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성암 사망률 2위를 기록하는 자궁경부암은 주로 HPV(인유두종바이러스, Human Papillomavirus)에 의해 발병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방백신 접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HPV는 거의 대부분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며, 성경험이 있는 여성의 10명 중 1명이 감염돼 있을 정도로 매우 흔하다. 여성 5명 중 4명은 50세 이전에 한번 이상 감염된다는 통계도 있다.역학 연구에 의하면, 16세 이전에 일찍 성관계를 가진 여성,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 여러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 배우자를 둔 여성일수록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마도 성관계를 매개로 HPV에 감염될 가능성이 더 증가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암 발생 기전과 관련해 고위험군(high risk group) 바이러스와 저위험군(low risk group) 바이러스로 나뉜다. 대개는 저위험군 바이러스로 인체 표피에 사마귀를 만들며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감염으로 시간이 지나면 소실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고위험군 바이러스(HPV type 16, 18, 31, 33 등)는 지속적인 감염상태를 유지해 자궁경부암의 전단계인 자궁경부이형성증으로 진행되며 이 중 일부는 자궁경부암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악성 종양 발생의 고위험군으로 구분되어 있는 HPV 16과 HPV 18은 자궁경부암의 약70%에서 발견된다.
HPV 감염 후 정확히 어떤 과정에 의해 자궁경부암이 발생하는지 현재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않다. HPV 감염이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이지만, 반드시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요인들이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봐야 한다. 자궁경부암은 증상이 거의 없으나 한창 진행되면 주변 장기인 직장이나 방관 및 골반벽 등을 침범해 배뇨곤란과 허리통증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증상이 느껴져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암이 많이 퍼진 상태이므로 정기적인 검진과 예방백신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세계 최초의 암 백신 MSD ‘가다실’… 9~26세의 남성에도 접종 승인
4가 백신으로 자궁경부암 외에 생식기사마귀·항문암·음경암 예방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은 바이러스 모양과 비슷한 가짜 바이러스(VLPs, virus-like particles, 바이러스 양입자)를 인체에 주입해 지속적인 면역반응을 유도하고 HPV가 체내에 침입할 경우 감염이 일어나기 전에 질환이 생기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자궁경부암 백신으로는 한국MSD의 ‘가다실프리필드시린지주(Gardasil)’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서바릭스프리필드시린지(Cervarix)’가 있다.
가다실은 15년에 가까운 연구개발 끝에 탄생했다. 자궁경부암 발생의 70%를 차지하는 HPV 16형과 18형을 98% 이상 차단하며, 생식기 사마귀의 주요 원인인 6형과 11형을 90% 이상 막을 수 있다. 저위험군인 HPV 6,11형의 경우 생식기 사마귀의 90%, 저등도 자궁경부 상피내 종양의 10%, 재발성 호흡기 유두종증(RRP)의 100%를 유발한다.
일명 ‘곤지름’이나 ‘콘딜로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생식기 사마귀는 치료가 어렵고 지속적으로 재발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신체 및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 생식기 사마귀를 가진 산모가 출산할 경우 드물게 아이에게 수직감염(vertical transmission, 垂直感染)으로 재발성 호흡기 유두종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국내에서 가다실은 9~26세 여성에서 자궁경부암 예방을 목적으로 접종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9~26세 남성에 대해서도 콘딜로마 예방 목적으로 접종을 승인받았다. MSD측에 따르면 2008년 16~26세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3상 임상에서 가다실이 네 가지 HPV유형으로 유발되는 남성 외음부 병변(생식기사마귀, 항문암, 음경암 등)을 예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7~45세 여성은 유효성과 면역원성에 근거해 본인 희망이나 의사 권유에 따라 접종을 받을 수 있다. 가다실은 항문암을 78% 예방하는 것으로 보고됐고 이를 근거로 201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항문암 예방 적응증을 추가로 승인했다.
이밖에 적응증은 아니지만 △자궁경부 상피내선암(Adenocarcinoma in situ, AIS) △자궁경부 상피내종양(Cervical intraepithelial neoplasia, CIN) 1~3단계 △외음부 상피내 종양(Vulvar intraepithelial neoplasia, VIN) 2~3단계 △질 상피내 종양(Vaginal intraepithelial neoplasia, VaIN) 2~3단계 등에 가다실의 예방접종을 권고할 수 있다.
가다실은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로부터 품질과 안전성 및 효능 기준을 통과했고, 전 세계 124개국에서 700만도즈(dose) 이상 접종돼 안전성을 입증받았다. 최초 접종 후 각각 2개월과 6개월 후 총 3차례 접종을 받으며, 가격은 1회에 약 18만원이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2012년 9월부터 여학생들에게 지원하는 HPV 예방백신으로 가다실을 선택했다.
‘가다실’은 접종 후 과민반응이 나타나는 경우 추가 접종해선 안된다. 가장 흔히 발생하는 이상반응은 두통이며, 접종 후에는 주사 부위에 일부 통증과 가려움증 및 발열 등이 관찰된다. 접종 후에 일부 환자에서 넘어짐을 동반하는 의식소실이 보고된 바도 있다. 국내에서 1회당 약18만원에 접종되고 있다.
커버하는 혈청형 바이러스 범위 좁지만 높은 지속성 내세우는 ‘서바릭스’
가다실이 4가 백신인데 비해 서바릭스는 2가 백신으로 HPV 고위험군인 16형과 18형에 대한 자궁경부암 및 자궁경부상피내종양(Cervical intraepithelial neoplasia, CIN)을 예방하는 백신이다.
가다실은 자궁경부암 뿐만 아니라 생식기(자궁내·음경)사마귀, 항문암, 음경암, 질암 등에 걸쳐 효과 범위가 넓고 ‘서바릭스’는 HPV중 가장 발병율이 높은 16형과 18형에 대한 예방효과만 있어 외형적으로는 커버하는 질환의 범위가 좁다.
서바릭스는 생식기 사마귀는 예방할 수 없지만, 항체를 생성시키는 면역반응과 면역기억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항원보강제(adjuvant)인 ASO4를 첨가해 높은 항체가와 지속성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HPV는 인체의 자연면역체계를 빠져나가는 까다로운 바이러스로, HPV 백신은 적절한 항체를 높은 상태로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예방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서바릭스 관련 임상연구에서 첫 접종 후 7.3년까지 높은 항체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또 많은 기억B세포를 생성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억B세포는 인체가 잠재적으로 해로운 병원체에 최초 노출될 때나, 나중에 인체가 해당 병원체에 노출될 때나 항체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임상시험 결과 ‘서바릭스’는 HPV 16형이나 18형과 관련있는 자궁경부 상피내 종양의 2단계(CIN2) 이상에 대해 92.9%의 효능을 나타냈다. 두 가지 유형에 의한 자궁경부 전암(前癌)을 예방하는 백신 효능은 98.1%로 밝혀졌다.
서바릭스는 첫 접종 후 9.4년까지 100%에 가까운 자궁경부암 예방효과를 입증했다. 최근 개정된 허가사항 자료에 따르면 ‘서바릭스’는 HPV 유형에 관계없이 자궁경부 상피내 종양(CIN3 이상)에는 93.2%의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연구 결과 서바릭스는 접종 후 부작용으로 주사 부위의 통증과 발열 및 두통 등을 보인다. 최초 접종 후 각각 1개월 후와 6개월 후 등 3차례에 걸쳐 어깨 삼각근 부위 근육에 주사하며 1회 접종가격은 약15만원 정도이다.
어떤 백신 선택이 비용 대비 효과적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HPV는 100여종으로 이 중 15종은 자궁경부암 유발 고위험군이며, 40여종이 항문과 생식기 감염에 관련된 저위험군이다. 자궁경부암 예방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고위험군인 16,18,31,33형(32형을 고위험군으로 보기도 함) 등을 예방하면 된다. 16형과 18형은 가다실이나 서바릭스 모두 예방효과를 갖추고 있다. 6형과 11형은 자궁경부암 유발 저위험군으로 커버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국MSD는 남성의 생식기 사마귀, 음경암, 항문암 등을 예방하고 부수적인 자궁경부암 저지 효과를 노리려면 항체를 생성해놓는 게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보다 완벽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을 만들려면 31형과 33형, 32형도 커버하면 좋지만 현재는 나와 있는 제품이 없다.
이에 대해 GSK는 서바릭스는 자궁경부암 예방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라며 항체생성능력에서 가다실을 앞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점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박유란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건강증진센터)는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의 접종 필요성과 관련, “모든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HPV 감염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알려진 원인이 HPV밖에 없고 백신 접종으로 충분히 예방가능하다면 맞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또 “고위험군인 16형과 18형을 막으면 수치적으로 70% 정도의 HPV감염을 방어하는 것이지만 이와 유사한 유형의 HPV도 막는 교차방어 효과가 있다”며 “남성 배우자들도 HPV 항체를 가져야 여성배우자도 HPV 감염과 이로 인한 자궁경부암 발생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는 자연적인 면역체계에 의해 항체가 생성되기도 하지만 자연면역의 경우 해마다 유행하는 독감바이러스에 대해 항체를 만들었다가 해가 바뀌면 항체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원리처럼 오래 가지 못하므로 지속성을 유지하려면 인위적인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
백신 접종은 일반적으로 성경험을 갖기 전인 사춘기 초기(15~17세가 최적)에 맞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의 첫 성 경험 시기가 앞당겨져 몇년 더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의 판단과 권고에 따라 여성은 45세까지(가다실) 또는 55세까지(서바릭스)를 맞을 수 있다. 여성은 60세까지도 HPV 감염에 의한 자궁경부암 발병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백신의 예방효과 지속기간이 10~15년임을 감안하면 45세까지 접종해도 효과적이라는 추론이다.
백신의 항체 지속기간은 가다실이 약30년, 서바릭스가 50년으로 추산돼 있다. 이에 박 교수는 “최소 10~15년 지속될 것으로 확신되지만 접종을 시작한 기간이 수년에 불과해 데이터가 없다”며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두 백신의 자궁경부암 예방 및 HPV항체 형성 효과는 앞으로 전향적 또는 후향적 연구를 통해 비교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시장에서는 가다실이 약 70%를 점유하는 등 큰 차이로 서바릭스를 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