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부부가 함께 극복해야 한다. 과도한 흡연·음주·열노출은 남성의 생식능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예전부터 유교 문화권인 한국에서 출산은 전적으로 여성이 책임져야만 했던 일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를 못 낳을 경우 극심한 핍박과 설움을 견뎌내야 했다. 드라마에서도 아이를 못 낳은 며느리 혹은 아내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구박받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기존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을 불임(不姙)이라고 했지만 최근들어 난임(難妊)으로 바꿔 부르는 추세다. 치료를 통해 임신 가능성을 어느 정도 향상시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부부 7쌍 중 1쌍은 난임, 35%는 남성이 원인
난임은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35세 이상 여성의 경우 6개월간 임신이 안될 때 난임을 의심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조사’에 따르면 피임 경험이 없는 20∼44세 기혼 여성 969명 중 32.3%가 ‘임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즉 가임기 기혼 여성 3명 중 1명이 난임을 경험한 셈이다. 또 국내 가임기 부부 7쌍 중 1쌍 정도는 난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난임의 원인이 전부 여성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난임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주태 관동대 제일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난임의 발병 원인은 여성측 요인 약 45%, 남성측 요인 약 35%, 양측 요인 10%, 원인불명은 약 10% 정도”라고 설명했다.
보사연은 지난달 10일 연도별 난임 진단 대상자 수를 조사한 결과 난임 남성이 2004년 2만2166명에서 2011년 4만199명으로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난임 남성 수는 2005년부터 꾸준히 늘었으며, 2010년의 경우 전년 대비 27.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난임 진단을 받은 남성 3명 중 2명은 치료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37.9%는 치료를 아예 받지 않았으며, 25%는 중간에 치료를 중단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적 부담과 수치심 등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재헌 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대기오염 등으로 환경호르몬에 쉽게 노출되고 극심한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난임을 겪는 남성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난임은 단지 임신이 어려울 뿐 치료 가능, 신속히 전문의 찾아야
남성 난임의 주요 요인은 △정계정맥류(varicocele) △폐쇄성·비(非)폐쇄성 무정자증 △발기부전 및 중추·자율신경 장애 등이다.
서 교수는 “정계정맥류는 남성 난임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 전체 환자의 20~40%를 차지한다”며 “이 질환을 앓으면 음낭의 혈관이 늘어나면서 정자의 수가 줄어들고 운동성도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자는 생성되지만 지나가는 통로(부고한, 정관 사정관)가 막힌 폐쇄성무정자증과 고환 자체에 문제가 생겨 정자가 생성되지 않는 비폐쇄성무정자증도 남성 난임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남성 난임의 치료법은 크게 약물(호르몬)치료, 수술, 체외수정 등이 있다. 정액검사 결과가 비정상이고 성선자극호르몬이 부족하다면 호르몬 보충요법으로 정액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정계정맥류가 있는 경우에는 음낭 내 늘어난 혈관을 묶어 교정하는 정계정맥교정술, 정자가 지나가는 통로가 막혔을 때에는 이를 뚫어주는 현미경 이용 교정수술 등 수술적 치료를 실시한다.
그러나 약물·수술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고환·부고환에서 정자를 추출해 체외수정을 해야 한다.
김수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난임은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것일 뿐 아이를 아예 못 낳는 것이 아니다”며 “그러나 민간요법을 사용하거나 약효가 불분명한 한약을 복용하는 경우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난임 부부는 최대한 빨리 전문의와의 상담해 맞춤형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가진단 시 고환 크기 호두보다 작다면 난임 의심해야
남성 난임은 특별한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가진단이 쉽지 않다. 난임을 스스로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고환 크기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서 교수는 “한국인 남성의 고환 크기는 평균 15㏄(호두 크기) 이상으로 자신의 고환 크기가 호두보다 작다고 판단되거나, 음낭에서 혈관이 늘어나 혹 같은 게 만져진다면 3~5일 금욕 후 비뇨기과를 방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혼 후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1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남성이 먼저 신체검사와 정액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이 검사는 적은 비용으로 간단하게 불임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흡연·음주·사우나 등 남성 생식능력 감소시켜최근 남성 난임이 급증하면서 정자의 생산능력과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생활습관, 음식물, 영양분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흡연은 정자의 가임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서 교수는 “하루에 20개비(한 갑) 미만의 담배를 필 때에는 정액의 사정량만 감소하지만, 20개비 이상을 피는 경우 정자의 밀도와 운동성도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가볍게 한두 잔 마시는 술은 정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과음은 남성호르몬의 농도를 감소시켜 생식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아울러 척수반사(spinal reflex)가 줄어들면서 음경의 신경이상을 유발하고, 결국 발기력에 문제가 생겨 성관계가 힘들어지게 된다.
열(熱)도 정자를 생성하는 데 악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최근 연구결과 고온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제빵사, 운전자, 용접공 등 직업군은 정상적인 정자의 비율이 다른 직업군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사우나나 뜨거운 욕조를 자주 이용하면 생식력이 감소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요즘 유행하는 ‘스키니진’ 등 조이는 옷도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데 영향을 준다.
서 교수는 “난임으로 고민하는 남성은 음주와 흡연을 줄이고, 사우나나 뜨거운 욕조에서의 목욕을 줄이며, 되도록 넉넉한 바지나 속옷을 착용하는 등의 생활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밖에 남성스테로이드호르몬(anabolic steroid), 항남성호르몬(antiandrogen) 등도 남성의 생식능력에 악영향을 미친다.
납, 수은, 비소, 탄화수소, 카드늄, 살충제, 제초제 등은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대표적인 중금속 및 화학물질들이다.
부부관계 시 정상 및 후면체위, 임신 가능성 높여
부부관계 시 어떤 체위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임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임신율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의 자궁경부와 정자가 나오는 출구를 가까이 위치하는 게 중요하다.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여성이 상위에 있는 등 중력을 거스르 체위는 정자가 자궁경부에 도달할 확률을 낮추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임신 확률을 높이는 체위로는 남성이 위에 있는 남성 상위형(정상 체위), 후면 체위(남성이 여성의 뒤에서 삽입) 등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경우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오르가슴 때 동반되는 질 수축이 정자가 자궁경부로 이동하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김재헌 교수는 “난임으로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신뢰”라며 “난임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인공수정도 입양도 아닌 현실을 받아들이고 부부사이의 사랑을 지속하려는 노력”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