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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에 오른 미국 의료제도【1】
  • 황지민 인턴(연세대 의예과 1년) 기자
  • 등록 2013-02-01 15:11:26
  • 수정 2021-06-29 0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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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미국 의료, 환상의 껍질을 벗기면

지난해 미국 의료계 최고의 뉴스는 ‘오바마 의료개혁’의 합헌 판결이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의료개혁 법안(일명 오바마케어)은 2010년 3월 오바마 대통령이 정식 서명했지만, 26개 주정부가 이 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소송을 내 한 때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말 미 연방대법원은 5 대 4로, ‘오바마케어’의 핵심조항인 개인 의무가입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5000만명에 달하는 미국 보험 미가입자 가운데 약3200만명이 오는 2014년까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가입을 거부할 경우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층 1600만명은 보험료 부담을 이유로 예외로 인정키로 했다.

박근혜 새 정부는 이명박 현 정부와 달리 영리의료법인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추진한다해도 공공의료를 강화하면서 의료산업화 측면도 부양하는 신중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매파들은 미국식 의료자본시장주의가 새로운 경제성장의 한 축을 견인할  ‘만능 열쇠’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발달해도 의료와 교육만은 자본에 좌지우지되지 않기를 대다수 국민은 희망하고 있다. 이를 배경에서 본지는 미국 의료제도의 맹점을 해부해보는 기획시리즈를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수술대에 오른 미국 의료제도 글 싣는 순서
<1부> 미국 의료, 환상의 껍질을 벗기면
<2부> 미궁 속 미국 의료, 선진국민이 아프다
<3부> 미국 의료개혁, 일진일퇴의 역사
<4부> 미국 의료제도, 오답 베낀 커닝 페이퍼

수십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왔다”는 말에는 후광효과가 존재했다. 절대 가난에 시달리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동경을 품어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단란한 미국 가정, 미국 학교, 미국산 공산품 및 유제품, 미국 책은 실제 함량에 관계없이 왠지 모를 프리미엄이 얹혀져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내 빈발하는 총기살인, 분노한 시민의 월가점령 시위(2011년 Occupy wall street) 등을 국제뉴스로 접하고 있는 요즘에는 과거의 동경이 허허로울 뿐이다.

미국 의료도 그 중 하나다. 미국 의료제도가 막연히 우리나라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의사가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친절하게 응대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바라본다. 그러나 환상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어 미국 의료의 맨살을 들여다보면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의료보험사, 제약회사, 의료인이 합작한 의료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난다.

폭증하는 보험료에 서민들은 허덕

미국의 유형별 의료보험 가입현황

미국 의료 제도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장에 맡겨라”다. 의료 체계의 기초라할 수 있는 의료보험에서부터 ‘전(錢)의 논리’가 작동한다.

 
전 국민이 국가보험(국민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포괄적 국가보험이 없다. 미국의 국가(public) 보험은 가장 널리 알려진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를 포함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노인 및 일부 장애인을 위한 보험이다. 메디케이드는 수입이 일정 수준 미만인 저소득층 국민을 위한 보험이다. 주아동의료보장제도(SCHIP, State Children’s Health Insurance Program)은 수입이 적으나 메디케어가 적용되지 않는 가정의 자녀에게 제공된다.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국가 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의 3할도 채 되지 않는다.

 
일반인을 위한 공적 보험이 없다 보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사설 보험에 의존하거나 무보험 상태로 지내야 한다. 사설 보험은 종류도 많고 보험료 산정방식이나 급여범위가 복잡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큰 기업이나 협회, 학교가 소속된 고용인이나 학생에게 보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영업자나 영세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원한다면 개별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국가보험 시스템으로 체계적으로 지원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의 10년간 의료보험 인상 추이

한국 인도 독일 미국의 의료수가

민간보험(사설보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료가 가파르게 상승해 서민들을 힘들게 한다. 기업에 소속된 사원(worker)의 연간 보험료는 1999년 1543달러(154만3000원, 1달러=1000원 환산)에서 2009년 3515달러(351만5000원)로 10년간 두 배 이상 뛰었다.

 
자영업자(self-employed)의 경우 더 비싸 같은 기간 4247달러(424만7000원)에서 9860달러(986만원)로 증가했다. 자영업자 4인 가족의 연간 보험료는 1만3375달러로, 네 명의 단란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라면 한 달에 1000달러(100만원) 이상 보험료로 지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인구 조사국(Census Bureau)는 2010년 비싼 돈을 내고 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 미국 시민권자만 5070만 명으로 16.7%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민 온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사람 비율은 훨씬 높다.

허울만 비영리병원, 의사들의 고액 연봉에 ‘비영리’ 정신 잃어

국내 병원은 개인 병·의원이나 치과, 한의원 등을 제외하면 형식상 전부 비영리병원이다. 어떤 형태의 병원이든 의료보험이 있는 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 물론 일부 병·의원은 비보험진료만 하면서 보험진료를 외면하고 있긴 하지만 제도의 취지는 그렇다. 비영리법인은 병원 운영으로 얻은 수익금을 의료기기 구입이나 연구활동, 직원 월급 등으로 전부 병원에 재투자하여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미국에서도 아직까지는 비영리병원이 압도적으로 많아 10여년전 약70%를 유지하다 현재 65%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2.1% 정도였던 영리병원은 자본의 힘을 빌려 근 10년 동안 18%로 증가했다. 영리병원은 수뿐만 아니라 규모도 커지고 있다.


전쟁 참전자를 위한 병원(VA Hospital), 아메리칸 인디언을 위한 병원(Indian Hospital) 등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폐쇄적 병원도 운영되고 있다.

 
아직 비영리병원이 절반이 넘는다는 사실에서 그래도 미국 의료계가 그렇게 부패하지는 않았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드높은 의료수가로 챙긴 막대한 수입을 병원 측에서는 ‘병원에 재투자한다’는 명목 아래 의사들에게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의 과다한 수입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지만 보수세력의 로비와 자기합리화에 열심인 의사집단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애써 가리려해도 가릴 수 없는 ‘빈익빈 부익부’의 곪아터진 등창이 아닐 수 없다.

터무니없이 비싼 의료수가는 국민들을 병원 대신 유사 의료기관으로 몰아넣는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아이를 낳을 때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하면 3만달러(3000만원), 제왕절개수술을 하면 10만달러(1억원)가 훌쩍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자연분만 30~40만원, 제왕절개 80~100만원 정도이므로 미국의 100분의 1 수준이다.


한국에선 출산 준비를 산부인과 및 같은 병원 산후조리원에서 담당하지만 미국에서는 비싼 의료비 때문에 간호사들이 운영하는 출산전·가족계획·이형성증(dysplasia) 클리닉 등에서 의사 치료에 준하는 관리를 받는다. 국제의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Health Plan)이 제시한 12개국 의료수가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수가를 비교해 보면 미국 의료수가는 다른 나라 의료수가의 보통 5~6배 수준이다. 미국 의료서비스가 다섯 배 비싼 만큼 과연 더 효율적인가. 그런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 서민들은 억울하다.

협상하기 나름인 미국 ‘의료보험료’ … 거품이 가득하니 깎을 여지도 커

미국에는 ‘의료 협상’(Medical bill negoti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나라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양적·질적 지표, 의료기관의 소득(경영상황), 물가상승률 등 여러 가지 경제지표를 토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해 의료수가를 결정한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의료수가가 개별 병원에 의해 임의적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병원이나 보험사에 지인이 있거나 의료계 사정을 잘 아는 경우엔 의료수가(보험료)가 95%까지 할인되기도 한다. 지인도 없고 정보도 없으면 20배나 뻥튀기한 의료비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청구되는 막대한 의료비의 95%까지 할인해 준다는 말은 실제 청구되는 의료비의 5%만 받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의료의 사각 구조

그렇다면 순이익 95% 이상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막대한 의료비 지출의 반 이상은 사실 의료행위가 아니라 제3자에게로 샌다. 수많은 종류의 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많은 민간보험사는 규모도 너무나 커지고 개수도 많아져서 유지비가 만만찮다. 미국의료보험안(AHIP, America’s Health Insurance Plans)은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47만명, 평균 연봉은 6만1409달러(약6141만원)라고 밝혔다. 이들 보험사 직원의 모두 시민들의 의료비에서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험사의 종류도, 고려해야 하는 보험의 가짓수도 너무 많다보니 의료수가에 대한 세금과 보험에 따른 할인율 적용 등 복잡한 세무·회계관리와 청구·징수업무 등을 병원에서 혼자 관리하기 벅차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병원들은 청구회사(billing company)를 따로 두어 이같은 업무를 위탁한다. 의료기관과 환자가 직접 거래하는 선형 구조가 아니라 의료기관, 환자, 보험사,청구회사가 사각(四角)구조를 이루다보니 쓸데없이 계산도 복잡해지고 비용도 많이 든다.

맹장수술 한 번에 13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내야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의료수가가 철저하게 시장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나라, 4인 가족의 사설 보험료로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저소득층에게는 전액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충이다. 미국은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의료제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의료비, 심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등으로 인해 골골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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