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 치료에 쓰이는 '삽입형 제세동기'의 단점 중 하나인 극심한 통증을 막을 수 있는 신기술이 국내 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이승표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와 서울대 공대 김대형(IBS 나노입자연구단 부연구단장)·현택환(IBS 나노입자연구단장) 교수 공동 연구팀은 부정맥 발생 부위를 찾아내 큰 충격 없이도 치료할 수 있는 '다채널 전기 자극 어레이'를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부정맥은 심장에서 생성하는 전기 신호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으로, 이 중에서도 심실세동과 심실빈맥은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이런 환자는 예기치 못한 악성 심실 부정맥이 발생하는 즉시 치료해야 하므로 제세동기를 체내에 이식해야 했다.
하지만 삽입형 제세동기는 부정맥이 시작된 부위만 자극하지 않고 심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한 전기충격을 발생시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전기적인 충격으로 심장 박동을 정상화하는 것이지만, 이때의 통증은 도끼로 찍히는 느낌에 비견될 정도다. 또 이런 통증이 심장의 정상적인 수축 기능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어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연구팀은 부정맥의 시작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고, 해당 부분에만 전기 자극을 적게 가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나노 소재 기반 다채널 전기 자극 어레이를 제작했다. 이 어레이는 8개 또는 32개의 전극 채널이 심장의 각 부위에서 전기 신호를 측정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부정맥이 시작된 부위와 전파 경로 등을 알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토끼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는 이 장비로 부정맥의 시작 지점을 정확히 진단하는 효과가 관찰됐다. 또 심장에서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전기 자극(역치하 자극)을 연속적으로 발생시켜 부정맥 전기 신호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추가적인 악성 심실 부정맥의 발생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약한 전기 자극을 가한 토끼와 그렇지 않은 토끼를 대상으로 심근경색을 유도한 결과, 부정맥 발생 비율은 예방군과 대조군이 각각 17%, 55%로 대조군에서 3배 이상 높았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을 실제 부정맥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성능을 향상하고, 부정맥 진단·치료·예방의 자동화 알고리즘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승표 교수는 "악성 심실 부정맥은 심부전 환자에게 동반되는 위험한 합병증 중 하나로, 이를 치료하기 위한 강한 제세동 충격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이 많다"면서 "큰 충격 없이도 악성 심실 부정맥을 '조용하게'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과학진흥협회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IF=14.98)’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