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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그는 재즈, 즉흥적으로 감성적 뇌 자극하는 웃음이 최고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자
  • 등록 2012-04-10 00:29:35
  • 수정 2013-04-25 1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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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시대 아이콘 '개그콘서트'의 감성심리 들여보다니

‘Gag is Jazz’.
개그(gag)를 사전적 의미로 풀어보면 공연 중 관객을 웃기기 위해 대본에 없는 즉흥 농담을 하는 것이라 되어 있다.연극 도중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긴장된 장면이 있을 경우 관객들에게 심적 여유로움을 주고자 연기자가 즉석에서 재치 있는 말재간이나 가벼운 농담거리를 던지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코미디언이 악보대로 연주를 하는 클래식 연주자라면 개그맨은 기본적인 악보는 있으나 즉흥 연주를 중간 중간 삽입하는 재즈 뮤지션과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즉석에서 하기’(improvisation) 만큼 다름을 일으키는 좋은 플레이는 없을 듯 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요일 오후 9시 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메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개콘)를 본방사수한다.개콘 중에서 ‘꺾기도’가 최근엔 가장 재미있다. 처음 볼 때는 저 양반들이 뭐하나,장난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볼수록 웃긴다.그리고 그 웃김이 정말 뇌 심부에서 나온다는 느낌이 든다.심부에서 나온다는 것은 뇌가 인지적인 프로세스를 거의 쓰지 않고 감성적인 ‘삘(feel)’에 임팩트를 쳐 황당한 내용에 짜증나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고도의 기술을 발휘했다는 뜻이리라.
꺾기도의 정의부터 정말 끝내 준다,황당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공황상태로 만든다는….아닌게 아니라 보다 보면 어느새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알겠습니다~아 다람쥐’, “다시는 그런 거 하지마~아 마보이’등 끝나는 말에 붙어 나오는 추임새인지 애드립인지가 정신병리 수준,즉 사이코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꺾기도는 개콘의 세부 코너들이 인지적 프로세스를 주로 쓰는 것으로 짜여졌다는 평가를 듣자 뇌 심부를 쓰지 않고 저절로 웃기게 하는 코너가 필요하다는 제안에 따라 기획됐다고 한다.꺾기도에 앞서 가장 인기였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은 전통적인 말 재간으로 사람을 웃긴다.즉, 뇌로 치면 좌측 언어시스템에 다름이라는 자극을 줘 웃기는 것이다. 즉 언어적 콘텐츠가 메인인 코너다.이에 비해 꺾기도는 언어적 콘텐츠에 인지적 논리성이 없다.한데 이것이 이성적 삶에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들의 뇌,특히 감성 뇌에 카타르시스를 주고 감성적 이완을 유도하고 웃음을 일으킨다.
단순한 슬립 개그(자빠지는 몸 개그)도 아니고 언어적 파워를 활용한 논리 개그도 아니다.꺾기도는 아주 이상한 개그이다.재즈로 치면 악보가 있다고 우길 수 있으나 거의 애드립으로 가고 있는 연주라는 느낌이다.꺾기도는 감성 전문가인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새로운 뇌 자극 콘텐츠이다.우리도 살아가면서 힘들 때에는 가끔씩은 ‘꺾기도’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애정남도 훌륭한 프로그램이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을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고 한다.이것처럼 사람을 괴롭히고 에너지를 뺏는 것도 없다.뇌가 피곤하면 감성적으로 예민해지고 사소한 결정을 내리기도 힘들어진다.애정남은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뇌에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들으면 시원하고 뻥 뚫린다.애매한 것을 정하는 것,그런데 개콘에서는 그 기준이 모범생적 가치라기보다는 실제적인 우리 감성이 느끼는 가치에 기준한다.그래서 웃을 수 있는 것이다.어찌 보면 사회적인 존재로 잘 적응해 산다는 것이 다분히 위선적인 요소를 많기 안고 있기 때문일까.명쾌한 애정남의 ‘판결’을 듣고 있으면 울화병 환자의 무의식에 눌린 화(anger)가 풀리는 것처럼 마음에 카타르시스가 온다.
개그콘서트의 중심 소재가 인지적 뇌(애정남)를 자극하는데서 감성적 뇌(꺾기도)를 자극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더 둔 것은 사소한 변화지만 우리 현대인들의 감성 시스템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잘 보여준다.요즘 같은 절대경쟁의 스피드한 세상에서 너무나 빠르고 큰 변화를 요구받고 그 충격에 지친 그 충격에 지친 우리들의 뇌에 개콘은 감성적 이완의 행복을 준다.그러나 이같은 자극적이고 인위적인 웃음은 감성 변화에 역치를 올려 한편으로는 ‘개그중독’을 일으킬지도 모른다.중독의 핵심은 내성이다.우리 뇌는 보다 강력한 자극이나 변화없이는 웃지 못하게 변해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
앨빈 토플러는 저서 ‘미래충격’(future shock) 에서 미래사회는 생존을 위한 급격한 변화를 강요해 우리들의 뇌와 몸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라 예견했고 그것은 이미 사실이 됐다.우리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교감이다.그 교감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다.미친 듯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경쟁시스템의 회전 속도에 맞춰져 과열되는 우리 뇌를 잠시라도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식히고 그 회전 수를 줄여보자.개콘을 보더라도 좋은 사람,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자.인간 최고의 웃음 소스는 실제적인 사람과의 만남에서 채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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