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비만을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계급’ 문제로 본다. 선진국에선 저소득층과 사회문화적 혜택이 적은 농촌 지역의 비만율이 점점 높아지고, 취약 계층의 비만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2020 비만백서’의 통계와 추이를 뜯어보면 이미 우리나라의 비만 문제도 선진국과 같이 전형적인 사회경제적 문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역적으로만 봐도 서울과 지방의 비만율 차이는 뚜렷하다.
비만은 단순히 체중이 증가하는 현상이 아닌, 체내에 지방이 필요 이상으로 쌓인 상태를 말한다. 비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유전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 등 비만의 원인을 다방면으로 탐색한다. 비만을 좋지 않은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성인병으로 보는 학자는 환경적 요인을 주로 연구하는 한편 일부 학자는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그 작동 기제를 분석한다.
현재까지 누적된 연구 결과를 보면 비만의 유전학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소위 비만 유전자라고 불리는, 비만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는 많으나 어떤 사람의 비만 여부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같은 비만 유전자를 가졌더라도 이들 유전자가 모두 똑같이 발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비만이 유전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은 부모에게서 비만이라는 질병 자체가 대물림된다는 뜻이 아닌, 비만을 유발하는 특정한 환경 조건에 취약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인 비만 연구는 ‘나’의 비만 여부를 과거 부모로부터 온 유전자와, 현재 내 몸을 둘러싼 환경 또는 그러한 환경에 대처하는 내 생활 습관 사이에 벌어진 상호작용의 결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인기 비만에 영향을 주는 과거 요인은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뿐이다. 그러나 임신부의 체중이 태아의 미래 비만 여부와 관련 있다는 안내서의 경고는 모체의 자궁 환경을 새로운 과거 요인으로 고려하게끔 한다.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등 대사성질환, 심혈관계질환 등 각종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현대 문명병이다. 어릴 때부터 비만이 되지 않도록 식단을 조절하는 게 평생 건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지만 한창 자라는 아이의 음식을 줄이면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소아비만은 최근 수십 년간 전세계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소아 10명당 1.5~2명이 비만 또는 과체중일 정도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생 건강검사 표본 통계’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중 비만을 가진 학생의 비율은 19.3%에 달했다. 소아비만은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고 성인기 질병과 사망률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 소아비만인 아이의 70%가 성인비만으로 이어진다는 보건복지부 통계도 있다. 소아비만이 증가하는 원인으로는 식품산업 발전, 핵가족화 및 맞벌이 가정 증가로 인한 간편 즉석식품 섭취 증가, 고열량·고지방 식품 및 단순당 식품 섭취 증가 등이 꼽힌다.
아침식사 결식, 외식 증가, 인스턴트 및 패스트푸드 섭취 증가, 과도한 TV·게임·컴퓨터·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인한 신체활동 감소도 비만의 주요인이다. 부모가 비만하면 같은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공유하는 아이도 비만해지기 쉽다. 부당경량아(주수에 비해 작게 태어난 신생아) 또는 거대아로 태어난 경우에도 비만 위험이 높다.
생후 1년에 이르는 시기엔 체지방률이 25%까지 증가해 아이가 토실토실하게 보일 수 있다. 대부분 첫 돌이 지나면 정상 체형이 되지만 너무 살찐 아이는 소아비만으로 진행될 수 있다. 소아비만은 영아기, 5~7세, 사춘기에 가장 많이 발생하며 50% 이상이 6세 이전에 시작된다. 특히 2~6세 때 비만이거나 과체중인 아이는 청소년, 성인이 된 뒤에도 뚱뚱한 체형이 될 확률이 높다. 독일 라이프치히대병원 안제 코너 교수팀이 0~18세 어린이 5만1505명의 체질량지수(BMI)를 추적조사한 결과 비만 청소년 53%가 5세부터 과체중·비만을 보였고, 3세 때 비만이었던 아이의 90%는 청소년 시기에도 과체중·비만으로 이어졌다.
비만한 소아는 지방간, 이상지질혈증, 대사증후군, 2형 당뇨병, 고혈압, 정신심리적 문제 등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어 ‘살은 키로 간다’는 생각에 방치하는 것은 금물이다. 또 어릴 때부터 살이 찐 아이는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렙틴’이 뇌 시상하부를 자극해 성조숙증으로 이어져 또래보다 최종 키가 덜 클 수 있다.
성조숙증은 사춘기가 일찍 시작돼 2차 성징이 조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조숙증인 아이는 뼈 나이가 또래보다 높아 일찍 성장판이 닫혀 성장이 멈추고, 최종적으로 성인이 됐을 때 또래 평균 키보다 작게 된다. 성조숙증 여아는 만 8세, 남아는 만 9세 이전에 2차성징이 일어난다.
여아는 키가 140㎝ 미만인데 체중이 30㎏을 넘으면서 가슴이 나올 때, 남아는 150㎝ 미만에 체중이 45㎏을 넘으면서 체모가 생기면 성조숙증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소아비만은 약물치료를 거의 시행하지 않아 적절한 식이조절, 규칙적인 운동, 생활습관 변화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의 허리둘레(㎝)를 키(㎝)로 나눈 값이 0.47 이상이면 비만을 의심하고 병원 진료를 받는 게 좋다. 예컨대 키가 145㎝이고, 허리둘레가 70㎝인 아이라면 ‘70÷145=0.482’로 비만일 가능성이 높다.
문진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인스턴트음식·튀김·당류를 피하고 통곡을 많이 섞은 잡곡밥, 신선한 과일, 야채 섭취를 늘리는 게 좋다”며 “국내에서는 생후 4~71개월 영유아를 대상으로 단계별 총 7차례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하므로 아동의 성장 및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서 “소아비만의 원인으로서 가족력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가족의 유전적인 성향과 식생활 습관이 아이의 비만을 유도하기 때문에 소아비만의 치료는 반드시 가족치료를 해야 한다”며 “다른 소아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소아비만은 부모에 대한 교육과 상담이 매우 중요하다. 저출산 시대에 육아를 담당하는 젊은 부모에 대한 건강교육 지원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