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 이후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부부들이 부쩍 늘었다. 그에 비례해 코로나 유행으로 결혼 시기가 한참 늦어지면서 '불임'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불임의 원인은 다양하고 남녀에게 모두 있지만 남성 불임 원인 중 대표적인 게 '정계정맥류'다.
정계정맥류는 고환의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질환이다. 일반 남성의 12% 정도에서 발견되지만, 불임 남성에서의 유병률은 21~41% 정도로 높다. 진옥현 연세우노비뇨기과 원장은 "특별한 통증은 없지만 정맥이 매우 늘어나서 마치 지렁이가 얽혀있는 것처럼 만져지거나 미관상 보기좋지 않아 찾는 경우도 있고, 고환이 위축되거나, 일상생활 중 고환통증이 심해서 진료실을 찾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고환위축은 정상 고환에 비해 크기가 20% 이상 줄어든 것이다.
정계정맥류는 정자 건강을 해쳐 불임을 유발한다. 진 원장은 "고환정맥에 피가 고이고 부풀어 오르면서 고환 내부 온도가 높아지면서 정자의 질을 떨어뜨린다”며 “불임 환자에게 정계정맥류 수술을 하면 실제로 절반 이상의 환자에서 정자의 운동성과 개체 수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유교 문화권인 한국에서 출산은 전적으로 여성이 책임져야만 했다. 이 때문에 아이를 못 낳을 경우 극심한 핍박과 설움을 견뎌야 했다. 과거 드라마에선 아이를 못 낳은 며느리 혹은 아내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구박받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권 신장, 스트레스 및 환경호르몬 노출, 비만, 의학기술 발달 등으로 남성난임의 유병률도 급속히 높아지면서 난임은 여성과 남성, 부부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십수년 전부터 확산되고 있다.
난임 발병 원인은 여성 측 요인 약 45%, 남성 측 요인 약 35%, 양측 요인 10%, 원인불명은 약 10% 정도로 추측된다.
국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불임 요인은 정계정맥류가 37%, 원인불명이 23%, 정관 폐쇄가 13%, 정류고환(출생 후 태아 때 배 안에 있던 고환은 점차 아래로 내려와 음낭에 자리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 고환이 여전히 뱃속이나 복벽 내부에 정체된 상태)·고환이상이 각각 3%, 사정장애·면역학적 이상이 각각 2%, 유전적 원인이 1% 정도를 차지한다.
남성난임의 가장 큰 요인인 정계정맥류는 음낭 내 고환의 정맥이 나가는 길에서 역류해 확장되는 질환이다. 오른쪽보다 왼쪽 고환이 정맥의 길이가 길고 혈관 가지가 많아 정맥압이 높아지며 역류가 쉽게 일어난다. 실제 대부분 정계정맥류는 왼쪽 고환 부분에서 관찰된다. 고환과 음경 사이에 지렁이처럼 꼬불꼬불하게 나타난다. 심하면 고환을 혈관 다발이 둘러싸고, 고환이 퇴화돼 크기가 작아진다. 일반 남성 중 10%가 앓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계정맥류를 앓으면 음낭 혈관이 늘어나면서 정자 수가 줄어들고 운동성도 감소한다. 정자는 생성되지만 지나가는 통로(부고한, 정관 사정관)가 막힌 폐쇄성무정자증과 고환 자체에 문제가 생겨 정자가 생성되지 않는 비폐쇄성무정자증도 남성난임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고환에 울퉁불퉁 혈관이 튀어나왔다면 ‘정계정맥류’를 의심해야 한다. 고환 주변 혈액이 역류할 경우엔 혈관이 튀어나오는 동시에 열감·통증·불쾌감을 동반할 수 있다. 서있을 때 통증이 발생하며 누우면 사라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정계정맥류는 대부분 고환 정맥 판막의 선천적 이상이 원인이다. 혈액을 심장으로 보내는 판막에 문제가 생기면 혈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한 곳에 고이는 ‘울혈’ 현상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정맥이 넓어지고 구불구불 늘어지게 된다. 심하면 혈관 다발이 고환을 둘러싸면서 고환 기능이 퇴화될 수 있으며, 고환 크기가 작아지기도 한다.
정계정맥류를 방치하면 고환 기능 퇴화로 인해 남성 난임·불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울혈 현상에 의해 막힌 고환의 정맥에서 열이 발생하면 정자의 수, 운동성, 형태 등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고환 한쪽이 당기거나 뻐근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울혈로 인해 발생하는 열이 원인이다.
정계정맥류는 절개수술, 복강경수술, 경정맥색전술 등을 통해 치료한다. 그러나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발생 후 통증이 없거나 정자 활동 저하 등 기능적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 다면 치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해부학적 문제로 발생하는 만큼 특별한 예방법이 없지만 스스로 진단해볼 수는 있다. 진옥현 원장은 “샤워 전 배에 힘을 주고 자신의 고환 혈관을 만져보는 것만으로 정계정맥류를 진단할 수 있다”며 “서 있을 때 음낭에서 포도송이처럼 울퉁불퉁한 정맥류가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도 주요 증상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비뇨기질환 외에 늦은 결혼 탓에 출산시 남편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도 남성불임의 주요 이유다. 국내 남성의 초혼 연령은 1994년 만 28.6세, 2004년 만 30.9세, 2014년 만 32.8세, 2020년 만 35세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여성이 나이들수록 생식능력이 떨어지듯 남성도 나이를 먹을수록 정액 사정량, 정자 수, 운동성 등이 감소한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질병, 유해약물, 작업환경에서 발생하는 독성물질, 부적절한 생활습관 등 정액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난임 위험을 높인다.
흡연, 음주, 스트레스도 남성난임을 유발할 수 있다. 흡연을 하면 담배 속 독성물질이 정자의 DNA 구조를 변화시키고 정자 몸체 부분을 공격한다. 이러면 정자의 운동성과 밀도가 떨어지고 정액 양이 감소하게 된다.
가볍게 한두 잔 마시는 술은 정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과음은 남성호르몬 농도를 감소시켜 생식능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술을 많이 마시면 척수반사(spinal reflex)가 줄면서 음경의 신경이상을 초래해 발기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몸매 관리를 위해 먹는 스테로이드 함유 단백질보충제는 난포형성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 분비를 저해해 정자의 밀도와 운동성을 감소시킨다. 심하면 고환위축, 무정자증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고혈압치료제, 전립선비대증 및 탈모 치료제, 항진균제 등도 정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또 제철·전자·염색·섬유산업·발전소 등에 종사해 직업상 독성물질을 다루거나, 보호복을 착용하고 고온의 작업환경에서 근무하거나, 고온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제빵사·운전자·용접공 등 직업군은 정상적인 정자의 비율이 다른 직업군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사우나나 뜨거운 욕조를 자주 이용하면 생식력이 감소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같은 이유로 스키니진이나 히트텍 등 꽉 조이는 옷을 자주 입으면 고환 부위가 높은 온도에 장시간 노출돼 남성난임을 유발할 수 있다.
남성의 임신 전 관리는 주된 위험요소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임신계획 수립 여부 △질병력과 수술력 △투여 약물 △가족력과 유전적 위험요소 △사회력(작업환경) △위험행동 △영양섭취 △정신건강 △신체검사 등 9개 영역에서 이뤄진다. 부부의 경제력과 나이, 연상·연하 등 특수성을 임신계획에 반영하고 비만이나 당뇨병 같은 기저질환과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수술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액검사는 남성난임 평가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자의 농도, 정자 활동성(운동성), 정자의 형태(기형정자 비율)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있다면 수정 능력이 떨어질 위험이 2~3배, 둘 이상 문제가 있으면 5~7배, 셋 모두 문제가 있으면 16배나 상승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정자검사의 정상 기준은 정액량 1.5㎖ 이상, 정자 수 1500만/㎖ 이상, 정자 운동성(활동성) 40% 이상, 정상형태 정자 4% 이상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