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화하다’라는 표현이 늘고 있다. 화는 한자로 ‘될 화(化)’에서 유래한 말이다.
언론에서 예컨대 “채산성이 악화했다” “채산성이 악화됐다” “성형수술이 보편화했다” “성형수술이 보편화됐다”처럼 두 가지 모두 사용되고 있는데 국립국어원은 둘 다 맞지만 능동태인 전자의 표현들이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입수능시험, 취업시험, 국가고시 등을 준비하는 많은 수험생들이 이에 맞게 적응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
‘될 화(化)’라는 한자 안에 이미 ‘되다’는 뜻이 내포돼 있으므로 의미 중복이어서 ‘~화했다’가 바람직하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입장인데 과연 일률적으로 능동태를 쓰는 게 맞는가.
우리말에 의미 중복이 포함된 표현은 맞다. 그래서 △공감을 느끼다→공감하다 △결론을 맺다→결론내다 또는 결론짓다 △계약을 맺다→계약하다 △낙엽이 떨어지다→낙엽지다 △미리 예약하다→예약하다 등 후자로 교정하는 게 합당하다.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핵가족이 보편화했다[보편화됐다]” “대응이 곧 가시화할[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처럼 능동태와 수동태(피동태)를 모두 가능한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문제다. 화법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므로 문장의 태(態)는 중요하다. 능동태나 자동태를 쓰면 사람의 정신도 능동적, 긍정적, 희망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수동태 사용을 자제하라는 게 주류 언어학자들의 견해다.
하지만 억지스러운 능동태는 적확한 표현을 가로막는다. 핵가족이 ‘보편화되는’ 것은 개인주의 확산, 유교적 가족연대 약화, 경제적 이유, 삶의 질 중시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불가피한 사회적 현상인데 어떻게 ‘보편화했다’는 능동적 표현이 적절하겠는가.
사회적, 정치적 현상이 ‘가시화된다’는 표현도 틀렸다. 이런 현상은 특정 사회나 정치의 구성원들의 주된 생각과 그것에 대한 반작용 등이 총합돼 ‘정반합’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도대체 능동태 표현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가. 따라서 ‘가시화하다’는 틀렸고 ‘가시화되다’는 맞다. 그런데 둘 다 옳고 오히려 능동태인 ‘가시화하다’고 조장하는 국립국어원의 판단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필자는 그래서 ‘될 화(化)’라는 표현에 문맥상 과연 ‘화하다’가 맞는지, ‘화되다’가 맞는지 판단해서 그때 그때 달리 쓴다. 예컨대 ‘역량을 강화하다’ ‘정치를 희화화하다’ ‘농업을 과학화하다’ 등처럼 쓸 때에는 당연히 능동태를 써야 한다. 이밖에 문명화, 최신화, 자동화, 실제화, 현대화, 전산화 등은 능동태로 대부분 사용되는 용례다.
물론 예외도 있다. 정부 정책에 의해 ‘서민 복지(사회안전망)가 강화됐다’라고 쓸 수도 있다. 그래서 될 화의 쓰임은 문맥에 따라 능동태도, 수동태도 될 수 있는데 두 가지 다 맞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급적이면 한자가 들어 있는 ‘될 화(化)’를 아예 쓰지 말고 우회하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합의 사항이 무효화됐다”를 “합의 사항이 무효가 됐다”라는 식으로 바꿔쓰라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실용성이 있어야 하고, 쓰는 대중이 편리해야지 굳이 그렇게 까지 머리를 굴려가며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하는가. 물론 글쓰기가 직업인 문필가나 학자, 기자 등은 그럴 여유가 있겠지만 대중에게는 부담스러운 방법이다.
작년 3월 경북 산불 보도 당시 언론들이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산불이 영혼이 있고, 의도를 갖고 있는가?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풍, 무성한 수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확산되는’ 것인데 과연 ‘확산하다’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는가.
국립국어원은 ‘화하다’와 ‘화되다’ 중에서 골라 써야 하는 언중을 위해 둘 다 맞다고 판단하고, 가급적 능동태를 쓰라고 권하고 있지만 적확한 표현을 저해하므로 다시 입장을 정해야 한다. 능동적인 표현은 ‘화하다’로, 수동적인 표현은 ‘화되다’로 교정돼야 한다.
국립국어원은 대한민국의 어문 규범(맞춤법, 표준어 규정 등)을 연구하고, 수정·보완하는 주된 국가 기관이다. 언어 표현의 실용성과 적확성 향상을 위해 ‘될 화(化)’ 논란처럼 억지 주장으로 언어 사용자의 자연스러움과 표현의 합리성을 저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