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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망국한을 달래준 커피의 역사
  • 정종호 기자
  • 등록 2012-04-03 18:05:18
  • 수정 2016-01-28 13: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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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교도의 음료에서 세계 최고의 기호음료로 등극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와 같이 아름답고 사탕처럼 달콤한 것이 커피라고 18세기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정치가인 샤롤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Charles-Maurice de Talleyrand-Perigord 1754~1838)는 말했다.커피는 동양의 차,남미의 마테차와 함께 세계 3대 음료수라고 일컬어진다. 커피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가 원산지로 아주 오래전에 아랍에 전래됐다고 한다.아라비아 커피나무는 기원전 800년경 에티오피아 서남쪽 카파주에서 양치기를 했던 사람이 발견했다.양들이 근처에서 자라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먹은 다음 흥분하는 것을 보고 양치기들도 따라서 먹어본 결과 기분이 좋아지고 잠이 깨는 것을 알게 됐다.

6세기에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침공하면서 아라비아에 커피문화가 본격 이식됐다.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처음에는 커피 열매로 술을 만들어 마시거나 곡류,두류와 같이 분쇄해 식량으로 사용했다.이후 날 커피콩(生豆,coffee bean 껍질을 제거한 가운데 종자 가운데 부위)나 커피씨 껍질(外皮,outer skin)를 건조시켜 그냥 끓여먹다가,5세기경에 최초로 볶고 분쇄해(roasting & grinding) 마시기 시작했다.13세기 중반경부터 요즘처럼 생두를 200~250도로 볶아마시는 방법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커피는 9세기부터 아랍에서 본격 재배됐고,14세기에는 아랍의 식민지가 된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경작됐다.11세기 초반부터는 여러 아랍국가에서 각성제로 달여먹기 시작했다.아라비아의 라제스와 아비세나 등의 의학자들이 커피는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해주고 각성제로도 좋은 약이라고 추천했다.이후 차츰 약제나 기호음료로 전환돼 급기야는 페르시아를 포함한 아라비아 전역에서 사랑받게 됐다.아랍에서 커피를 즐기게 된 것은 회교의 교리상 술이 금지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한 음료로 발달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517년 오스만투르크제국(지금의 터키)의 셀림 1세 황제가 이집트 원정길에 커피를 애음하는 풍습을 보고 터키로 커피문화를 들여왔다.당시 남편이 아내에게 하루 한잔의 커피를 대접하지 못하면 아내가 이혼할 수 있는 풍습까지 생겼다고 전해진다.1554년에 터키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는 최초의 화려한 ‘카네스’ 커피하우스가 개점했다.이 때문에 당시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였던 터키에 들른 상인이나 관광객들에 의해 점차 전세계에 퍼졌다.커피는 1573년 독일 의사인 라볼프의 기행문을 통해 유럽에 처음 소개됐다.커피문화는 1614년 이탈리아 베니스상인의 손을 거쳐 유럽 전역에 보급됐다.당시 오스만투르크제국은 발칸반도를 장악하고 서유럽까지 침공을 감행하던 터여서 커피는 유럽에 빠르게 확산됐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이에 커피가 뭔지도 몰랐던 로마가톨릭은 커피가 ‘이교도의 음료’라며 음용금지명령을 내릴 것을 교황에게 요구했다고 한다.그러나 당시 교황인 클레멘트8세는 커피로 세례를 줄 정도로 커피애호가였다고 전해진다.

커피의 생산과 유통은 아라비아 독점시대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이 즈음까지 커피 수출은 아라비아 남단인 예멘의 모카(Mocha)항구에서만 이뤄졌고 수출용 원두에는 반드시 끊는 물을 부어 발아력을 잃게 했다.여러나라에서 커피 종자를 가져가려 했는데 17세기 초에 인도의 순례자가 입수에 성공했다.커피는 적도에 가까운 열대 및 아열대 지방에서 최적의 생육조건을 갖는다.오늘날 주산지는 중동이 아닌 아프리카,중남미(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동남아(인도네시아) 등지로 바뀌었으나 대부분 아프리카(에티오피아 콩고 라이베리아)가 원산지인 품종을 재배한다.

조선시대 고종은 1986년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시절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커피를 접해본 후 커피를 극히 애호했다고 전해진다.

아시아 가운데 일본에 처음 커피가 들어온 것은 1716년경이다.네덜란드 사람이 처음으로 커피를 전해다고 한다.우리나라에는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이 미국 영국 독일 등 구미 국가와 수교하게 되면서 커피가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1895년 을미사변 때 칼 위베르(Karl Waeber) 초대 러시아공사가 커피나무 열매를 한국에 가져왔다고 전해진다.이듬해인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고종황제가 러시아공관에서 피신할 당시 위베르 공사의 처형(妻兄)인 프랑스계 독일인 손탁(Sontag)으로부터 커피를 처음 접한 이후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이 때의 커피는 모난 설탕덩이 속에 커피가루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커피에는 슬픈 역사의 비화가 있다.1910년 한일합방이 발표된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은 공교럽게도 고종의 47회 만수절(생일)이었다.이날 고종은 대신들에게 가배다(커피의 한문 음역어)를 대접하겠다며 수랏간에 일러 커피를 내오게 했다.그러나 이 커피에 독이 들어있었다.고종은 커피를 조금 마시다 잔을 내려놔 큰 탈이 없었으나 황태자(순종)는 커피를 단숨에 마셔 잔을 떨어뜨리며 구토를 했다.다행히 고종황제 암살음모는 미수로 그쳤으나 워낙 약골이었던 황태자는 이 사건 이후 치아가 몽땅 빠졌다.훗날 순종으로 즉위한 황태자는 정신상태도 밝지 못하고 가뜩이나 안 좋은 눈이 더욱 나빠져 심한 근시로 고생해야 했으며 성 불구로 두 명의 황후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고종은 손탁 여사에게 손탁호텔(Sontag Hotel)을 지어줬으며 1902년 이 호텔안에 정동구락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를 파는 다방이 생겼다.이에 앞서 1896년에 러시아 상인이 잡화점 안에 다실을 경영했다는 사실도 전해지고 있다.3·1운동 이후에 일본인이 지금의 명동에 ‘멕시코’라는 다방을 냈다.1910년경 세종로에 나무(땔감)시장을 벌인 한 프랑스인은 보온병에 넣어둔 커피(洋湯국)를 나무장수들에게 나눠주면서 매물을 유치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인스턴트커피는 1900년대 초에 미국에서 나돌기 시작했다.1944년 2차세계 대전 당시 군인들의 휴대용 커피로서 크게 생산량이 늘어났다.전쟁 후에는 인스턴트식품의 물결을 타고 널리 일반화됐다.국내서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 PX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인 ‘카파’(caffa)로서 힘을 뜻한다.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나무가 야생하는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아랍어 ‘gahweh’로부터 터키어인 ‘kahveh’로 옮겨졌다.유럽에서는 처음에 ‘아라비아의 와인’이라고 하다가 1650년 무렵부터 커피라고 불렀다.커피는 나라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어로는 coffee, 프랑스·포르투갈·스페인어로 cafe, 이탈리아어로는 caffee, 독일어로는 Kaffee, 덴마크·스웨덴어로는 kaffe, 러시아어로는 Kophe,희랍어로는 kafeo,터어키어로는 kahveh,페르시아어로는 qehveem 등으로 불린다.우리나라에서는 가배(咖啡),가배다(咖啡茶),가비, 고희 등으로 음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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