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개월 이내에 병의원에서 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는 모든 질환에 대해 같은 병원의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야간이나 휴일에는 초진 환자라도 나이에 관계없이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1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보완 방안을 15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비대면진료는 의사가 전화나 화상 통화를 활용해 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고 진료하는 방식이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유행이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한시적으로 허용돼왔다가, 올해 5월 정부가 이를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대로 ‘경계’로 낮춤에 따라 한시적 허용이 금지됐다. 이어 올해 6월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상당수 의료소비자가 비대면진료를 희망하고, 이를 산업화하려는 원격의료산업계의 줄기찬 요구에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비대면진료 기준을 대폭 완화해 허용 대상자를 넓혔다. 기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은 재진 환자 중심으로 '동일 질환'으로 의료기관을 다시 방문했을 때를 재진으로 보고 비대면진료를 허용해왔는데, 이날 발표한 보완방안에는 동일 질환 조건을 삭제하고 모든 질환으로 넓혔다.
구체적으로 그동안에는 같은 병·의원에서 30일 이내(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 같은 질환에 대해 진료받은 경우에만 비대면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6개월 이내 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는 질환에 관계없이 같은 의료기관의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오후 6시 이후 야간이나 휴일에는 연령 제한 없이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18세 미만 소아나 청소년의 경우 처방이 아닌 상담에 한해 초진 환자의 비대면진료를 허용했다. 또 그동안에는 대면진료 유경험자에게만 허용됐는데 앞으로는 진료이력 없이도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 즉 초진도 가능하므로 제약이 확 풀렸다. 게다가 앞으로는 약 처방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처방한 의약품은 약국에서 직접 받아야 한다.
여기에 초진부터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취약지 범위에 ‘응급의료 취약지역(시·군·구 98곳)을 추가해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현재는 섬이나 벽지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 감염병 확진자만 비대면진료를 통한 초진을 허용하고 있다. 의료 취약지는 지역 응급의료센터와 권역 응급의료센터에 각각 30분, 1시간 이내 도착하는 것이 불가능한 인구가 30%를 넘는 곳이다.
사후 피임약에 대해서는 비대면진료 후 처방을 제한하기로 했다. 고용량 호르몬을 포함해 부작용이 크고, 정확한 용법에 따라 복용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탈모나 여드름, 다이어트 의약품은 지금처럼 비대면으로 처방받을 수 있지만, 사례 관리 등을 통해 제한 여부를 지속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접근성 높였지만 안전성 우려 커져 … 의협 ‘환자 편의만 고려한 졸속, 즉각 철회해야’
… 약 배달은 막혀 그나마 ‘브레이크’ 역할
이에 대해 의사들은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와 비교해 동등한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돼야 하는데 이번에 너무 비대면진료 대상을 확대해 환자의 안전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일 반박 보도자료를 내고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자문단과의 협의를 통해, 향후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현황과 개선 방안을 논의할 것을 공언한 바 있음에도,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는 현재와 같은 방안을 졸속으로 마련하여 의료현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번 방안은 실질적으로 비대면진료에 있어서 초진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방안과 다름이 없다. 이번 대책이 의료의 질적 향상과 환자의 건강권 보호가 아닌 단순히 편의성만을 유일한 근거로 삼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특히 휴일·야간 초진 대상으로 확대한 응급의료 환자의 경우, 오히려 대면 진료를 통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며, 비대면진료의 예외적 허용 대상인 의료취약지역 확대(응급의료 취약지 98개 시군구 추가)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휴일·야간에 긴급한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즉각적으로 약을 수령할 수 없음에도 비대면진료만 무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과 다름없으므로, 이는 편의적으로 병원에 내원하여 진료받지 않고 단순 약처방만 받고자하는 부적절한 의료 이용의 행태를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의협의 김이연 대변인은 “비대면진료의 편의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의료행위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라는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편의성이 진료의 최우선 가치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특히 재진 판단 기준에 '동일 질환'을 삭제한 것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김 대변인은 “한 달 전에 감기로 왔던 환자가 이번에 외상으로 온다고 해서 그걸 비대면진료가 가능한 상황으로 볼 수 있느냐”며 “재진은 진료의 연속성이 있을 때 허용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의협은 “이번 방안은 실질적으로 비대면진료에 있어서 초진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방안과 다름없다”며 “비대면진료 확대 방안을 즉시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환자단체 “사실상 전면허용…완화 바람직하지 않아” … 원격의료플랫폼 업계 … “확대 공감”
환자단체는 정부의 의료 접근성 제고 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검증을 위한' 시범사업에서부터 기준이 대폭 풀리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의 보완방안은 사실상 비대면진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조치로 평가된다”며 “정부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할 때 재진과 예외적 초진 허용이라는 원칙을 강조했으나 이번 발표에서 이러한 원칙이 대폭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대면진료는 의약계에서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고, 상업화로 인한 불필요한 의료와 의약품 오남용 등의 논란도 남아있다”며 “이를 검증하는 단계의 시범사업에서 처음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한 원칙을 정부가 계속 완화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관계자는 “비대면진료의 효용성, 비대면진료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며 “다만 이 효용성이 실제로 확장되려면 약 배송에 대한 규제 문제가 같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면진료에 따른 약 배송은 현재 막혀 있다. 약사법에 약은 약국에서 환자가 직접 수령해야 한다고 돼 있고, 현 국회에는 약사 출신 의원들이 많은 점, 약물 오남용 우려가 크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고, 비대면진료를 활성화하려는 현 정부 및 여당에 맞서 야당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비록 시범사업이되 비대면진료의 야간 휴일 초진 및 재진 전면 허용, 동일 의료기관에서의 6개월 이내 모든 질환에 대한 비대면진료의 재진 허용 같은 큰 물꼬가 터져 의사 및 약사 단체로는 업권 유지에 비상등이 켜졌다. 물론 이른 바 ‘배달약국’(의약품 택배)이 허용되지 않아 비대면진료 활성화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겠지만 갈수록 편의성을 중시하는 세태, 특히 젊은층의 비대면진료 선호 등으로 인해 언젠가는 비대면진료가 전면 허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총선 후 현 여당이 승리한다면 이런 물결이 거세실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의료산업계의 비대면진료 개척을 위한 창과 이를 방어하려는 의사협회, 약사회, 일부 보수적 시민·환자단체의 방패 싸움에서 과연 방패가 창을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