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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 체제 유지하던 유한양행, 회장직 신설에 논란
  • 정종호 기자
  • 등록 2024-03-15 11:14:52
  • 수정 2024-04-01 21: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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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한양행, 15일 주주총회서 정관 변경, 사측 “회사 성장에 따른 것” … 고 유일한 창업주 손녀 반발

전문경영진 체제를 유지해온 제약기업 유한양행에 회장·부회장 직제가 28년 만에 부활했다. 유한양행은 회사가 성장해온 만큼 규모에 맞는 직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회장직 신설에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유한양행은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 본사에서 열린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약 95%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회사 창립 시부터 유한양행 정관에 회장직을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 내용이 2009년 주주총회에서 삭제됐다가 이번에 되살아났다.


유한양행은 앞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하며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가 필요하고, 외부 인재 영입 시 현재 직급보다 높은 직급을 요구하는 경우에 대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의안 통과 전에 “제약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혁신신약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며 “신설에 다른 사심이나 목적이 있지 않음을 명예를 걸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주총에서는 이사가 아닌 인물도 사장·부사장으로 선임할 수 있으며 ‘대표이사 사장’은 ‘대표이사’로 변경하는 안건도 통과됐다.


앞서 유한양행에서 회장에 올랐던 사람은 창업주 유 박사와 연만희 고문 두 명 뿐이며 1996년 이후 회장직에 오른 이는 없었다. 연만희 전 회장은 1988년 유한양행 사장에 취임, 5년간 임기를 마치고 1993년에 회장에 취임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창업자의 유일한 직계 후손인 유일링씨가 미국에 체류 중인데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창업 정신을 이어갈 분이 필요해 유한양행의 최대 주주인 유한재단의 요청으로 회장직을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연 전 회장은 66세이던 1996년에 은퇴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막후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문제는 2021년 3월 정관을 변경해 이례적으로 퇴임 후 이사회 의장에 취임한 이정희 유한양행 직전 대표(73)가 이번엔 임기 연장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해 통과됐다는 점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장차 이정희 의장을 회장으로 추대하려는 물밑 작업이 정관 변경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회장 직제 부활을 앞두고 일부 유한양행 직원은 특정인이 회장직에 오르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며 반발했다. 이날 본사 앞에서는 정관 변경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 박사의 손녀이자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 이사도 회장직 신설에 반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해 주총에 참석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정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유한양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회사와 할아버지의 정신을 관찰하고 지지하기 위해 여기 왔다”고 밝혔다.


유 이사는 앞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할아버지께서는 회사 경영에서 견제와 균형을 중요시하셨다”며 “회장직이 만들어지면 의사결정 구조가 늘어나고 권력이 집중돼 유한양행의 창립 정신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직제가 마련되면 회장직에 오를 인물로 거론됐던 이 의장은 “저는 (회장) 안 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2015년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해 6년간 회사를 이끈 뒤 지금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1926년 설럽된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며 이사회를 중심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1980년대 중반부터 독특한 CEO 승계 방식을 만들었다. 대표이사 사장은 3년 중임만 허용하는 제도다. 연만희 전 회장만 예외였다. 대표이사는 물론 임원의 3년 중임제가 정착됐다. 하지만 이번에 금기가 깨졌다.


이날 주주총회에선 조욱제 대표가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며 연임에 성공했다. 김열홍 R&D 총괄 사장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이정희 이사회 의장은 기타비상무 이사로 재선임됐다. 사외이사(감사위원 겸임)로는 신영재 변호사, 김준철 회계사가 재선임됐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고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나며 전 재산을 기증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유한재단은 15.77%, 유한학원은 7.7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유한양행은 이날 주총에서 지난해 매출액 별도 기준 1조8090억원(전년도 1조7263억원), 영업이익 572억원(411억원), 당기순이익 935억원(1302억원)을 보고했다. 또 보통주 1주당 배당금 450원, 우선주 460원의 현금배당(총 321억)을 실시하기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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