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병기·간질환 유무와 관계없이 간암을 간편하고 효과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됐다. 유수종·조은주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및 김영준 연세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팀(김시초·김다원 연구원)은 간암에서만 나타나는 DNA 메틸화 바이오마커 2ㅏ지를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량 분석하는 검사법을 설계해 혈액 샘플 726개를 바탕으로 검사의 정확도를 확인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혈액검사만으로 간암을 조기에 진단 또는 간암 진행상황을 간편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됐다.
전체 암종에서 국내 7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간암은 환자 10명 중 6명이 5년 이내 사망할 만큼 예후가 나쁘다. 예방 및 모니터링을 위해 간경변, 간염바이러스 등 위험인자를 보유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감시검사(모니터링)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 감시검사는 고위험군이 보유한 다양한 간질환과 실제 간암을 정확히 구별하기 어렵다. 게다가 간암은 발병 원인이 다양하고 인종마다 양상이 달라 기존 감시검사 방법으로는 간암 발생 여부를 빠르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간암 환자를 비롯해 간암 고위험군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감시검사 방법을 찾기 위해 간암에서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DNA 메틸화 마커’에 주목했다.
DNA 메틸화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후성유전학 현상의 일종으로, 암세포의 영향으로 특정 염기서열에 DNA 메틸화가 일어나면 이를 바이오마커로 삼아 암을 진단하는 데 활용한다.
연구팀은 다양한 인종·병기로 구성된 간암 환자 코호트를 분석한 결과, 2가지 DNA(RNF135, LDHB)의 메틸화 수준이 특이적으로 높은 것을 확인했다. 이에 이들 DNA의 메틸화 수준을 점수화하는 검사 방법을 설계했다. 소량의 유전자만으로 신속하게 질환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PCR 기법을 활용해 편의를 높였다.
이 검사법을 활용해 일반인 202명, 간암 위험군 211명, 초기 간암환자 170명, 말기 간암환자 143명으로 구성된 총 726개의 혈액 샘플을 분석한 결과, 57%의 민감도로 간암 양성을 판별해냈다. 이는 혈중 알파태아단백(α-fetoprotein. AFP) 농도를 측정하는 기존 혈액검사의 민감도(45%)보다 높았다.
나아가 혈액검사에서 메틸화 수준과 알파태아단백 농도를 함께 분석한 결과, 10명 중 7명꼴로 간암 양성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DNA 메틸화 마커에 기반한 간암 진단 방법이 기존 감시검사의 임상 정확도를 보완할 뿐 아니라, 인종과 병기마다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간암 진단에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연구팀의 검사 방법은 간암 진행에 따라 간암 관련 DNA의 양 변화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이로써 간암 성장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환자마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선택하는 데 유리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유수종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간암 고위험군에서 간암 발생 여부를 간편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어 뜻깊다”고 밝혔다.
김영준 교수는 “후속 연구를 통해 환자의 임상 데이터 및 혈액 내 메틸화 마커의 미세한 양 변화 등을 고려한 AI 기반 간암 발생 위험도 예측 모델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았으며 국제학술지 ‘BMC 분자암’(BMC Molecular Cancer, IF=5.74)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