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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 흔드는 신종 우울증 '비트코인' 투자 극단적 선택도
  • 김광학 기자
  • 등록 2022-01-19 10:42:50
  • 수정 2022-01-19 16: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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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 34% 투자, 박탈감·근로의욕 저하 … 시세 폭락에 분노·절망 상대적 박탈감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9일 가상자산 투자 수익에 대해 5000만원까지 과세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가상자산 투자 참여율이 높은 2030 세대를 겨냥한 공약으로, 최근 윤 후보가 주력하는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잡기'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대선후보들이 앞다퉈 가상화폐 공약으로 표밭갈이를하는 만큼  지금 대한민국 2030은 가상화폐 열풍에 한가운데 있다.


얼마전 부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이던 대학생(22)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가 없어 정확한 동기는 알 수 없다. 작년부터 가상 화폐 투자를 시작해 한때 원금의 10배를 벌었지만, 최근 가상 화폐 폭락으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 화폐에 투자한 2030 세대 가운데 최근 가격 급등락으로 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비트코인 블루'라고 불리는 우울증이다. 사소한 것에 분노가 폭발했다가 갑자기 무기력해진다. 불면증이나 집중력 저하, 식욕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격 등락 폭이 크다는 점도 가상 화폐가 심각한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가상 화폐는 하루에 20~30%씩 급등락하는 일이 잦다. 그만큼 감정 기복도 심해진다는 것이다. 24시간 거래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불면증에 걸리기도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감정이 불안정해지고 충동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비트코인(Bitcoin)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암호화폐) 광풍이 정부 규제로 주춤해진 가운데 2030세대의 가상화폐 우울증, 이른바 ‘비트코인 블루’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가상화폐 초창기 수백억원 ‘대박’을 낸 또래 젊은층을 보며 우울감과 상대적박탈감을 느꼈고, 비트코인 가치 폭락 이후엔 ‘이젠 더이상 신분 상승할 방법이 없다’며 절망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다. 결과적으로 비트코인 가치 변화에 따라 감정도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2030세대의 정신건강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가상화폐는 지폐·동전 같은 실물 없이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돈을 의미한다. 최근엔 암호화기술을 사용하는 화폐라는 의미로 암호화폐로 불리기도 한다. 가상화폐는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일반화폐와 달리 처음 고안한 사람이 정한 규칙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정부나 중앙은행에서 거래 내역을 관리하지 않고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유통되므로 정부가 가치나 지급을 보장하지 않는다.


2009년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1200여개에 이르는 가상화폐가 개발됐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비트코인골드, 비트코인캐시, 리플, 대시, 라이트코인, 모네로 등이 대표적이며 이 중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가상화폐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2009년 당시 비트코인 한 개의 가격은 0.3센트(0.003달러)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가치가 상승해 2013년 100달러(11만원)를 돌파했다. 2016년엔 990달러(106만원)까지 치솟았고 올해 초 정점인 4만4519달러(5300만원)를 찍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하루 거래대금도 많게는 70억달러까지 몰리면서 코스닥시장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부가 가상화폐를 투기로 규정하고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규제에 나서자 가치가 폭락, 투자자들이 애간장을 끓이고 있다.


구인구직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4.3%가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적잖은 젊은층이 대박을 꿈꾸며 학비나 생활비로 쓸 돈을 가상화폐에 ‘올인’했지만 초창기 투자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결과가 썩 좋지 못했다.


가상화폐 광풍은 2030세대에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남겼다. 가상화폐에 투자한 젊은층 중 상당수가 시장 변동 상황을 체크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출렁이는 시세에 기분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직장인 정모 씨(31)는 “가상화폐 투자로 제대로 돈을 벌려면 단타(단기투자)가 핵심”이라며 “1~3분 간격으로 휴대폰을 통해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해야 하는데 회의나 미팅 등으로 휴대폰을 못 보는 상황이 되면 불안감이 엄습해온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날이 지속되면 두통, 불면증, 식욕부진, 탈모, 눈충혈, 수면장애 등 온갖 병을 달고 살게 된다.


그나마 겉으로 티가 나는 증상은 치료하면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울증, 상대적박탈감, 무기력감 같은 마음의 병이다. 가상화폐 시장에선 잠깐 사이에 수천 수백 만원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250만~300만원의 월급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평소 나보다 열심히 살지도 않았고 직장이나 스펙도 별로였던 친구나 지인이 가상화폐에 투자해 갑자기 큰 돈을 벌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형언할 수 없는 무기력감과 박탈감이 몰려온다. 직장인 오모 씨(35)는 “한번에 몇 백만원씩 벌었다는 동료들 말을 들으면 묵묵히 일하고 있는 내가 바보가 된 것 같다”고 푸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단기간에 고수익을 얻을 수 있고 변동 상황을 수시로 확인 가능한 게 장점”이라며 “수익률이 저조하고 이득을 보기까지 1년 이상 소요되는 적금 등 일반 재테크를 하던 사람들의 허탈감이 유독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유명인이 큰 돈을 벌고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은 별로 부러워하지 않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또래가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엔 유독 배 아파하는 경우가 많다.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노력이나 비용이 취업준비나 고시공부에 비해 훨씬 작은데 비해 성과는 훨씬 더 커 정신적인 데미지가 상당하다.


최근엔 정부 규제로 가상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좌절감, 절망감, 분노가 더해졌다. 젊은층 사이에서 ‘마지막 흙수저 탈출 도구’로 여겨졌던 가상화폐 가치가 정부 규제로 폭락하자 패배감과 좌절감이 증폭된 셈이다. 


우울증과 좌절감이 지속되면 수면장애와 무기력증이 동반되고 심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변에 가상화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비난하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다독여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중독 증상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모든 걸 알려 도움받는 방법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를 찾아가거나 콜센터를 통해 상담받도록 한다.  


가상화폐 정보를 보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강박증을 겪고 있거나 불면증, 식욕부진, 분노조절장애 등이 동반된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해결책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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