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개원의 단체인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저출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폐과'를 선언했다.
소청과의사회는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현택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상복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참석했다.
소아과 의사들은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이 28% 줄어들었고, 최근 5년 동안 소청과 의원 662개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며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 중이어서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호소했다.
임 회장은 “오늘 한없이 참담한 심경으로 이 자리에 섰다. 도저히 하고 싶어도 이 나라에서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며 “지금 이 상태로는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나마 소청과를 지탱하던 예방접종은 정치인들의 마구잡이 선심 속에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에 편입됐다”며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사업은 시행비를 14년째 동결하거나 100원 단위로 올려서 유일한 소아청소년 비급여였던 예방접종이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올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은 소청과에서 받던 가격의 40%만 받게 질병관리청이 강제화하고 있다는 게 임 회장의 설명이다.
특히 임 회장은 소청과 전문의 과정을 전공하면 (6년제) 의대만 나온 의사보다 수입이 적다고 토로했다. 이는 “동네 소아과뿐만 아니라 대형병원의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마취과, 소아안과, 소아응급의학과 등 소아를 다루는 전 의료영역의 의사에게 해당되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소청과 의사들에게 걸핏하면 실형과 거액을 배상하라고 선고하고, 일부 의료 전문 변호사는 하이에나처럼 이길 수도 없는 소송을 환자에게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일부 보호자들은 중이염이 있는지 보려는 의사한테 과실 치상으로 형사고소를 했고, 아이 치료 하느라 다치지 않게 잡은 것을 두고 돈을 물어내라고 협박하고 있다”며 “소청과 의사들과 의료진들에게 조금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언을 하고, 인터넷에 악성 글과 댓글을 달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임 회장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기획재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을 속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 2월 윤 대통령은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국가의 우선적 책무 가운데서도 최우선 책무’, ‘의사가 소아과를 기피하는 건 정부 정책 잘못’, ‘관련 부처는 필요한 어떤 재원도 아끼지 말고 지원하라’는 발언을 했고, 3월 28일 저출산위원회 회의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가 아이들을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믿음과 신뢰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과감한 대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재정을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임 회장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귀하고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셨고, 시원시원하고 한 번 결심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생각한다”며 “막상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복지부는 무너진 소청과 의료 인프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무너뜨리는 정책들과 미흡하기 그지없는 정책들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소청과의사회는 복지부가 마련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소아암 진료체계 구축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확충 △달빛어린이병원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 추진 △심층상담교육 시범사업 △소아 입원진료 가산 확대 △의료인력 운영 혁신 △적정 의료인력 양성 지원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의 경우, 중증소아 단기 입원 서비스만 빼고 소청과 대책이라기보다는 소아재활의학과 대책으로, 이 역시 중요하지만 가장 큰 소청과에 대한 대책이라 보기 어렵다”며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현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청과 의사 인력 공백으로 시스템이 안 돌아가는 것인데, 엉뚱하게 시설확충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고 말했다.
또 “달빛어린이병원은 이미 6년간 시행해서 실패한 정책의 재탕에 확대 재생산일 뿐이고,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은 동일한 증상으로 내원해도 고려해야 할 많은 다른 질환들이 있고 대면 진료조차 오진의 가능성이 있는데 이런 소아질환 특성과 어려움을 무시한 채 전화를 통해 증상을 상담하고 처치를 안내하는 것은 정신 나간 발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리고 “정부의 적정 의료인력 양성 지원 대책은 아이들 생명을 위해 돈을 쓸 생각이 없고, 의대 정원을 늘리면 열악한 소청과라도 할 수 없이 전공하지 않겠냐는 정책을 포장지만 그럴 듯하게 감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조차 아이들이 숨져가고, 오늘 밤에도 전국의 아이들은 치료 받을 곳이 없어서 길바닥을 헤매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 질병청, 기재부가 대통령을 속이면서 아이들을 살리는 대책이 아닌 이에 반하는 대책들만 양산하고 있다면 소청과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데 소청과 의사들은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폐과 선언과 관련, “앞으로 소청과 의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고 ‘노키즈 존’에 해당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라며 “소청과의사회는 소청과 의사들이 다른 일(다른 진료과)에 종사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할 수 있는 교육센터를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인 적성에 맞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신청을 받을 것이고, 아이들을 보지 않고 어른들만 보면서 충분히 병원 운영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진료를 바꿀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이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1년 정도 걸릴 거라 본다. 대략 90%의 회원들이 적극 동조 내지 심정적 동조를 하고 있고, 아무리 적어도 반 이상은 따라올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국민들의 소아의료 이용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상황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반응했다. 복지부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추가 및 응급의료기관의 소아진료기능 강화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확충 △소아 입원료 인상 및 연령 가산 등 1분기 이행점검 결과, 16개 주요과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야간·휴일의 대면 진료 확대를 위한 보상 강화방안 등은 현장과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필수의료 분야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도록 의정협의 논의도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발표 후 이행상황을 매월 점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분기별 이행점검 결과를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의료현장과 소통하면서,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소아과 개원의들의 폐과 선언은 대학병원 등에 종사하는 소아과학회와 합일된 방향은 아니고 경영난에 빠진 개원의들의 분노의 분출이자 ‘돌출 행위’로 관측된다. 소아과를 없애는 것은 의료법을 개정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소아과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와 함께 이른바 필수 진료과목이다. 현행 의료법 3조 3항에 따르면 종합병원은 내과·일반외과·소아과·산부인과·진단방사선과·마취과, 임상병리과 또는 해부병리과, 정신과, 치과 등 9개 필수진료과목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정부 말대로 소아과 진료의 수가 인상 등이 현장감 있게 속도 있게 전개돼 소아과 개원의들이 불만이 상당 부분 누그러뜨리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