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 사이에서 안면홍조를 우스갯소리로 술에 취해 붉게 달아오른 것 같은 모습을 이르러 술톤이라고 부른다. 정작 당사자들은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부끄럽거나 화가 난 상태가 아님에도 시시때때로 붉어지는 얼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듯 안면홍조는 피부가 갑자기 붉게 변하면서 열감이 나타나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증상을 말한다.
50대 여성 이모 씨는 최근 얼굴이 붉어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처음엔 기록적인 폭염과 뜨거운 햇빛으로 피부가 타서 생긴 증상이라며 가볍게 생각했다. 더위가 조금씩 가시면서 피부도 돌아올 것으로 믿었지만 홍조는 여전했다. 오이팩을 해봐도, 기능성화장품을 발라도 아무 소용이 없자 병원을 찾은 결과 안면홍조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술 취한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얼굴이 빨개져 내성적이거나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이처럼 음주나 감정적 변화 없이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을 안면홍조증이라고 한다. 안면홍조는 혈관 확장으로 말초피부의 혈류량이 증가해 얼굴이 붉게 보이는 증상이다. 남성보다는 여성 환자가 많고, 전체 환자 중 갱년기 중년여성의 비율이 높다. 폐경기 여성의 60%가 여성호르몬 감소에 따른 안면홍조를 경험한다. 조기폐경 또는 수술로 난소를 제거하면 발생 시기가 빨라진다. 최근엔 젊은 여성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주요 증상으로는 얼굴이 붉어지며 열감을 느끼고 발한(땀), 두근거림이 동반된다. 홍조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나, 가장 흔한 원인으로는 발열 및 고온 노출로 인한 온도 변화, 갱년기·폐경 등 호르몬 변화, 정서적 변화, 피부 자극물질에 노출 등이다. 증상이 주로 얼굴에 나타나지만 심하면 귀, 목, 가슴 부위까지 붉게 변한다. 특히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환절기엔 얼굴이 수시로 빨개지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안면홍조는 혈관의 수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다. 혈관은 자연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데 수축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얼굴에 붉은 기가 오래 남게 된다.
안면홍조의 원인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강한 자외선을 받거나 더울 때 안면홍조가 심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강한 냉방 역시 안면홍조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냉방으로 인한 급격한 온도 변화는 피부를 자극, 안면홍조를 유발한다. 혈관은 기온이 높으면 이완(확장)하고, 낮으면 수축한다. 혈관이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피부는 수분을 배출해 건조해지고, 자극을 받아 붉어진다. 온도변화가 클수록 혈관 이완·수축 반복 횟수는 많아져 악순환을 반복한다. 즉, 자외선이 약하더라도 강한 냉방으로 실내·외 온도 차가 큰 환경이 안면홍조를 악화할 수 있다.
냉방으로 인한 안면홍조 악화를 막기 위해선 적정한 실내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실내·외 온도 차이는 10도를 넘지 않게 냉방을 조절하는 게 좋다. 외출을 할 때는 날씨가 흐리더라도 자외선 차단제(선크림)를 발라야 한다. 자외선은 모세혈관을 확장시키고, 피부보호막도 파괴하기 때문이다. 피부가 매우 예민해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할 수 없다면 양산이나 모자 등을 착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만일 폐경기 여성이라면, 여성호르몬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안면홍조는 대표적인 폐경기 증상 중 하나이다. 적절한 여성호르몬 보충요법은 안면홍조 완화 효과가 있다.
여러 종류의 약제도 안면홍조를 유발할 수 있다. 고혈압약인 ‘칼슘통로차단제(CCB, Calcium channel blocker)’, 고지혈증에 사용하는 ‘니코틴산(Nicotinic acid)’, 발기부전치료제인 ‘실데나필(sildenafil)’, 유방암 재발을 억제하는 ‘타목시펜(tamoxifen)’, 전립선암치료제인 ‘류프롤리드(leuprolide)’나 ‘부세레린 아세테이트(Buserelin acetate)’, 골다공증치료제인 ‘라록시펜(Raloxifene)’과 ‘바제독시펜(bazedoxifene)’, 항염증제인 ‘트리암시놀론 아세토니드(triamcinolone acetonide)’, 파킨슨병에 사용하는 ‘브로모크립틴(bromocriptine)’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고혈압약과 발기부전치료제는 혈관을 확장시켜, 고지혈증약은 히스타민 분비를 늘려 안면홍조를 유발한다. 전립선치료제는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강민서 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는 “안면홍조는 증상이 미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너무 자주 반복되면 자신감 없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고, 심하면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증상을 오래 방치하면 피부 속 모세혈관이 확장돼 거미줄이나 나뭇가지처럼 얼굴 표면에 나타나거나, 구진이나 농포 같은 염증반응이 동반돼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의학에선 심신불교(호르몬 변화, 자율신경 조절기능 저하), 심화(스트레스), 위열(과식이나 자극적인 음식) 등을 안면홍조 원인으로 본다. 강민서 교수는 “안면홍조는 지루성피부염, 접촉성피부염 같은 피부이상이나 루푸스, 유암종증후군(카르시노이드증후군), 이개측두신경증후군, 남성호르몬 감소 등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며 “얼굴 붉어짐이 계속되면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빠른 시기에 전문의에게 진단 및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한피부과학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안면홍조 환자 수는 2014년 이후 최근 3년간 약 20%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안면홍조를 질환으로 인지하는 환자의 비율은 45%로 절반에도 못 미쳤으며, 나머지는 민간요법이나 기능성화장품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홍조가 오래되면 일시적인 상태가 아닌 지속적인 안면홍조로 고정될 수 있어 이른 시기에 치료받아야 한다. 외출은 짧은 시간으로 제한하고 양산과 자외선차단제로 피부를 보호하도록 한다. 실내에서는 냉방 적정온도인 26~28도를 유지해 실내외 온도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뜨겁거나 매운 음식은 자율신경계를 자극해 안면홍조 증상을 유발 및 악화시킬 수 있다. 퇴근 후 시원하게 즐기는 치맥처럼 기름진 음식과 알코올도 마찬가지다. 온천욕이나 사우나를 너무 자주 즐기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어 가급적 짧은 시간에 끝내야 한다.
김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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