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지난 5월 30일 종료됐고 이어 6월 1일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등 관련 의약단체는 21일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자문단’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시스템 개선 방안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지침 위반사례 관리방안을 논의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8일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오는 22일 예산결산심사소위, 23일 제2법안심사소위원회, 24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25일 전체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중 24일 제1이 법안소위에서 비대면진료와 관련한 정부안을 놓고 집중 논의한다.
보건복지부는 우선 이달 31일 종료되는 3개월의 시범사업 계도기간에 즈음해 오는 9월 1일부터 불법 비대면진료에 대한 근절 대책 강화, 처방 제한 의약품 확대 등을 적극 시행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 계도기간 중 △초진이 아닌 환자 진료 △재택수령 대상자가 아닌 환자에게 약 배송 △불법 대리처방 등 시범사업 지침 및 의료법 위반 의심 사례들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범사업 지침을 위반해 비대면진료를 실시하면 의료법, 약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계도기간 종료 후에는 지침 위반에 대해 보험급여 삭감, 행정지도·처분 등으로 적극 관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이 초진 대상 환자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진자 자격 조회’와 연계해서 초진 대상자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아울러 다음 달 1일부터 복지부 콜센터에 ‘불법 비대면진료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한다. 환자, 의료인, 약사 등이 비대면진료 지침을 위반하는 사례를 인지한 경우 복지부 콜센터(129)에 신고하면 된다. 마약류 및 오남용 우려로 처방을 제한하는 의약품은 추가할 예정이다.
시범사업 계도기간 종료와 법제화를 앞두고 비대면진료를 둘러싼 각계 논란도 다시 불붙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의료 플랫폼의 과대광고와 초진 환자 유도 등의 불법행위, 의약품 오남용 사례 등 수많은 부작용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소아청소년과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초진은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중개 플랫폼 불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비대면진료로 인해 비급여 의약품이 오남용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참여하는 무상의료운동본부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4개 환자단체는 “영리 플랫폼을 허용해 기업 돈벌이를 돕고 의료를 상업화시킨다는 게 비대면진료의 핵심 문제”라며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더라도 정부가 공공플랫폼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진료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 의견도 일부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대상 환자로는 ‘재진 환자’, 실시기관은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국한했다. 다만 △수술 후 관리 △ 희귀질환 △재외국민, 교정시설 재소자 중 의원급 시설로는 비대면이 곤란한 진료 등에 대해서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비대면 진료 환자에게 주기적 대면진료 실시 의무를 부여하고 비대면만 전담하는 형태로 운영을 금지키로 했다. 또 마약류 등 처방금지 등을 강제키로 했다.
비대면 진료 중개업/중개매체(앱)에 대한 정의도 정리했다. 중개매체는 의료인 등이 진료 요청 확인, 진료실시, 처방전 전달을 위해 사용되는 인터넷 매체로 규정했다. 중개업자는 중개매체를 제공·운영하려는 자로 정의했다.
비대면 진료 중개매체를 운영하는 중개업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신고를 통해 운영하도록 하되, 복지부는 형식적 요건에 맞으면 수리하도록 했다. 중개업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한 중개매체 제공·운영기준을 따르도록 했다.
업무과정에서 알게 된 의료인, 의료기관 환자의 정보 누설 또는 부당 목적 수집·이용을 금지하도록 했다. 환자 유인·알선 및 의료기관과 약국 간 담합 유도를 금지하도록 했다. 중개업자가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규정도 뒀다.
또 의료인의 진료에 개입하거나 의료 오·남용을 조장하는 등 의료인의 전문성과 환자의 의사를 저해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도록 했다.
이번 정부안에서도 약 배송 허용이 빠졌다. 이에 대해 지난 7월 조병욱 바른의료연구소 연구위원은 한 토론회에서 “진료는 비대면으로 받고 약은 약국 가서 받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 회장(닥터나우 대표)는 “비대면진료가 일부 걸음을 뗀 상황에서 약은 대면으로 받으라는 게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복약지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복약지도 또한 영상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는 2020년 3월 코로나19 유행이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한시적으로 허용돼왔다. 하지만 지난 5월 정부가 이를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대로 ‘경계’로 낮춤에 따라 한시적 허용이 금지됐다. 3년 남짓한 허용 기간에 1300만명(연인원)이 비대면 진료를 이용했다. 퇴근 후인 20시부터 0시까지 비용한 비율이 16%를 넘었고, 심야시간인 0~7시에도 10%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은 1997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조지아주, 텍사스주 등 일부 주는 초진의 비대면 진료를 제한하고 있지만 대다수 주는 특별한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제도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도입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게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의 주장이다.
의료계는 처음에는 비대면 진료를 전면 반대했다가 올 들어서는 차츰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허용 필요성을 표출하고 있다. 다만 소아청소년과 진료나 초진 환자 진료는 비대면이 허용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는 비대면 진료시 오진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또 초진의 비대면 진료는 국민건강 안전성 훼손, 비필수 의약품(탈모증 여드름 등의 치료제)의 오남용이 초래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비대면 진료앱 이용자의 96%가 경증 초진환자라고 주장하는 반면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진료를 제외하면 재진이 80%, 초진이 20%라는 데이터를 내놓고 공박 중이다.
산업계와 이에 동조하는 보수언론들은 비대면 진료 활성화를 적극 부추기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비대면진료를 포함한 원격의료산업, 디지털의료를 키워야 한다는 논거다. 반대로 보건의료계와 의료 오남용을 우려하는 시민단체는 아주 제한적으로 비대면 진료의 문호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이 통과될지, 논의도 못하고 좌절될지, 대폭 수정될지 알 수 없다. 다만 영리의료를 부정하는 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이번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는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방안으로 입법이 되거나, 논란을 피하기 위해 다음 국회로 넘어갈 공산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