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I한국의학연구소 연구위원회 신상엽 수석상임연구위원(감염내과 전문의, 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원숭이두창 국내 유행 대비를 위한 제언’을 담은 건강정보를 10일 내놓았다.
신상엽 위원 “원숭이두창(monkeypox, 일명 엠폭스, Mpox)은 국내에 충분한 치료제와 백신이 구비돼 있어 조기에 진단되면 위중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성관계 파트너, 가족, 의료진 등을 통한 지역사회 전파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여행력이 없더라도 3주 이내 성접촉력이 있으면서 서혜부(사타구니) 림프절 비대가 동반되고 성기 및 항문 부위에 수포성 발진이 발생하는 경우 반드시 원숭이두창을 의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위원은 특히 ”단기적으로는 국가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에 원숭이두창을 포함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원숭이두창의 토착화 가능성을 대비해 국내 개발 백신 및 치료제 인프라 구축에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022년부터 8만6838명 엠폭스 감염, 112명 사망
원숭이두창은 1958년 실험실 사육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중앙 및 서부 아프리카의 풍토병으로 발생해왔다. 증상은 두창(천연두)과 비슷했지만 치명률은 3~6%로 두창보다 낮았으며, 대부분의 감염은 바이러스를 보유한 설치류, 영장류 등의 동물과 사람이 접촉했을 때 이뤄졌고 사람 간 전파는 가능하지만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2022년 5월 이후 유럽과 북남미를 중심으로 동물이 매개되지 않은 주로 남성 간 성접촉(MSM)을 통한 원숭이두창 환자 수가 급증했고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 선언이 내려졌다.
WHO에 의하면 2022년부터 2023년 4월 4일까지 전세계 110개국에서 8만6838명의 원숭이두창 환자가 보고됐고 112명이 사망했다. 각국 방역당국의 노력으로 전세계 확진자 수는 2022년 8월 정점을 찍고 꾸준히 감소 추세이며 치명률도 1% 미만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고 향후 원숭이두창 유행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대부분 2~4주 앓고 나면 자연 치유되다보니 사회적 낙인 등을 우려해 진단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하면서 여성, 임신부, 소아, 고령층 환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또 상대적으로 유행이 심하지 않았던 아시아 지역도 꾸준히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대만의 경우 최근 지역사회 감염이 보고됐다. 게다가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은 원숭이두창 진단 시스템 미비로 애초에 정확한 유행 파악이 어렵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향후 원숭이두창은 종식되지 않고 사람 간 전파되는 일반적인 성병과 같이 전세계에 토착화돼 계속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도 2022년 6월 22일 첫 원숭이두창 환자가 확인된 이후 최근까지 6명의 원숭이두창 환자가 보고됐다. 5번째 환자까지는 해외여행 시 감염되거나 환자를 검사하던 의료진이 감염된 것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아니었지만 지난 7일 확인된 6번째 환자의 경우 최근 3개월 이내 해외 여행력이 없어 국내 지역사회 감염이 의심되는 첫 사례로 보인다.
서혜부 림프절 비대 & 성기·항문의 수포성 발진 발견되면 의심
전세계적으로 보고된 원숭이두창 환자의 95% 이상이 남성이고 확진자의 상당수가 HIV 감염자로 확인되고 있다.
원숭이두창의 증상은 발열, 두통, 발진, 림프절비대 등으로 초기에는 수두, 홍역, 일반 성병과의 감별이 어렵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원숭이두창 발생 지역에서 3주 이내 성접촉력이 있으면서 서혜부(사타구니) 림프절 비대가 동반되고 성기 및 항문 부위에 수포성 발진이 발생하는 경우는 반드시 원숭이두창을 의심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지역사회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해외 여행력이 없더라도 원숭이두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단에 임해야 한다.
조기진단 후 지역사회 확산 막아야
원숭이두창은 대부분 입원 치료가 필요하며, HIV 환자나 면역저하자의 경우에는 드물지만 사망할 수 있다. 진단이 늦어지면 자신도 위험하지만 가족과 의료진도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 원숭이두창은 성접촉 등의 밀접한 피부 접촉을 통해 주로 감염되지만, 구강에 물집이 있는 환자가 기침하면 타인에게 호흡기 비말 전파가 가능하다. 환자의 피부 병변을 만지거나 환자의 의복이나 침구류를 접촉하는 의료진과 가족도 감염될 수 있다.
원숭이두창은 국내에 충분한 치료제와 백신이 구비돼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되면 위중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성관계 파트너, 가족, 의료진 전파로 인한 지역사회 유행도 차단할 수 있다.
의심 증상 나타나면 1339 신고 … 하수기반 감시 대상에 넣어야
3주 이내 성접촉력 등 위험 요인이 있으면서 원숭이두창 의심 증상이 있으면 질병관리청 콜센터(1339)에 연락해 안내를 받도록 한다.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현재 원숭이두창을 진단할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여행력이 없더라도 원숭이두창의 최장 잠복기인 3주 이내 성접촉이 있었고, 성기 및 항문 부위 수포성 발진과 서혜부(사타구니) 림프절 비대가 동반되면 적극적으로 방역 당국에 신고해 확진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에 확보돼 있는 3세대 두창백신 ‘진네오스’는 최근 발표된 원숭이두창 고위험군 대상 연구들을 종합하면 단 1회 접종만으로도 78~79% 정도의 예방효과가 확인됐다.
국내 원숭이두창 환자가 아직 적은 상황에서 백신의 안전성과 비용 효과성을 고려했을 때 일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고위험군 대상의 사전 접종보다는 국내 방역 당국이 적용하고 있는 원숭이두창 환자 접촉자 중심의 링백시네이션(포위접종, Ring vaccination) 전략이 아직은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현재 원숭이두창에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는 고가이며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향후 원숭이두창이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토착화되는 경우 백신과 치료제 수요가 더 늘어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국산 원숭이두창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 발표된 WHO의 원숭이두창 감시 지침에는 하수 기반 감시 체계(Wastewater-based Surveillance)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수 기반 감시 체계는 지역사회 내 코로나19, 폴리오, 장티푸스 등의 감염병 발생 및 불법 약물, 항균제 내성 등을 선제적으로 감시 및 대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미 미국과 유럽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노로 바이러스 등에 대한 국가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KOWAS, KOrea WAstewater Surveillance) 사업이 진행 중이다. 향후 원숭이두창도 국가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 대상에 포함해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