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 당뇨병 겸 비만치료제인 세마글루타이드 GLP-1 (semaglutide) 성분의 ‘오젬픽’(Ozempic)과 ‘위고비’(Wegovy)를 앞세워 세계에서 가장 ‘핫’한 제약사 중 한 곳으로 부상한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가 덴마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덴마크 경제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에 게재된 7월 30일자 기사를 정리해 2일 소개했다.
미국의 패스트푸드가 세계를 점령한 가운데 이제 전세계 비만인과 당뇨인은 위고비 또는 오젬픽을 사용할 채비가 돼 있다. 이에 오젬픽은 덴마크의 강력한 성장동력이 됐다. 전 세계 매출은 2023년 한 해에만 60% 이상 증가했다. 오젬픽의 지난해 매출은 140억달러로 이 회사 매출의 41%를 감당하고 있으며, 이 중 미국 매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 위고비도 지난해 45억달러의 글로벌 매출을 올렸다.
비만약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는 2020년과 2022년 사이 오젬픽 및 유사 약물에 대한 처방이 4배 증가했다. 하지만 높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간 미국에서 오젬픽 부족 현상이 지속됐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2019년 대비 순익이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주가는 역대 최고가를 달성하며 2023년 말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됐다. 시가총액이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증시 전체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인 4060억달러도 뛰어넘었다.
노보노디스크의 부상(rise)은 덴마크 경제의 취약성을 가리는 불균형 성장을 유도할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마치 원유로 먹고 사는 산유국의 높은 경제 수준이 실제로는 고른 산업기반에서 비롯되지 않아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덴마크는 노보노디스크 덕분에 ‘제약강국’으로서 제약산업에 생존을 맡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음을 덴마크 당국은 우려하고 있다.
그 전례로 북유럽 이웃 핀란드가 모바일 통신기기 회사인 노키아의 몰락으로 핀란드 경제 전체가 침체되는 ‘노키아의 함정’(Nokia trap)에 빠진 바 있다. 경고하게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은 노키아는 핀란드 성장의 거의 4분의 1을 담당했고 핀란드 수출 20% 이상을 창출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노키아는 애플과 삼성, 화웨이, 샤오미 등 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빼앗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고 핀란드 경제는 휘청거렸다. 북유럽 이웃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핀란드 경제 쇠퇴는 더 가팔랐고, 위기 이후 회복은 훨씬 더뎠다.
노키아 몰락이 핀란드 경제의 장기 침체를 불러왔다. 핀란드 경제연구소(Research Institute of the Finnish Economy)는 2008년에서 2014년 사이 노키아의 부진이 핀란드 GDP 감소의 30% 이상과 고용 감소의 20%를 차지한다고 추산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창출된 덴마크 일자리 5개 중 거의 1개가 노보에서 직접 창출됐다. 노보가 간접적으로 창출한 일자리(예: 노보의 공급업체나 상점과 식당에서 돈을 쓰는 모든 부유한 노보 직원들)를 포함하면 덴마크에서 창출된 모든 민간 부문 비농업 일자리 거의 절반이 노보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욱이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은 제약 부문 기여가 없었다면 지난해 줄어들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노보노디스크가 거의 단독으로 국가를 불황에서 구해냈다.
경제학에서는 좋은 것을 너무 많이 가지면 때때로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1960년대 네덜란드 경험에서 이름을 딴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 대표적 사례다. 네럴란드병은 북해에서 천연가스가 발굴되면서 경제가 갑자기 좋아졌지만 네덜란드 화폐가치가 급상승하고 다른 산업의 성장이 부진해지면서 이후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겪은 것을 말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노보노디스크 부상으로 덴마크 역시 가상의 ‘덴마크병’을 앓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노보의 의약품 판매 급증은 덴마크 수출을 촉진하고 덴마크에 많은 외화를 유입시켰다. 노보노디스크의 매출 대부분은 북미에서 발생하고, 노보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 상당 부분을 덴마크 크로네로 환전해 덴마크에서 직원 급여와 세금을 지불하며 덴마크에 공장을 확장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이는 크로네가 달러와 같은 다른 통화에 비해 가치가 상승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크로네는 덴마크가 환율을 유로로 고정하기 때문에 가치가 많이 증가할 수 없다.
통화 강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덴마크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게 유지함으로써 대응하고 있다. 덴마크 단스케은행의 외환 시장 및 금리 전략 책임자인 옌스 네르빅 페데르센은 블룸버그에 “체중 감량 약이 덴마크의 금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개입으로 크로네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지금까지 덴마크병을 겪지 않는 바탕이 됐다. 여전히 덴마크는 의약품 외에도 기계류 약 20%, 화학 및 연료제품 약 26% 등 의약품을 포함한 공산품을 70% 남짓, 농축산수물 등을 18% 남짓 수출하는 등 다양한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지만 노보노디스크의 가파른 매출 상승이 국가산업 균형발전을 해치지 않을까 경제당국은 걱정하고 있다.
노보가 조만간 노키아와 같은 붕괴를 겪을 가능성은 낮지만, 향후 노보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세계 각국이 이미 노보의 의약품에 대해 더 엄격한 가격 통제를 시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노보의 오젬픽에 대한 특허는 10년 이내 만료된다. 이 시점이 되면 제네릭 의약품 업체와 맞서 싸워야 한다. 노보가 성장을 멈추면 덴마크도 성장을 멈추고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덴마크가 우려하는 ‘노키아의 함정’이다. 이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덴마크 기업들이 더 빠르게 성장하고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여 덴마크 경제 성장이 하나가 아닌 여러 회사에 의해 주도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으며, 특히 유럽의 침체된 경제 환경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노키아 함정의 또 다른 측면은 노보의 성공을 경제 전체 성공과 동일시하는 ‘착시 현상’과 ‘현실 안주’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핀란드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훈을 얻은 바가 있기 때문에 덴마크 정책 입안자들은 ‘노보 효과’(Novo effect)’에 의해 가려질 수 있는 근본적인 약점의 징후를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덴마크 경제부장관은 최근 경제보고서에서 제약산업을 31번이나 언급했다. 일시에 좋은 것을 너무 많이 가질 때 따르는 위험을 인식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해법도 상당 부분 마련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책과 현상과의 괴리는 큰 게 인류사의 보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