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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성형 미용치료에만 달려드는 한국의료의 자화상
  • 정종호 헬스오 편집국장
  • 등록 2012-12-30 03:04:15
  • 수정 2021-07-20 20: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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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이면 미용치료 배우러 의사들 ‘러시’… 필수진료과 의사에 인센티브 더 줘야 하나

요즘 피부과·성형외과·안과(일명 피안성) 전문의가 아닌 상당수 전문의들은 주말마다 간단한 프티성형, 모발이식, 성형기법을 배우려 이런저런 사설(私設) 세미나에 참여한다. 한번에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100만원이 든다. 주로 외과 산부인과 가정의학과 신경외과 소아과 의사들이다.


예를 들면 이른바 경험많은, 의료계 말로 ‘술기(術技) 좋은’ 의사들이 ‘모르모트(marmotte)’ 환자를 수배해놓고 필러를 주입해보거나, 모발이식을 해본다. 모르모트 환자는 의사가 잘 아는 사람이거나 경제적 사정으로 상당히 할인된 가격으로 시술받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충원된다.


피부·성형 미용치료로 돈을 벌고 싶은 의사들은 이미 이 분야에서 한참 앞서간 선배의사에게 시술 노하우, 주의사항, 가격전략, 손님에게 마케팅하는 방법, 의료기기 구매시 관련회사와 네고(협상)하는 방법 등을 배운다. 과거에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전문의가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에게 소속 학회 모르게 ‘고액 비밀과외’를 해줬지만 요즘은 성형·피부 비전공 전문의들의 실력이 늘어나면서 이런 풍경도 꽤 사라졌다.

옛날에 아파트·고급차·병원 등 열쇠 3개가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던 의사들의 인기는 최근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젠 열쇠 없어도 얼굴만 예쁘면 시집갈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온다. 그래도 여전히 의사는 상위 1%의 성적을 올리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 의사들의 기대치도 높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피땀나게 공부한 것도 모자라 의대 입학 후 군의관에 레지던트까지 무려 12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의대생들이나 의사 초년생의 생각은 최소한 2억~3억원의 연봉을 받아야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세후로 의사 초년생이 월 500만~600만원을 받아야 하니 당사자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K 지방국립대 생물학과를 나와 등록금 비싸다는 서울의 K 사립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현재 공공의료기관에서 진단검사의학과 레지던트로 재직중인 정모씨(여·38)는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진단검사의학과라서 독립 개원도 어렵고 기대치에 못미치는 경제적 대우에 같이 입학한 동기생과 자신을 비교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토로했다. 정 씨는 “어쩔 수 없이 시기와 질투심으로 피부과·안과 등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는 입학동기를 바라보게 된다”며 “한 학기 학비만 해도 국립대 다닐 때에는 250만원도 안 됐는데 의전원은 무려 1000만원을 넘어 허리가 부러질 정도였다”고 울상을 지었다.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사회에서 실전 경험이 없이 병원을 차렸다가 초기에 과도한 임차료·장비시설 구입·인테리어를 했다가 수지 타산을 맞추지 못해 수억원의 빚을 지고 도산의 위기에 빠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병원 사무장이나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심지어 같은 학교 선배의사의 말만 믿었다가 ‘피바가지’를 쓰고 죽지 못해 사는 의사도 제법 많다.


금융계는 이 때문에 의사들의 10%, 한의사들의 20% 정도는 신용불량자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래서 의사의 대출한도도 과거 5억원에서 1억원 가량 낮아졌다. 한의사는 아예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도산 위험으로 새로 병원을 내려는 사람도 줄어들었지만 의사들의 신용도가 예전보다 못하기 때문에 은행별 의사 대상 대출 한도도 메년 10% 이상 감소하는 추세다.

의료계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대규모 의대 증설로 연간 신규 배출의사 수는 3000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올해 대한의사협회에 등록된 의사수는 11만명에 달한다. 의협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의원당 하루 평균 환자수는 63.9명으로 2009년 71.6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경기가 나빠진데다 의사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진 것이다.

의협에 따르면 지난해 의원당 평균 매출액은 4억4417만원으로 이 중 평균 3억1421만원을 제외하면 순익은 1억2994만원 정도다. 하지만 의원급 의료기관 5곳 중 2곳이 평균 3억5000만원의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부인과의 경우 평균 부채가 5억2000만원에 달한다.


한의사들도 100% 취업이 안될 뿐만 아니라 신규 한의사의 경우 20년전의 초봉인 월 300만원은 커녕 200만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일선 한의원은 환자수가 10년전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렇다보니 한의사들도 약실, 양방 의료기기를 이용한 피부·성형미용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한방치료는 절개가 필요없는 비침습적 방법임을 내세우며 환자를 유인하는 상황이다.

성형외과학회나 피부과학회는 해당과가 아닌 비전문의들과 일부 한의사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자 이해는 한다면서도 바짝 경계하고 있다. 이들 학회는 “비 전문의들로부터 피부·성형 미용치료를 받으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시술결과를 담보할 수 없어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유방성형을 전문화하고 있는 모 일반외과 전문의는 “수술 결과라는 게 손기술과 훈련에 좌우되는 것이지 전문의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니다”며 “오히려 수술에 대한 안목이 넓고 테크닉이 좋은 일반의사들이 성형시술에서 성형외과 의사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실정법으로 의사는 진료과목에 상관없이 어떤 치료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 의료과목의 전문의 자격을 벗어난 다른 치료영역으로의 ‘외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피부·성형 미용치료가 본질적인 의료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육체적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관련 전문의는 “못 생긴 외모 탓에 사회적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하는 게 미용치료”라며 분명 의료의 한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죄다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 등을 얻기 하기 위해 흉부외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진료과목을 내팽개친 채 미용치료로만 몰려가는 한국 의료계의 자화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10대 청소년조차 미용치료 의사들에 대해 ‘(돈 많이 벌어) 부럽기는 하지만 존경스럽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니 필수진료과목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더 주고 미용치료 의사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여야 의료의 공익성이 향상되지 않을까 싶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의사들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9시까지 너무 오랫동안 일을 한다”며 “의사들끼리 월 수입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몸을 혹사시키기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이나 영국·북유럽처럼 의사들이 근로시간과 소득 기대치를 적절히 낮추고 일자리를 나눠야 의사들이 보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더욱이 정부는 의사 수를 더 늘려 의료사각지대도 없애고 필수진료과목 의료자원과 군의관도 확보한다는 계획인데 이래저래 의사들의 특권과 선민의식은 일정 부분 훼손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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