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식품이란 게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 인체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영양소는 아니지만 영양의 섭취보다는 심리적·생리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차와 커피, 청량음료, 술 등이다. 담배도 먹지 않는 대신 피우므로 기호품에 속한다.
기호식품의 공통점은 알게 모르게 건강에 마이너스가 되고, 습관성 또는 중독성을 일으키며, 이를 통해 많은 이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는 데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하루에 커피 한 두잔은 보약이야, 대인관계에서 소주 한두병은 해야지, 담배를 끊으니깐 낙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기호식품의 당위성을 두둔한다. 오히려 한 두잔의 커피나 술이 건강에 좋다며 반드시 챙겨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커피나 술은 전혀 하지 않아도 건강에 해로울 게 거의 없다.
기호식품은 단적으로 말해 인간의 생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건강을 증진시켜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에서는 기호식품을 적극 권장하거나, 최소한 막지는 않는다. 세수 확대와 매출 증대를 위한 것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술로 인한 주취폭력, 음주운전 및 교통사고에 따른 인명피해, 절도 및 강간, 막대한 시간낭비, 간을 비롯한 전신건강 훼손과 성인병 유발, 인지력 감퇴, 성욕 감퇴 등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통계에 따르면 수십 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각각 음주와 흡연으로 야기된다. 하지만 알코올은 헤로인이나 모르핀 같은 마약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약하고 심신에 미치는 피해가 적기 때문에 정부가 금지하지 않는다.
담배는 직·간접 흡연을 통해 폐암 등 호흡기질환의 증가시키고, 길거리를 어지럽히며, 화재를 유발하는 주범(국내서는 전체 화재 요인의 20% 남짓)으로 작용한다.
애주가이자 비흡연자로서 필자는 기자 초창기에는 술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술을 건강하게 먹는 법’, ‘음주로부터 간을 보호하는 법’ 등의 기사를 즐겨 썼다. 오지랖을 넓혀 와인, 맥주, 막걸리, 싱글몰트위스키 등의 향미에 대한 품평 기사 및 주종별 건강에 미치는 차이도 간혹 다뤘다. 이에 비해 담배는 ‘백해무익’하니 끊으라는 단호하고도 강압적인 어조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낸 것 같다. 지극히 자의적인 기자관으로서 돌이켜보면 민망할 따름이다. 다만 술꾼은 애연가의 마음을 모르고, 애연가는 술꾼 마음을 모른다는 해명을 하고 싶으나 술과 담배를 다하는 사람의 건강 훼손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지난해 12월 필자가 ‘국산맥주가 수입맥주보다 맛이 없는 이유’에 대해 장황한 글을 썼더니 ‘술맛 아는 놈치고 인간 제대로 된 놈 못봤다. 어차피 취하려고 마시는 것 아무 술이나 처먹어라’란 댓글이 달렸다. 이를 보고 마음에 켕기는 바가 많았다.
한두 잔의 술이 좋다는 것은 아무리 책을 뒤져봐도 마땅한 근거는 찾을 수 없으나 여러 의학논문에서 통계적으로 심혈관질환의 예방 등에 유리하다고 적혀 있다. 요컨대 술을 한두 잔 마시면 심신이 릴랙스되고, 혈관이 확장되며, 체열이 오르면서 혈액순환과 노폐물 배설이 촉진된다는 측면에서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웬만한 술꾼은 1차에서 끝나는 법이 없고 2차는 보통이다.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기분이 너무 좋거나, 너무 오래간만에 만나면 3차나 4차를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술이 화근이 아닌가.
담배도 하루 한두 개비를 얕게 피면 약이 된다고 한다. 각성 효과, 심신의 릴랙스, 소화액분비 촉진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담배의 니코틴 성분이 중독성을 띠기 때문에 한번 담배를 배우면 끊기가 쉽지 않다.
커피 홍차 콜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또 어떤가. 생수나 보리차보다 익숙한 게 커피가 된 세상이다. 카페인 성분은 무기력한 아침에 잠을 쫓아주고, 점심 식사 후 나른함을 이겨내는 힘을 주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카페인의 다량 섭취는 체내 수분의 배출을 증가시키고, 뼈 속 칼슘이 소변으로 유출되게 한다. 커피를 하루에 3~4잔 이상 마시면 집중력이 고양되기는 오히려 뇌가 혼미해지거나 두통이 오게 돼 있다.
커피를 하루에 네댓잔, 심지어 자기 전에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치고 피부 좋은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피부는 세포 안과 세포 사이 사이가 수분으로 충만해져야 탄력을 잃지 않는데 커피로 세포내 수분을 양수기로 뿜어내듯 배출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노화될 수밖에 없다. 커피가 숙면을 방해하므로 전반적인 건강의 질도 떨어진다. 하지만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커피 섭취량과 수면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항변하는데 커피가 수면의 질을 저하시킨다는 연구논문은 분명히 다수 나와 있다.
또 탄산음료나 인스턴트 식품에 청량감을 높이기 위해 첨가하는 인산염은 체내에서 인산칼슘으로 변화돼 칼슘을 뽑아 체외로 배출시킨다.
필자는 기호식품과 경제에 주목하고 싶다. 경제란 게 간단히 보면 기업으로서는 소비를 촉진시켜야 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고 소비하되 가격 대비 효과가 높게 효율성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매일 담배를 한갑 이상 피우면 최소 2500원이 담배연기로 날아간다. 시급 5000원짜리 수준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나 비정규직 취업자들이 매일 한잔에 2500원~4000원에 달하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즐기면 한 시간 일한 게 허사가 된다.
대형 커피회사나 담배회사, 주류회사는 소비자에게 기호식품에 대한 맹목적 구매 충동을 일으키기 위해 전략적이고 공격적인 판촉행위를 벌인다. 이에 비해 소비자는 무력하게 끌려다니며 돈을 털린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절대빈곤을 접해보지 못한, 부모님이 해달라는 것은 웬만큼 다해준 요즘 젊은 세대들이 하루에 5000원 이상의 돈을 기호품 구매에 지출하면서 돈을 모으겠다는(자본을 축적한다는) 의지조차 꺾인 게 안타깝다. 기분대로 써버리며 거대기업의 금고를 채워주고만 있다. 중산층 이하 가정에서 태어난 요즘 젊은이 중 다수는 절약해서 집도 사고, 아버지세대보다 더 탄탄한 경제력을 갖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고 당장 기호식품이나 명품, 승용차 등에 정신을 팔고 애써 번 돈을 탕진하고 있다.
만약 젊은이들이 이딴 분야에 돈을 덜 쓰게 된다면 부의 편중은 조금이라도 완화되고, 좀 더 생산적인 분야에 시간과 돈을 쓰고, 미래의 비전이 더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