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가지 계열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다제내성’ 세균이 증가하면서 페니실린 이전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감염병 대란을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화이자의 신규 다제내성 항생제 ‘자비쎄프타주’(ZAVICEFTA 성분명 세프타지딤/아비박탐, ceftazidime/avibactam)가 최근 건강보헙 급여 목록에 등재됐다.
다제내성 세균은 항생제 치료를 어렵게 만들고 중증 감염 환자 치료 경과에 악영향을 미친다.특히 녹농균 등 그람음성균은 요로감염, 복강감염, 폐렴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다제내성균에 의한 감염은 환자의 사망 위험을 높이고, 질병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킨다.
자비쎄프타는 항녹농균 효과를 보이는 ‘세프타지딤’과 베타락탐 분해효소의 기능을 억제해 항균력을 유지하는 ‘아비박탐’의 복합제로, 2022년 12월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Carbapenem-Resistant Enterobacteriaceae, CRE) 감염에 활성이 있는 유일한 항생제다.
자비쎄프타는 2015년 2월 25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복잡성 복강내 감염(complicated intra-abdominal infection, cIAI) 및 신우신염을 포함한 복잡성 요로 감염(complicated urinary tract infection, cUTI)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미국 등 주요시장에서 브랜드명은 ‘아비카즈’(Avycaz)이며 그 외 지역 브랜드명은 ‘자비쎄프타’(Zavicefta)다.
이전까지 CRE 감염 환자에게 사용 가능한 항생제가 마땅치 않았는데 국내서는 높은 보험약가와 실질적 유효성 문제로 도입이 지연돼왔다. 적잖은 세월의 논란을 겪은 후 지난 2월 1일부터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됐다. 책정된 보험약가는 2g/0.5g 함유 바이알 당 8만1667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복잡성 복강 내 감염(Complicated intra-abdominal infections), △복잡성 요로감염(Complicated urinary tract infections), △원내 감염 폐렴(Hospital-acquired and ventilator-acquired pneumonia)에서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실패한 경우 △다제내성 녹농균이나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입증된 경우에 급여를 인정하는 적용기준을 신설, 고시했다.
인류는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해 1942년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감염병의 사망 위험이 극적으로 감소하면서 평균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제내성 세균이 진화하고 빠르게 확산하면서 내성으로 조만간 아무런 항생제도 듣지 않는 ‘항생제 무용(無用)’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경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본에 비해 내성이 워낙 빠르게 발생하기 때문에, 제약사들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기피하는 상황이다. 그 결과 최근 항생제 최후의 보루라 여겨지던 ‘카바페넴 내성’ 환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급감염병인 CRE 감염 환자가 2018년 1만1954명에서 2022년 3만548명으로 5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CRE 감염으로 사망한 환자도 2018년 226명에서 2022년 581명으로 급증했다. 항생제 내성균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 중 상당수가 다른 질환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만큼, 실제 CRE로 인한 사망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게다가 지난 3년여의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감염병 전문가들이 코로나19 대응에 투입되면서 항생제 관리가 느슨해졌고, 더욱이 전국에서 살포된 소독약에도 항생제가 포함돼 항생제 내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이에 한국화이자제약은 21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인 이동건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와 윤영경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학회 보험이사)를 초청,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국내 다제내성균 치료의 미충족 수요와 자비쎄프타의 임상적 가치를 조명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항생제 내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다제내성이 생기면 단순히 치료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망률도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의료현장에서 CRE 감염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두렵게 느껴질 정도”라고 밝혔다.
CRE 감염과 관련, 국내서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다. 1960년대에 개발된 콜리스틴이라는 약제로 대응해왔으나 콜리스틴은 심각한 신독성으로 인해 해외에서는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교수는 “CRE가 확인되면 환자나 보호자에게 미리 콜리스틴이라는 약의 부작용과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쓸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윤 교수는 “콜리스틴을 1주일 정도 사용하면 신기능이 악화되며, 환자에 따라서는 인공호흡기 치료까지 필요하게 된다”면서 “남들이 쓰지 말라는 약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CRE 극복이 전세계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자비쎄프타는 RECLAIM, RECAPTURE, REPRISE, REPROVE 등의 3상 연구를 바탕으로 복잡성 복강내 감염, 복잡성 요로 감염, 인공호흡기 관련 폐렴을 포함한 원내 감염 폐렴에서 기존 표준치료제 대비 비열등성과 세프타지딤 단일제제와 유사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입증했다.
복잡성 복강내 감염 - RECLAIM 연구
복잡성 복강내 감염으로 입원한 성인 환자 10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자비쎄프타 투여군의 임상 치유율은 82.5%(429/520명)로 기존 치료제인 메로페넴 투여군 84.9%(444/523명)과의 비열등성을 확인했다.
복잡성 요로 감염 - RECAPTURE 연구
그람음성균에 의한 신우신염을 포함한 복잡성 요로 감염으로 입원한 성인 환자 103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3상 결과, 자비쎄프타 투여군의 임상 치유율은 90.3%(355/393)로 기존 치료제인 도리페넴 투여군 90.4%(377/417명)과 유사한 임상적 유효성을 확인했다.
복잡성 복강내 감염 또는 복잡성 요로 감염 - REPRISE 연구
그람음성균에 의한 복잡성 복강내 감염 또는 복잡성 요로 감염 성인 환자 33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3상 결과, 자비쎄프타 투여군의 임상 치유율은 91%로, 사용 가능한 최적의 치료요법 투여군 91%과 유사했다.
원내 감염 폐렴 치료 - REPROVE 연구
그람음성균에 의한 인공호흡기 관련 폐렴을 포함한 원내 폐렴이 있는 성인 환자 8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3상 연구 결과, 자비쎄프타 투여군의 임상 치유율은 68.8%(245/356)로, 메로페넴 투여군(73.0%, 270/370)과의 비열등성을 확인했다.
자비쎄프타는 특히 CRE 감염 환자와 면역저하자가 포함된 다수의 리얼 월드(Real-World) 연구에서는 기존의 표준치료법보다 우월한 치료 효과를 보고했다.
이에 미국 감염내과학회(IDSA)는 2022년 가이드라인에서 자비쎄프타를 CRE 또는 치료가 어려운 카르바페넴 내성 녹농균(difficult-to-treat Pseudomonas aeruginosa, DTR-PAE)으로 인한 신우신염을 포함, 복잡성 요로 감염에 선호하는 치료 옵션으로 권고했다.
유럽 임상미생물학·감염질환학회(ESCMID) 역시 2022년 가이드라인에서 시험관실험(In-vitro)에서 활성이 있는 경우 CRE로 인한 중증 감염 환자에 대한 치료법으로 자비쎄프타를 권고했다.
이 교수는 “미국 정부는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해 학회와 함께 항생제 개발을 지원해왔으며, 덕분에 최근 10년 사이 다수의 항생제가 개발됐다”면서 “이 가운데 하나가 자비쎄프타”라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항생제 하나에 급여가 적용돼 그나마 다행”이라며 “앞으로 이 약이 끝이 아니라 더 들어와야 하며,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약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교수는 “자비쎄프타는 카바페넴 내성균을 상당히 광범위하게 억제한다”며 “자비쎄프타 급여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2022년 한국MSD의 ‘저박사주’(성분명 세프톨로잔/타조박탐)에 이어 자비쎄프타가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되면서 임상 현장의 갈증이 다소 해소됐지만 국내 신규 항생제 도입은 여전히 부진하다.
실제로 2014년 이후 미국에서는 15개, 유럽에서는 9개의 신규 항생제가 허가됐으나, 국내서는 4개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어렵게 도입한 신규 항생제들도 머지않아 내성에 노출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내성을 오래 억제할 수 있도록 전문가 중심의 관리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자비쎄프타에 급여가 적용됐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많이 썼던 약”이라며 “사용 후 약 10% 내외에서 내성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의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약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감수성 평가에 대한 급여를 인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항생제 효과를 극대화하고 그 내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항생제를 △적절한 환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정량을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