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2년이 지난 직장인 김모 씨(27·여)는 자연임신을 2년 동안 준비해오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미뤄왔던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평소 남들보다 심한 생리통만 있을 뿐 생리 주기가 정확하고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도 아니어서 난임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산전검사를 받은 결과 산부인과 전문의로부터 ‘심부자궁내막증’을 진단받았다.
가임기 여성들에게 흔하고 임신과 출산에도 영향을 주는 질병이 있다.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이다. 진료 환자 증가세도 가파르다. 2020년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으로 병원을 찾은 여성은 각각 51만4780명, 15만5305명으로 2016년 대비 50%, 48%씩 늘었다.
특히 20대는 각각 62%, 55.1% 증가해 가임기 여성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자궁 혹’으로 불리는 근종은 자궁벽을 이루는 근육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생기는 양성 종양이다. 에스트로겐 등 여성 호르몬 노출, 환경적 요인 등이 병을 야기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초경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어지는 경우 근종 위험이 높다.
늦은 결혼과 임신·출산 경향도 오랜 호르몬 노출로 인해 영향을 준다.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높은 과체중·비만 여성은 3배 이상 높은 위험을 갖는다고 보고돼 있다. 또 가족 중에 근종이 있다면 발생 확률이 가족력 없는 경우 보다 2.5~3배 높다. 자궁근종은 난임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젊은 여성들이 우려하기도 한다.
실제 근종이 난자나 배아(수정란)의 이동을 방해하거나 주변 자궁내막 조직을 변화시켜 난임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다. 반대로 근종 제거 후 임신 성공률이 크게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난임을 초래하는 질환으로 최근 전문가들이 근종보다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이 자궁내막증이다.
자궁안에 있어야 할 생리 조직이 나팔관, 복막 등 자궁 바깥에 붙어 생기는 병이다. 발병 원인은 명확지 않지만 면역기능 저하, 환경호르몬, 서구식 식생활, 유전적 요인 등 탓으로 추정된다. 난임 여성의 20~50%가 자궁내막증을 갖고 있는 걸로 보고된다. 또 만성 골반통증 호소 여성의 40~80%가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는다.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리혈 역류와 연관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리혈은 대부분 자궁경부와 질을 통해 외부로 배출된다. 생리 현상은 자궁근육이 수축되는 힘을 통해 생리혈이 외부로 배출되는 것인데 간혹 난관을 통해 뱃속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한다. 뱃속에 떨어진 생리혈은 별다른 문제 없이 흡수돼 사라지는데 드문 확률로 흡수되지 않고 난소나 내장에 붙어서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문제가 가장 발생하는 부위는 난소이며 간혹 횡격막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서석교 세브란스병원 자궁근종·내막증센터장인 산부인과 교수는 “근래 20대 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예전에 비해 건강검진을 받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근종은 전체 여성의 50~60%가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67% 정도는 증상이 없다는 보고가 있다.
서 교수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거의 모르고 지내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등 임신·출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 근종이 커지면서 방광 등 주변 장기를 눌러 소변이 자주 마렵고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자궁내막증은 정상적인 임신 확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골반강 곳곳에 염증을 일으켜 자궁, 난소, 난관을 유착되게 만든다. 이럴 경우 자궁이 휘고 난관이 막히면서 운동성이 떨어져 수정란이 내막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난임이나 자궁외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권용순 을지대 을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젊은 여성일수록 호르몬 분비가 활발해져 자궁내막증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조직이 빠르게 증식할 수 있다”며 “미혼 여성은 임신이나 출산으로 겪는 생리 휴지기간이 없어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 질병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젊을수록 산부인과 진료를 회피하다 증상이 심해진 뒤 병원을 찾는 사례가 많아 가임기 여성이라면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일반적인 자궁내막증은 주로 자궁 근처에서 발생하거나 복막 표면에만 국한된다. 자궁내막이 복막을 침투해 주변 장기인 방광, 요관, 질상부, 직장조직, 골반의 신경까지 파고드는 것을 심부자궁내막증이라고 한다.
자궁내막증을 오래 앓고 있거나 증상이 심하면 자궁내막조직의 깊이나 정도가 악화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생리 중 심부조직 통증이 동반되는데 만성골반염, 과민성대장증후군 등과 증상이 비슷한 게 특징이다. 진통제를 먹어도 생리통이 조절되지 않고, 생리기간 구역감이나 어지럼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면 산부인과 검진이 필요하다.
자궁내막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통증이 지속되고 재발 가능성이 높아 수술이 필요하다. 수술시 가장 중요한 것은 ‘난소의 보존’이다. 난소는 여성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이고 배란할 난자가 모여 있어 가임력을 유지하려면 난소 보존 여부가 중요하다. 해부학적으로 유착된 부위를 잘 박리해 정상조직과 아닌 부분을 장기 손상 없이 최대한 완벽하게 절제해야 하므로 고난도 술기를 요구한다.
난소가 아닌 다른 부분의 심부자궁내막증수술은 유착이 심할 경우 장을 절제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자궁내막증 환자의 50%에서 수술 후 5년 안에 재발할 만큼 재발률이 높다. 재발 위험을 줄이려면 임신을 원하는 경우 조기에 임신을 시도하고, 약물치료와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장기간의 호르몬억제치료는 또다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 전문의와 약물치료 기간과 사용 약제에 대해 신중하게 상의해야 한다. 권용순 교수는 “자궁내막증은 생리와 연관성이 높아 자신의 월경주기 등에 관심을 갖고,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게 좋다”며 “심부자궁내막증의 경우 생리통이 심한 데다 발병 위치에 따라 극심한 통증이 생길 수 있어 가급적 빨리 치료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