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단체들은 오늘(4일) 종로구 보신각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고통과 불안을 종식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소속 89개 단체 회원들과 한국유방안환우회총연합회 13개 지부회원과 가족 등 400여명(경찰추산) 참여한 가운데 열인 이날 촉구대회에서 환자단체들은 의정간의 힘겨루기 속에서 갈등상황이 136일째를 맞고 있다며 그동안 피해만 입고 있는 환자들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직접 거리로 나서게됐다고 밝혔다.
대회를 통해 환자단체 회원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은 상황의 불식을 위해 세브란스 병원, 고려대병원, 서울아산병원의 명분없는 무기한 휴진철회를 요구했다. 또 정부에는 상급종합병원을 전무의 중심의 병원으로 전환하고 전공의 수련환경의 획기적 개선을 요청했다.
이에 더해 국회에는 의료인 집단행동시에도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는 단 한시도 중단없이 제공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입법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환자단체의 촉구문 전문이다.
[촉구문] 아픈 사람에게 피해와 불안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에 미래는 있는가? 의료공백의 신속한 정상화와 재발방지법 제정을 촉구한다.
2024년, 환자와 환자 가족 그리고 국민은 무책임한 정부와 무자비한 전공의·의대교수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며 분노와 불안, 그리고 무기력에 빠졌다. 특히, 당장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는 암 환자 및 중증질환 환자와 희귀난치성질환 환자, 그리고 환자의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정부와 전공의·의대교수의 갈등이 136일째를 맞은 오늘, 계속되는 피해와 불안을 더는 참을 수 없어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직접 거리에 나섰다. 이 날씨에, 기어코 우리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든 정부와 전공의·의대교수는,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동안 우리는 정부와 전공의·의대교수 모두 잘못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의사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 찬성 여론을 앞세워 환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공의들을 몰아붙였다. 의사들은 의사 집단을 비판하는 환자들을 향해 ‘정부 탓을 해야지 왜 의사 탓을 하냐?’며 날을 세웠고, 언론은 아무 때고 전화해 ‘환자 피해 사례를 연결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아픈 사람,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때에 마음 편히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것도 피해이고, 예정된 검사나 수술이 연기되는 것도 피해이며,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을 찾았을 때 거부당하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것 역시 피해다. 심지어 오늘 이런 환자 집회가 있다는 소식에 대해, 온라인상에는 ‘환자라면서 어떻게 집회를 한다는 거냐, 나이롱환자 아니냐?’라는 비아냥거림이 댓글로 달렸다. 그런 댓글을 보아야 하는 것 역시 우리에겐 피해고, 고통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래서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암과 중증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만성질환으로 아파본 당사자이자,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곁을 지킨 환자 가족으로서, 누구도 이런 일로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수많은 ‘아픈 사람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실에, 수술실에, 병원 복도에, 진료실에 머물고 있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19일, 전공의가 집단 사직을 하자 당장 예정돼 있던 입원과 검사, 시술과 수술이 연기되거나 취소되기 시작했다. 전공의가 이탈하자마자 환자들의 치료 일정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동안 수련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공의는 서울Big5병원 의사 인력의 39%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부와 전공의·의대교수 자신들마저도, 의료현장의 이러한 상황이 문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이를 제대로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전공의는 그동안 ‘수련’을 이유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왔다.
이런 불합리함 속에서 현재의 힘든 수련과정을 미래에 위한 기회의 비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선배 의사는 우리도 그런 길을 걸어왔다며 힘들어하는 후배를 당연시하며 눈감아 왔을 것이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이 ‘후배와 제자들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사직 전공의들을 지지하고 집단휴진으로 동조하며 나섰을 때, 환자들은 깊이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 국립대병원, 공공병원이면서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을 전문적으로 보는 국내 최고 병원의 교수들이 ‘제자를 지켜야 한다’며 환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여론의 악화로 바로 며칠 뒤 ‘중증·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은 변동 없이 계속 정상 진료를 볼 것’이라고는 했지만, “환자보다 제자 먼저”라는 내식구 챙기기 마음은 어디 가지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의정갈등에서 매번 백기를 든 정부를 경험한 의사사회는 여전히 진료권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어떤 일이 있어도 아픈 사람에 대한 의료 공급이 중단되어서는 안 되며, 의료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불안을 조장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전공의·의대교수, 정부, 그리고 국회에 다음 세 가지를 촉구한다.
첫째, 환자에게 고통과 불안을 전가하는 세브란스병원·고려대병원·서울아산병원의 명분 없는 무기한 휴진을 철회하라.
둘째,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고 전공의 수련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라.
셋째, 추후 이와 유사한 의료인 집단행동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단 한시도 중단 없이 제공되도록 국회는 관련 법률을 입법하라.
위 세 가지 촉구안에 대한 수용과 이행이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오늘 보신각에 모인 환자와 환자가족 그리고 국민은 전공의·의대교수에 대해 아픈 사람에게 피해와 불안을 강요하는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행태를 지금 당장 중단할 것과, 대한민국 정부에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고 전공의 수련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과, 국회에 대해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종사자의 집단행동 재발 방지법을 신속히 입법할 것을 촉구한다.
2024년 7월 4일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전국 13개 지부), 한국환자단체연합회(소속 9개 단체), (사)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소속 80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