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정기주총을 통해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임종윤·종훈 형제에게 뺏긴 송영숙·임주현 오너 일가 모녀가 경영권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모녀 측은 한미약품그룹 경영권의 키맨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지난 7월초 의결권공동행사 약정 및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해 대주주연합을 구성하면서 그룹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주주연합은 임종윤·종훈 형제와 비교해 현재까지 확보한 우호 지분이 상대적인 우위에 있는 만큼 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이사회 재장악을 통해 경영권을 탈환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다음 달 개최 예정인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주총회가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향방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번 임시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리를 손에 거머쥐는 쪽이 향후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주도할 전망이다.
송영숙, 임주현, 신동국 등 대주주연합은 지난달 29일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는 내용증명을 형제 측에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 연합은 다음 달 중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정관변경과 신규이사 3인(사내이사 2인, 기타비상무이사 1인)의 선임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대주주 연합이 최대 10인인 이사회 정원을 12인으로 확대해 대주주 연합 측 인사 3인을 추가로 앉혀 이사회를 장악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은 임종윤·종훈 형제를 포함해 권규찬 기타비상무이사·배보경 기타비상무이사·사봉관 상무이사 등 임종윤·종훈 형제 측 인사 5명과 송영숙 회장을 비롯한 신유철·김용덕·곽태선 사외이사 등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 4인으로 구성됐다. 임종윤·종훈 형제와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 인사가 5대 4의 구도로 짜여 있다. 대주주 연합은 이번 임시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정원을 늘려 7대 5 구도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올해 초 OCI그룹과 통합을 이유로 불거졌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모녀 측이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을 추진하려 하자 자신들을 배제한 결정이라고 반대하며 경영 복귀를 위한 주주제안에 나섰다. 이후 형제 측은 지난 3월 28일 개최된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추총회에서 신동국 회장과 소액주주연대가 손을 들어주면서 표대결에서 승리했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통합도 무산됐다.
한미약품그룹은 정기주총 다음 달인 4월 4일에 개최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서 송영숙·임종훈 공동 대표체제를 수립하며 경영권 분쟁을 끝내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5월 개최된 한미사이언스 임시 이사회에서 송영숙 대표를 해임하며 임종훈 단독 대표체제로 전환됐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형제 측이 완전히 장악했다.
하지만 한미약품그룹의 주가가 떨어지고 회사의 신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기주총을 통해 실익을 얻지 못한 신 회장이 다시 모녀 측과 손을 잡으면서 경영권 분쟁이 제2막에 들어섰다.
상법상 특별결의 사항인 정관 변경은 가결을 위해 출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66.7%)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지분 구조는 대주주 연합 측 48.19%, 임종윤·종훈 형제 측 29.07%(지난 6월 30일 기준)로 구성돼 있다.
업계는 5.53%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공단과 2.2%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연대의 표심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3월말 개최된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추천한 이사선임 안건에 모두 반대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6월 한미약품 주주총회에서도 임종윤·종훈 형제 측 이사 후보 중 임종훈 대표를 제외하고 모두 선임에 반대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사실상 송영숙·임주현 모녀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업계는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국민연금공단이 대주주 연합 측의 편을 들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소액주주연대는 지난 3월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임종윤·종훈 형제 측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소액주주연대가 이번 임시주주총회에서 주가 부양 의지가 높은 쪽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형제 측을 다시 지지할지 장담할 수 없다.
한미사이언스 임종훈 대표, 대주주 연합이 보낸 내용증명에 대한 답신으로 여론전
한미사이언스의 현 경영진인 형제 측은 지금의 경영진을 개편해야 한다는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현 경영진은 신동국 회장과 모녀 측 등 대주주 연합이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전달한 내용증명에 대한 회신을 26일 발송하면서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대주주연합은 7월 29일(임시주총 관련)과 8월 13일(제3자배정 유상증자 관련) 등 두 차례 한미사이언스에 내용증명을 발송했었다.
한미사이언스는 이에 대한 회신을 통해 일부 대주주의 임시주총 소집 요구에 대해 “회사가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요건도 갖추지 아니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서를 보냈다고 갑자기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신동국 등 주주들은 경영상 필요에 의한 투자유치(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해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이들 대주주들이 경영권 분쟁상황을 전제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시 법적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한데 대해서는 ”이는 결국 제3자배정 신주발행, 전환사채 발행,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및 투자유치를 방해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미사이언스는 “당사는 장기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국내 유일의 글로벌 파마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다져야 하고 단기적인 자금 수요 충족 및 채무경감을 위해서도 투자 유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와 같은 사정은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을 비롯해 신동국 등 주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위해 외부 투자유치가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회사 측은 “중장기적으로 한미의 글로벌 파마 도약을 위해서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잠재력 있는 국내외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대규모 투자유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한미사이언스는 답신에서 “신동국 등 주주의 투자유치 방해는 주요주주들 사이의 적법한 합의에 대한 계약 위반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국세청에 대한 기망(상속세 납부기한 신청의 사유를 어김)이 되어 국세청의 납부기한 연장 취소 등 세무당국의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결국 당사 및 소액주주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명시했다.
신 회장과 송 회장 등 모녀의 일련의 작업이 회사의 투자유치를 방해하는 배임에 해당할 뿐 아니라, 오버행(대주주 등이 주식 과잉 물량을 일시에 쏟아내 주가가 하락할 위험) 이슈를 해결하여 경영안정을 이루려는 회사의 업무방해 및 주주간의 계약위반, 국세청에 대한 기망행위에까지 해당될 수 있다는 게 형제 측인 현 경영진의 주장이다.
대주주연합,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vs 형제, 한국형 ‘론자’로 육성
대주주연합과 현 경영진은 표면상 한미약품그룹에 대한 비전이 상이하다. 대주주연합은 오너 중심의 현 경영 체제를 쇄신하고 현장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사업 경쟁력과 효율성 강화를 통해 그룹 경영을 시급히 안정화하다는 데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대주주연합은 사외이사와 함께 참여형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 경영을 지원하고 감독하는 한편 회사의 투명성을 보다 높여 주주가치를 극대화해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한미약품그룹의 위상을 다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한미약품을 100개 이상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위탁개발 및 생산 전문기업(CDMO)으로는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른바 ‘한국형 론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계열사 중 하나인 온라인팜을 중심으로 유통 사업 성장도 가속화하고. 과감한 인수합병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하겠다고 밝혔다.
형제 측은 상속세 문제의 경우 외부 유치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모녀 측은 신 회장과 체결한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으로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했다. OCI그룹과의 통합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려던 모녀 측의 당초 계획이 신 회장으로 바뀐 것이나 다름없다.
업계 일각에서는 형제 측이 임시주주총회에 불참하면서 주총 결과를 무효화하려는 전략을 쓸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럴 경우 주총 결과의 법적 유효성을 놓고 양측의 법정 공방도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임시주총 불참은 바로 정관 개정 및 이사회 권력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한편 형제 측은 최근 모녀 측 지지 입장을 보여왔던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28일 오후에 사장에서 전무로 직급이 강등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법적으로는 대표이사이지만 제조본부장으로 권한이 상실돼 사실상 대표직에서 축출됐다.
지난 6월 한미약품 이사회를 통해 임종윤 한미약품 이사가 새 사장으로 오르려했지만 박재현 사장과 모녀 측의 물밑 공작으로 이사회 개최가 불발된 게 가장 중요한 강등 요인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모녀 및 형제간 경영권 갈등이 2막에 접어들면서 눈엣가시 같은 박 사장을 제거하려는 측면도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