해당되는 일반기준은 혈액형, 친족 여부, 기증자·이식자의 현재 위치(권역) 등이다. 이식 대상자의 혈액형은 기증자와 같거나 수혈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골수나 각막 등 수혈 가능 여부와 상관없는 장기는 혈액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혈액형이 일치한 상태에서 장기 배분 1순위는 배우자, 직계존속·비속, 형제·자매, 4촌 이내 친족 등이다. 2순위는 기증자를 관리하고 있는 뇌사판정대상자관리전문기관(장기기증 뇌사자를 발굴한 기관, HOPO)에 등록된 이식대기자 1명, 3순위는 기증자가 발생한 이식의료기관에 등록된 이식대기자 1명이다.

4순위는 현재 같은 권역에 있는 이식대기자로 1권역은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제주특별자치도이다. 제2권역은 대전광역시·광주광역시·충청북도·충청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 등이며, 제3권역은 부산광역시·대구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북도·경상남도 등이다.

장기별로 신장이식은 신장기능이 완전히 소실됐을 때 기증자의 건강한 신장을 체내에 이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신장은 이식대상자의 오른쪽 하복부에 위치하게 된다.

 
췌장이식은 췌장기능이 저하된 당뇨병 환자에게 시행하며, 전체 이식과 부분 이식법이 있다. 전체 이식은 이식대상자가 40세 미만 뇌사 기증자와 혈액형 및 세포조직이 맞을 때 실시할 수 있다. 부분 기증은 가족으로부터 가능하다.

신장 및 췌장은 사람백혈구항원검사(A·B·DR 등 백혈구표면조직적합항원 검사)를 실시해 모든 항원의 조직형이 기증자와 일치하는 대상자에게 우선 배분된다.

 
사람백혈구표면조직적합성항원으로는 A·B·C·D 영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D는 다시 DP, DQ, DR 등으로 세분된다. 신장 및 췌장이식때 고려하는 HLA(조직접합성항원)로는 A·B·DR 등 3가지 영역이 있으며 각기 한쌍씩 존재하므로 총6종의 HLA가 수혜자와 공여자 사이에 몇가지나 일치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A는 약20종, B는 약50종, DR은 20종이 존재하므로 6개 전부 일치할 확률은 극히 낮다.

조직형이 모두 일치하지 않을 땐 기증자와의 백혈구항원교차검사 결과가 음성인 대기자를 선정한다. 항원교차검사란 환자의 혈청내에 이미 공여자의 림프구에 대한 세포독성 항체가 존재하는가를 판정하는 것이다. 양성인 경우에는 이식 후 초급성 거부반응이 발생할 수 있어, 수술 전처치(탈감작 치료)를 해야 한다.
이 때 권역은 상관없다.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이식 대상자가 2명 이상일 땐 혈액형 일치 및 수혈 가능 여부를 확인한 후 장기를 배분한다.
 
사람백혈구항원검사 결과 일치하는 대기자가 없을 때에는 혈액형과 수혈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이 때 기준을 충족하는 대상자가 2명 이상일 땐 △나이 △대기시간 △과거 사람백혈구항원 교차검사 결과 2회 이상 양성반응이 나타났는지 여부 △신장이식 받은 경험 △장기기증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선정된다. 과거에 장기기증 경험이 있고, 나이가 만 11세 이하이며, 이식 대기기간이 4년이 넘을 때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또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받아야 하는 환자는 기증자와 같은 권역에 있거나 평가점수가 상위 25%에 해당되는 등 조건을 충족하면 어느 한쪽만 이식이 필요한 환자보다 먼저 장기를 배분받게 된다.

간이식은 회복될 수 없는 간을 모두 혹은 일부 제거한 후 기증자의 건강한 간으로 대체하는 수술이다. 지금까지는 간기능을 대신할 인공장기가 없기 때문에 간이식은 말기 간기능부전증 환자에게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간은 이식대기자가 기증자 체중의 0.8~1.2배에 해당되는 지 여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대기자가 2명 이상일 때에는 응급도가 가장 높은 사람 중에서 △재이식이 필요한 대기자 △기증자와 같은 권역에 있는 대기자 △다른 권역에 있는 대기자 순으로 배분된다.

국내에서는 현재 CTP(Child-Turcotte-Pugh) 점수를 이용해 이식자의 응급도를 판정한 후 뇌사자 간을 배분하고 있다. CTP 점수는 이식 대기자의 간성뇌증(encephalopathy), 복수(Ascites), 각종 간기능 혈액검사 등 수치를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눈 뒤 합산한 값이다. 간이식 대기자는 이 점수와 임상 상황을 종합해 응급도1(2A), 응급도2(2B), 응급도3(3), 응급도7(7) 순으로 나뉜다. 응급도1은 1주일 이내에 간이식을 받지 않는 경우 환자가 사망할 수 있는 초(超) 응급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난 9월 서경석·이광웅·이남준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팀은 간을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서는 CTP 점수법을 ‘MELD(model for end-stage liver disease)’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팀의 주장에 따르면 CTP 점수 요소 중 복수와 간성뇌증에 대한 평가는 의료진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위급한 정도를 나누는 데 한계가 있다. 이 점수는 또 한 등급에 포함되는 대기자의 범위가 넓어 위급한 정도를 세분화하기가 어렵다. 같은 등급 내에서는 등록대기시간, 뇌사자 발굴기관 인센티브 등 비의학적인 요소로 배분 순서가 정해져 정확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MELD 점수는 간기능을 나타내는 혈청크레아티닌, 혈액응고시간, 빌리루빈 수치 등을 수학적으로 계산한 결과로 객관적인 혈액검사 수치만 반영하기 때문에 의료진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고 대기자의 중증도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0년 전부터 MELD 점수로 뇌사자의 간을 배분하고 있다.

 
실제로 서 교수팀이 간이식 대기자 788명을 대상으로 두 방법을 비교 분석한 결과 MELD 점수가 대기자의 응급도와 생존율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광웅 교수는 “MELD 점수를 도입하려면 간대기자 등록시스템부터 새롭게 바꿔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장기이식센터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MELD 점수가 낮을 때에도 우선적으로 간을 이식받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중이나 응급도 등 조건을 충족하는 대기자가 2명 이상일 땐 신장·췌장과 마찬가지로 나이, 등록대기 시간, 장기기증 여부 등을 평가하게 된다. 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간 크기를 비교했을 때 분할이식이 가능한 경우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의 장은 이식수술을 담당하는 장기이식의료기관의 장과 협의해 분할 이식대상자를 추가 선정할 수 있다.

심장 및 폐는 이식자·기증자의 체중이나 폐 크기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심장이식 대상자는 기증자 체중의 0.5~1.5배에 해당돼야 한다. 폐이식 대상자는 흉부 X-레이 상으로 폐 크기가 기증자의 0.7~1.3배 수준이어야 한다.

 
이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대기자가 2명 이상일 땐 △응급도 △대기시간 △혈액형 일치여부 △대기자의 감염성 질환 유무 △기증자·대기자간 지리적 근접도 △이식대기자 나이 △기증자·대기자간 나이 및 체중 차이 △폐 크기 차이(폐이식) △대기자의 원인질환 유형 등을 평가한다.

심장이식 대상자를 선정할 때 가장 우선순위인 ‘응급도0’에는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좌심실이나 우심실에 조력장치를 하고 있는 환자와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있으면서 체외막형 심폐기를 가동 중인 환자가 해당된다. 다음 순위인 ‘응급도1’에는 인공심장을 착용한 환자,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력장치 및 심폐기를 착용한 환자, 대동맥내 풍선펌프가 있는 환자 등이다.


폐이식의 경우 ‘응급도0’에는 호흡부전증으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거나 체외막형 심폐기를 가동중인 환자가 1순위 대상자에 해당된다.

평가점수가 같을 때 심장과 폐를 동시에 이식받아야 하는 환자는 하나만 필요한 환자보다 먼저 장기를 배분받는다. 심장과 폐를 필요한 두 사람에게 나눠주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우선순위 선정은 어디까지나 응급도, 중증도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같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밖에 소장과 각막은 대기자의 응급도를, 골수는 사람백혈구항원검사 결과를 우선 고려한 뒤 일반기준을 적용해 이식 대상자를 선정한다.

최근에는 혈액형이 다른 기증자의 장기도 안전하게 이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혈액형이 맞는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약없이 기다려야 했던 말기 장기부전 환자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지난달 14일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는 세계 최다인 220례의 혈액형부적합 간이식과 국내 최다인 200례의 혈액형부적합 신장이식을 시행한 후 환자 생존율을 분석한 결과 96~98%로 기존의 적합 이식수술과 같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ABO 혈액형부적합 이식’은 기증자와 수혜자간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간·신장·췌장 등의 장기를 이식하는 고난도 수술이다. 수술 전 혈액형이 맞지 않는 수혜자를 대상으로 혈장교환술과 B세포제거 항체 주입 등을 실시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항체를 제거한 후 수술을 시행하게 된다. 최근 부적합 이식수술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혈액항원간 거부반응의 메카니즘 상 AB 혈액형 환자는 모든 혈액형으로부터 장기를 받을 수 있지만 O혈액형 환자는 오로지 O형 환자로부터만 장기를 받을 수 있어서 O형 환자가 상대적으로 장기이식의 수혜대상에 덜 오르는 ‘손해’를 이같은 새로운 혈액형부적합 이식치료술로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덕종 서울아산병원 신장이식팀 교수는 “풍부한 임상경험과 정교한 수술기법을 기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이식 건수와 생존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혈액형은 장기를 이식할 때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장이식 대기자가 1만3000명, 간이식 대기자는 6000명에 이를 정도로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수술법이 발전하는 동시에 장기기증 문화도 확산돼 더욱 많은 환자가 장기를 이식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이식장기의 수급 불균형현상은 인간 평균수명의 증가와 의학발전으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복잡한 뇌사판정절차와 뇌사판정 및 장기이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런 추세를 부채질한다.

지난 3일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주요 국가별 뇌사 장기기증 비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1년 기준 국내 뇌사자의 장기기증 비율은 7.2%(뇌사기증자를 총인구수로 나눈 후 100만명을 곱한 것)에 불과했다. 이는 스페인(36%), 미국(26.1%), 프랑스(25%) 등보다 3~5배 이상 차이나는 결과다. 문 의원은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장기기증자는 부족해 수급불균형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장기기증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단체·종교계·의료계간 사회적 합의체를 운영해 장기기증 및 이식제도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을 없애고, 뇌사자가 평소 명시적 기증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은 경우 기증에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추정동의제‘와 같은 획기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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