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非지정병원, 명칭 국가독점에 위법할까 불안 … 복지부, “객관적 기준 충족 최소한의 증거”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가 99곳의 전문병원을 지정해 전문병원제도를 시행한 이후 정부가 ‘전문병원’이란 명칭 사용을 독점화함으로써 일선 병·의원들이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전문병원제도는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대형병원을 주로 찾는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중소 전문병원을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도입됐다. 현행 의료법상 ‘전문병원’이라는 명칭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해준 의료기관만 사용할 수 있고 이를 위반하면 최초에 시정명령이 내려진다. 시정하지 않았을 때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500만원의 벌금과 15일~2개월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전문병원으로 지정받지 못한 병원들은 자신이 전문적으로 잘 치료할 수 있는 진료과목이나 질환이 있는데도 ‘전문병원’이라는 명칭을 병원의 홍보 및 마케팅을 위해 쓸 수 없어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광고나 간판 등에 부주의하게 ‘전문병원’을 표시할 경우 대한의사협회, 경쟁 병·의원으로부터 위법신고를 당하거나, 보건소 등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개의 관절전문병원과 17개 척추전문병원이 인증된 가운데 전문병원에 끼지 못한 T 병원 관계자는 “우리병원은 덩치가 크고 대중광고 효과를 많이 하기 때문에 전문병원 인증을 받지 않았어도 큰 영향이 없는 편이지만, 영세한 정형외과 병원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기 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시술 테크닉이 수년전부터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가운데 전문병원 인증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형식적인 요건일 뿐이고 사실상 좋은 병원 선택에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또 복지부의 명칭 사용 규제에 전문병원을 지정받지 못한 병원들은 ‘전문병원’이라는 용어 자체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전공의 대부분이 전문의 수련 과정을 밟는 국내 의료과정 특성상 개원가 전체가 전문병원이라 해도 무방한데 이를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내실있게 오랜 역사를 갖고 특정 질환과 시술에만 열중해온 의료기관이라면 굳이 전문병원 호칭 없이도 누구나 전국적으로 또는 지역사회에서 전문병원으로 인식해줄 것”이라며 “예컨대 ‘Since 1980’처럼 32년 넘게 한 분야에 특화된 병·의원이라면 굳이 ‘전문병원’ 간판을 달지 않아도 누구나 진정한 전문병원으로 인정해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문병원을 인증받은 의료기관은 공식으로 ‘전문병원’ 명칭을 사용할 수 있지만 나머지 기관은 공식절차를 밟지 않아 객관적 기준 충족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므로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의료광고는 국민건강과 직결되고 잘못 표기된 광고내용이 국민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공식 인증된 병원에 한해 ‘전문병원’ 호칭 사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환자 구성 비율 △진료량 △필수진료과목 △의료인력 및 병상 등 지정기준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평가를 받고 전문병원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전문병원을 지정했다. 현재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신경과, 정형외과, 안과, 외과, 이비인후과,재활의학과, 정형외과 등 9개 진료과목과 관절, 뇌혈관, 대장항문, 수지접합, 심장, 알코올, 유방, 척추, 화상 등 9개 질환에 걸쳐 전국 99개 의료기관이 전문병원으로 지정돼 있다.
한편 전문병원을 지정받은 병원에서도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고 있다. 전문병원과 유사한 ‘○○ 전문’·‘○○ 특화’·‘첨단 ○○’ 등 전문병원 뉘앙스를 풍기는 유사 호칭이 남발되고 있어 자신들이 복지부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전문’ ‘첨단’ ‘특화’ 등 유사명칭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게 아니라 허위과장광고일 수 있다”며 “유사명칭을 사용하지 않고도 객관적 근거에 의해 얼마든지 병원의 우수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명칭 사용 기준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로서는 ‘전문병원’이라는 표기만 없다면 ‘전문’ ‘첨단’ ‘특화’ 등의 문구를 사용해도 규제할 방도가 없지만 복지부는 일종의 ‘행정지도’를 통해 이들 문구의 사용을 막겠다는 의도다. 복지부는 지난 8월부터 의료광고 사전 심의대상을 인터넷 매체로 확대하고 ‘전문병원’의 부적절한 사용 규제에 들어갔고 ‘특화’,‘첨단’으로 감시망을 넓히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9개에 불과한 전문병원 지정 진료과목이나 질환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모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진료과목과 질환 수가 현저하게 부족하다”며 “전국적으로 봤을 때 99개의 전문병원은 매우 적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3년마다 평가를 통해 재지정이나 취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받는 피해가 없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전문병원심의위원회 운영에 내실을 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