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가장 쟁점이 됐던 간호사의 활동범위는 '진료보조'로 제한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간호사의 지역사회 활동'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쟁점이다. 의료계의 갈등으로 동네 병·의원이 집단 휴진에 들어간 '2000년 의약분업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17일 국회 등에 따르면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관련 조항을 따로 떼어 내 만든 법이다. 방문건강관리·가정간호·노인장기요양·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등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현장에서 간호사가 담당하는 일은 늘어나는데 이를 통합해 관리할 법안이 없다는 현실에서 법안 제정이 추진됐다.
통합된 법안이 없어 학교보건법·산업안전보건법·노인장기요양보호법·아동복지법 등 현행 법령상 간호사의 업무로 정하거나 인력기준에 간호사가 명시된 법이 90여개에 달한다. 소관부처만 11개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간호법은 간호사 업무 범위, 간호사의 권리 및 처우 등의 내용을 통합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가 초기에 가장 반대했던 지점은 간호법이 규정한 간호사의 업무 범위였다. '간호사가 단독으로 진료하기 위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연숙·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안에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했었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의 요구가 반영돼 지난 9일 법안소위를 통과한 간호법 대안에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현행 의료법에 따라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수정됐다.여기에 원안에 포함됐던 간호종합계획 5년마다 수립 및 3년마다 실태조사 실시, 간호업무 관련 기본지침 제정 및 재원 확보 방안 마련, 의료기관 책무 규정, 표준근로지침 관련 규정 등도 법안심사소위를 거치면서 삭제됐다. 의사단체가 반대했던 내용이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간호법이 '지역사회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주장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늘어날 의료 수요에 있어 간호사와 의사의 업무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의사협회 등에서 반대하는 논리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간호법은 이제 방문간호와 같이 지역사회 간호 서비스도 다 하겠다는 취지"라며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지역 사회의 의료 서비스 수요가 증가할 텐데 서비스 질의 관리도 어렵고 특정 직역이 단독으로 수행하면 의료법 상충 행위가 많아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지역 사회가 어디까지인지 정의하기도 어렵고 단순 상처 치료만 봐도 욕창으로 이어질지 의사의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며 "지역사회에서 간호한다는 것 자체가 이런 의사의 진단을 지연시키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 등은 이미 간호사들은 장기요양기관, 학교·어린이집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현행 의료법이 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을뿐 이라고 주장한다.간협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 간호사와 간호대학생 등 2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간호법 국회 보건복지위 통과 환영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여야는 간호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대로 본회의 의결까지 차질 없이 마무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여야 합의 하에 간호법 조정안을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가결해주신 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며 “간호법은 앞서 4차례에 걸린 법안소위를 통해 조정안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논의를 거친 만큼 이번 전체회의 통과를 매우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법은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간호 수요와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주기적 공중보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었다”면서 “간호법 제정을 토대로 숙련된 간호인력을 확보하고 지역 간 적정인력을 배치해 보건의료 환경변화에 대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만 남겨놨다"며 "간호법이 본회의 의결까지 차질 없이 마무리돼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 증진의 길이 열려야 한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던 만큼 간호법 제정의 남은 절차에 반드시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아직 간호법 제정까지 남은 과정이 있는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호사 단체에서는 장기요양기관, 학교·어린이집 등 지역사회에서는 이미 간호사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간호협회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21망3900명, 보건기관에 1만3880명, 장기요양기관에서 3310명의 간호사가 활동하고 있고 학교에 8200명, 어린이집에 490명, 공무원(국가직, 지방직)으로 9190명의 간호사가 활동 중이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너싱홈이라 부르는 노인전문요양시설의 경우 이미 촉탁의사 및 의료기관과 협력해 간호사들이 운영하는 곳이 전국에 600여개"라며 "의사의 감독에 따르고 있고 현실이 이미 징별 치료보다는 예방과 관리로 변하고 있는데 의료법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당장에 집단 휴진과 같은 강경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우리의 의견이 끝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집단휴진 등의 강경대응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의협을 비롯한 간호법에 반대하는 10개 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 이정근 간호단독법 저지 비상대책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송성용 의무이사 등이 국회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쳤다. 15일 개최된 간호법 규탄 전국 의사 대표자 궐기대회 직후인 16일에는 이필수 의협 회장이, 17일에는 이정근 의협 간호단독법 저지 비대위 공동위원장, 그리고 18일에는 송성용 의협 의무이사 등이 주자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