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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돌보기보다 컴퓨터게임 실컷하고파’ … 남성 산후우울증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3-10-10 09:04:55
  • 수정 2013-10-14 12: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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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덜트·피터팬족·캥거루족 늘면서 자기희생 못하고 개인욕구에 충실한 젊은 아빠 늘어

아빠 심리 시뮬레이션 통해 ‘역할모델’ 찾아야 … 외부 시선 이기고 ‘계획임신’ 나서야

매년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임신·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임산부를 배려·보호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2005년 제정됐다.

하지만 깊은 의미를 가진 출산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심리적·경제적 부담감이 가중돼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으로 번질 수 있다. 출산 후 4~6주 사이, 즉 산욕기 동안 우울감·심한 불안감·불면·과도한 체중변화·의욕 저하·자신에 대한 가치 없음·죄책감 등을 겪으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 심하면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지기도 해 위험하다. 배우 고소영·문소리·이혜근 등도 이런 증상을 경험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산후우울증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남성들도 점차 커지는 육아 분담 요구, 경제적인 부담감, 아빠 역할에 대한 정체성 혼돈, 아내를 아이에게 뺏긴 느낌 등으로 산후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 아직까지 ‘남성 산후우울증’이라는 병명은 의학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으나 출산 후 아빠에게도 종종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의사가 많다.

남성 산후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감정의 전이와 환경의 변화다. 즉 여성은 출산 후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받지만 남성은 주로 아내의 우울 증상이 전염돼 나타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유욕이 강한 남성은 산후우울증에 더 잘 걸릴 수 있으며 평소 우울증 소인을 갖고 있던 사람이 아기의 출생을 계기로 증세가 악화될 수 있다”며 “아내의 역할이 배우자에서 엄마로 바뀌면서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한 남편들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이스턴버지니아 의대 연구팀은 2010년 ‘신생아 아버지 중 10%가 아기의 생일 전후로 산후우울증에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여성의 산후우울증이 극대화되는 시기인 아기가 태어난 뒤 3~6개월 사이에 남성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나타났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남성 가운데 약 5%는 아기가 출생한 후 1년 이후까지 우울증이 지속돼 심각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연구는 1980년 1월~2009년 10월까지 자녀가 출생한 지 1년이 지난 남성 2만8004명을 대상으로 34차례의 실험을 통해 이뤄졌다.

제임스 폴슨 연구원은 “출산 후 여성의 약 30%가 산후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남성이 겪는 산후우울증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남성 산후우울증에 대해서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유승호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남성에게 산후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붙이지는 않지만 여성이 출산을 했을 때 배우자인 남성에게도 출산이 부담으로 작용해 우울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면 ‘적응장애’나 ‘스트레스 관련 장애’로 진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경우는 출산 후 우울해진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아 상담받는 과정에서 많이 발견된다”며 “남성에서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양육에 대한 부담 및 가족에 대한 책임감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해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증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우리사회엔 유교적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어 성별을 막론하고 남성이 우울해하는 것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새내기 아빠들이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더라도 ‘남자가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는 게 대체적인 주변 반응이다. 또 우울한 아내들이 남편에게 ‘니가 애를 낳아보고 하는 말이냐’ 같은 거친 반응을 보인다면 남자도 더욱 깊은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남성 산후우울증에 바뀐 생활환경이나 경제적 부담감보다 더 깊게 작용하는 것은 애초에 ‘아이를 가질 준비 자체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 핵가족화로 개인적·의존적인 성향을 보이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대학입학 후 어학연수, 취업재수 등으로 학업에 매달리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이든 심적으로든 부모에게 의지하는 ‘부메랑가족’·‘캥거루족’의 성향을 보이는 ‘미성숙 아빠’가 양산되는 것과 직결된다. 이런 변화 탓인지 30살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거나 의존적으로 지내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됐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나이가 몇 살이더라도 자신을 ‘어른’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미성숙 아빠들은 나조차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상황에서 새로 태어난 자녀를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 자기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챙겨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굉장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어른이 될 준비가 안 된 키덜트(kidult, 어린이 같은 어른)족, 피터팬족들은 출산 전부터 ‘현실적 문제’에 대해 미리미리 고민하고 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기를 낳은 과정에서 남편은 부인의 변화된 체형과 리얼한 출산 광경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예전보다 돈도 갑절 많이 들고, 아내 수발과 아기 울음소리에 잠도 제대로 못자는 등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과정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환경변화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런 시뮬레이션 없이 덜컥 아이를 낳아버린 뒤 아빠로서의 부담감에 짓눌린다면 이미 때는 늦었다. 일하느라 지친 몸을 겨우 이끌고 집에 들어왔는데 애는 울지, 와이프는 우울해한다면 총체적 난국일 수밖에 없다. 임신과 출산은 상상하는 것처럼 결코 낭만적인 게 아니다.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라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계획된 임신’이 가장 중요하다”며 “많은 남자들이 마음의 준비도 없이 결혼만 하면 ‘대를 잇기 위해 2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숙제하듯 출산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부 모두 출산에 대한 준비가 안됐을 수도 있고, 부부 중 한쪽이 그런 경우도 있는데 일방이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주변에서도 가만두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우리나라는 아직 나만의 온전한 판단으로 살아가는 게 힘든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아정체성’을 성립한 뒤 정말 내가 출산하고 싶을 때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남성이 출산 후 큰 부담감을 느끼는 데에는 어쩌면 ‘아버지 역할모델’ 부재도 한몫 한다. 과거에 아버지는 ‘돈을 벌고 가계를 책임지는 존재’였다. 다정하거나 상냥한 모습을 보이면 품위가 없고 무뚝뚝하고 근엄해야 아버지다운 것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요즘엔 온갖 매체에서 ‘다정한 아버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과거 ‘벌벌 떨게 만드는’ 존재에서 ‘다정다감한’ 이미지가 강조되는 등 아버지의 역할모델이 껑충 점프한 것처럼 급격히 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맞벌이가 당연시되면서 남자들의 ‘남편’,‘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라며 “아직은 마땅한 아버지 역할모델이 정립된 바 없고, 지금 젊은 아빠들은 아버지 역할모델 변화의 과도기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숙한 아빠가 되려면 ‘(여성의 역할변화가 생긴 만큼)내가 만난 여자는 우리 엄마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불만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부모가 된 뒤 느끼는 갑갑함은 어쩌면 어린시절에 느꼈던 불만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라며 “사람은 자라온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거나 불만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어린시절에서 유래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여성이 모성을 타고 나는 게 아닌 것처럼 남성의 부성도 마찬가지”라며 “모성애나 부성애는 오히려 아이를 키우고 기르면서 생성되는 것인데, 요즘 젊은층 가운데에는 예전에 비해 개인적이고 ‘나’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풍조가 늘어나면서 이런 것을 참아내는 심성이 크게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만약 출산 후 막막하고 힘들더라도 부부가 함께 극복하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김 교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관건”이라며 “정신과 상담도 좋지만 이미 이런 일을 겪은 주변의 선배(부모가 아니더라도 먼저 결혼·출산 경험이 있는 사람) 등 제3자와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이를 생각한다면 이런 공부는 필수다. 아이도 ‘준비된 부모’에게 태어날 경우 훨씬 안정된 정서를 가질 수 있다. 산후우울증이 지속되면 엄마가 아기를 제대로 양육하기 어렵고, 아기의 성장발달·부모와 아기 사이의 관계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심할 경우 아이의 행동장애 및 정서장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엄마가 우울하면 아기에게 말을 잘 걸지 않고 아이를 귀찮아하기 때문에 또래에 비해 언어발달이 늦고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이는 학습능력 저하 및 신체발육저하로 이어진다. 또 모자간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아기가 엄마에게 무관심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집작하는 ‘반응성애착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산후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대부분 얼떨결에 낳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적잖다”며 “키덜트라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컴퓨터 게임이나 실컷 하고 싶다’는 남편들은 자녀갖기에 신중해야 한다.

출산은 언제든지 마음이 바뀔 수 있는 부분이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게 맞다. 외부압력에 휩쓸리지 말고 부부가 서로 상의해 가족계획을 세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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