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있을 때 우리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경험을 하거나, 반대로 전날 저녁 잠을 잘 자지 못 했을 때, 다음 날 두통이나 신체 각 부위의 통증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수면과 통증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로 알려져 있다.
우리 몸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자극은 감각회로를 통해 뇌의 감각중추로 전달되어 감각을 느끼게 되는데, 통증자극이 지속적으로 뇌로 전달되면, 특정 신경구조물들은 통증이 뇌로 전달되는 것을 억제하게 된다. 이 때문에 계속 매를 맞으면, 통증을 덜 느끼는 맷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통증이 만성이 되면, 통증을 억제하는 정상적인 신경 메커니즘의 과부하와 이상을 초래하여, 우리 몸이 스스로 통증을 억제하지 못하게 된다. 즉, 정상적일 때는 통증으로 인식되지 않던 작은 자극도 뇌로 너무 쉽게 전달되어, 심한 통증으로 느끼게 된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거나, 일상생활 중 가벼운 타박상·찰과상 등을 입었을 때 유난히 엄살이 심한 사람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발목을 접질리는 등의 부상을 당해도 별다른 반응 없이 덤덤한 사람도 존재한다. 사람마다 통증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은 타고난 성격 외에도 통증 민감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통증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 또는 잠재적인 신체 손상과 관련된 불쾌한 감각이나 감정적 경험이다. 크게 침해성, 신경병성, 기능적·특발성으로 나뉜다.
임희진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침해성 통증은 조직이 손상될 정도의 과도한 외부자극이 가해져 신경 말단에 위치한 통증수용체가 활성화되고, 이 신호가 신경을 따라 대뇌까지 전달돼 인지하게 된다”며 “신경병성 통증은 통증 전달 경로인 신경에 병이 생겨 통증수용체에 자극이 없는 데도 통증이 생기거나, 통증이 아닌 감각자극을 통증으로 느끼거나, 경미하게 아픈 것을 심한 통증으로 착각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능적 또는 특발성 통증은 현대의학으로도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대뇌 또는 자율신경계 이상에 의한 현상으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통증이 나타나면 아픈 부위를 만져보게 되고, 점차 신체 활동이 줄며, 통증이 생기지 않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급성 통증이 있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돼 심박수와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
사람마다 통증민감도가 왜 다른지, 어떤 사람이 통증에 더 취약한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통증민감도가 높아 아픔을 더 잘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스트로겐은 통증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인 통증 역치를 낮춰 통증을 잘 느끼게 만든다. 한 해외연구에 따르면 수컷 쥐에 에스트로겐을 주입하자 통증민감도가 높아진 반면 암컷 쥐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한 결과 통증민감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뇌의 구조적 차이도 남녀 간 다른 통증 양상을 나타내는 요인으로 추측된다. 2009년 미국 신경학회지(Annals of Neurology)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녀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촬영하면 통증 자극에 활성도가 증가하는 뇌 부위가 다르게 나타났다.
건강한 남녀 각 20명을 대상으로 피부에 전기자극을 가한 결과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전기자극에 대한 감각 역치가 낮아 통증에 더 민감한 것으로 확인됐고, 근육수축을 유발하는 최소한의 자극에 대해 여성이 인지하는 통증의 강도가 높았다.
여성은 또 남성보다 더 많은 신경섬유를 지니고 있다. 임희진 교수는 “한 연구에 따르면 얼굴 피부 1㎠당 여성은 34개의 신경섬유가 분포하는 반면 남성에서는 17개에 불과하다”며 “신경섬유가 많이 분포한다는 것은 통증신호가 잘 전달돼 통증에 민감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남녀 간 생물학적 차이 외에도 정서스트레스 대응 방식,사회적 역할, 의료서비스 이용 빈도 등의 차이와 같은 사회심리학적 요인도 통증의 인지 방식과 민감도를 좌우하는 요소로 꼽힌다. 예컨대 반복적인 가사 및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건강관리를 위한 운동 부족 등이 통증민감도를 높일 수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순간적인 통증에 더 민감하면서도 더 빨리 통증에 적응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은 성인 32명을 대상으로 통증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중간 강도의 자극을 가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통증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20초 후 남성은 통증에 대해 변화가 없었던 반면에 여성은 민감도가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구팀이 실험 참가자에게 1초에 3번씩 자극을 줬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통증을 덜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의 자베리아 하쉬미 교수는 “왜 남녀가 통증에 다르게 적응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통증 신호를 뇌가 억제하는 데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통증을 인지하는 심리학적인 면에서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증을 느끼는 정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의 문제, 즉 타고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국제연구팀은 통증 관련 유전자를 알아내기 위해 초파리로부터 사람의 유전자와 비슷해 보이는 유전자 약 600개를 찾아냈다. 이들 유전자 중 통증과 연관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알파 2 델타 3’ 유전자가 미세하게 변형된 사람들이 통증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