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농도 불산에도 심폐 손상 … 감기증상시 즉시 진료받아야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일어난 경북 구미시 현장이 지난 8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이번 사고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0년 동해안 산불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05년 강원 양양군 산불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 등에 이어 자연재해가 아닌 인적재난으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6번째 사례가 됐다. 그만큼 불산가스의 위험성이 크고 심각하다는 것을 말한다.
불산가스(Hydrogen Fluoried, HF) 또는 불화수소산(Hydrofluoric Acid)은 약산(weak acid 弱酸)이지만 무색의 자극성 액체로 공기 중에서 증발하고 이때 유독성 가스로 활성화된다. 표면장력이 매우 약해 피부나 점막에 강하게 침투하기 때문에 취급시 주의를 요한다.
이 물질은 알칼리·알칼리토금속·납·아연·은 등 금속의 산화물, 수산화물, 탄산염 형태와 반응해 불화물을 생성한다. 대부분의 금속은 불산가스에 침투당하지만 금과 백금은 변하지 않는다. 불산가스는 유리와 실리콘도 녹이는 강력한 침투력을 가졌기 때문에 보관은 반드시 합성수지제(폴리에틸렌) 용기에 밀봉 저장해야 한다.
불산가스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대기 중에 녹아 인체에 침투하면 신경계를 손상시키며, 호흡기 접촉시에는 점막에 이상이 생겨 질식하게 된다. 이 물질은 크게 △칼슘이나 마그네슘과 반응해 침전을 일으켜 체내에 저칼슘혈증과 저마그네슘혈증 유발할 수 있고 △고칼륨혈증과 저나트륨혈증 초래하며 △강력한 부식력을 발휘하는 등 3가지 위험을 갖고 있다.
불산가스는 물과 수소결합을 하는 특징이 있는데 사고지역에서 불을 진압하기 위해 물을 뿌렸다가 물에 녹은 불산가스가 인근 강으로 흘러 피해가 확산됐다. 물에 녹게 되면 자연소멸되지 않고 땅속으로 스며든 불산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어패류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소석회 등 알칼리성 수용액으로 중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사고지역에서는 이미 인근 강으로 퍼져버린 이후 중화작업을 진행했다. 다만 불산이 땅속에 스며들어도 땅에 존재하는 칼슘 성분과 반응해 형석과 같은 안정된 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다는 반대 견해도 있다.
불산가스가 피부와 접촉하면 수소와 결합해 체내로 들어와 불소이온으로 변해 흡수된다. 이 불소이온은 혈류를 타고 신체 혈관을 돌아다니며 칼슘이나 마그네슘과 반응해 침전물을 만들어 저칼슘혈증, 저마그네슘혈증을 유발한다. 나아가 심실세동을 일으켜 심장을 정지시킬 수도 있다.
불소이온이 기도에 들러붙으면 느린 속도로 폐에서 화학반응을 유발한다.대개의 유해물질은 생물학적인 반감기(인체에 들어온 유해물질의 반이 체외로 빠져나갈 때까지 걸리는 시간)가 수주에서 수개월인 반면, 뼈에 흡수된 불산은 이 기간이 20년 가까이 된다. 불산이 뼈로 흡수되면 뼈 자체를 손상시키고 심한 경우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한다. 아울러 구토, 복통, 근육통, 근육 잔떨림, 경련, 불완전 마비, 청색증, 저혈압, 심실성 부정맥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서익권·김성진 계명대 의대 응급의학과 박사는 지난해 2월 대한응급의학회지에 제출한 논문 ‘불화수소산에 의한 흡입손상 환자의 체험 1례’에 따르면 저농도 불산가스에 노출되더라도 화학성 폐렴·폐부종·출혈성 폐포염·급성호흡 곤란·저칼슘혈증·전신 독성 등 치명적 합병증을 앓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 박사는 “불산 흡입 증세는 감기처럼 시작해 편도선염처럼 지나갈 수도 있지만 심한 경우 폐렴 및 급사에 이를 수 있다”며 “미량이라도 불산가스에 노출된 사람이 감기증상을 보이거나 감기가 의심되면 즉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불산이 농작물이나 가축에 입히는 피해는 약한 편이다. 과일 껍질에는 불산이 잔류할 수 있지만 과일 속으로 들어가면 칼슘과 반응해 안정화될 수 있다. 대체로 가축을 통한 불산의 생체농축현상은 거의 없기 때문에 축산물이 위험해서 못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9일 경찰이 공개한 불산가스 누출 당시 사고현장 CCTV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