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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장기화로 짜증·무기력 … ‘가면우울증’ 무섭다
  • 김광학 기자
  • 등록 2021-12-28 11:00:30
  • 수정 2021-12-28 11: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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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쓰림·어깨결림·피로감 등 신체증상 뚜렷 … 중년층 자존심 탓 치료시기 놓쳐, 소아청소년 가면성 비율 높아

코로나19가 불러온 또 다른 전염병이 있다. 악플, 혐오, 비난 등 온라인상에서 타인을 악의적으로 깎아내리는 글이 급증했다. 코로나 확산 이후 트위터에 아시아 혐오 발언이 900% 증가했다는 이스라엘의 분석 결과가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내 혐오 발언이 20%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한국도 그렇다. ‘2020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이 2013년 실태조사가 실시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 아들(11)을 둔 직장인 정모 씨(39)는 틈만 나면 짜증을 내는 아이 때문에 고민이 집채만한 파도 같다. 아직 사춘기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이러면 중학교 입학 후엔 얼마나 더 짜증과 반항이 심해질 지 걱정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라도 하면 걱정이 덜 할텐데 하루종일 무기력해 보이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애가 탄다. 


지난달 승진에 성공한 중견기업 부장 박모 씨(46)는 며칠 새 직장과 집에서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평소 같으면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밀려와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직장에선 팀플레이보다 개인의 업무 성과만 좇는 선·후배들에게 환멸감을, 집에선 자신을 ‘돈버는 기계’로 여기는 가족들에겐 서운함과 야속함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쉽게 피로가 쌓이고 목·어깨 통증까지 심해져 어쩔 수 없이 연차를 낼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별명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고 지나가지만 흔한 만큼 위험성을 간과하기 쉽다. 특히 소아청소년, 중장년층 직장인, 고령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가면성 우울증’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달리 증상이 비특이적으로 나타나 치료 시기를 놓치고 상태가 악화되기 쉽다. 


가면성 우울증은 우울감이나 무력감과 같은 내면적 변화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대신 내적 고통이 속쓰림, 어깨결림, 과도한 피로감 같은 신체 증상으로 발현되는 질환이다. 가장 자주 발병하는 연령대는 고령층이다. 뚜렷한 몸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소화가 안 된다’,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 등 주로 내과적인 신체 증상을 계속 호소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서승완 강동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면성 우울증 환자는 몸에 이상이 없어도 수년간 반복해서 병원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적잖다”며 “단순한 이상 증세를 뇌졸중, 암 같은 심한 질환에 걸린 것으로 생각해 과도한 공포감을 느끼는 건강염려증과 혼돈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불안해하고 밖에서도 안절부절 못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우울증검사를 받는 게 좋다. 불안해하는 모습에 가족이나 지인이 원인을 물어도 명확하게 설명하지를 못한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지나치게 긴장하기도 한다. 새벽잠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유심히 살펴야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자는 도중에 자주 깨거나, 밤에 잠들기 힘들어 하거나,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낮잠을 잔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중년층도 가면성 우울증에 취약한 편이다. 내면의 우울감, 좌절감, 무기력감을 애써 감추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그동안의 성과가 무너지지 않도록 무리하게 회사일에 집중하다 우울증 증세가 심해질 수 있다. 


중년층은 명예퇴직 및 감원에 대한 두려움, 낮은 성취감, 인생에 대한 회의 등으로 우울증이나 자살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 취약한 편이다. 하지만 자존심과 사회적 인식 탓에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술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감정을 감추고 억압하는 일이 반복되면 증기가 가득 찬 밥솥이 폭발하듯이 자살 충동, 분노 폭발 같은 행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 


김의정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장년층의 가면성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이 중요하다”며 “증상을 비난하지 말고, 여러 활동에 참여를 권하되 조급하게 강요하지 않으며, 시간을 갖고 격려하면서 도우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면성 우울증은 소아청소년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성인의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일에 울음을 터뜨리고 침울해하며 의욕이 없지만 한 가지 큰 차이를 보인다. 성인들은 좋아하는 일에도 심드렁해지고 어떤 일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아이들은 재미있는 일에는 오히려 격한 반응을 보인다. 이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는 TV나 휴대폰 등 몇몇 일에는 유독 집중하고 자꾸 재밋거리만 찾게 된다. 


무언가에 몰입해서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느끼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지루하고 재미가 없으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 짜증을 부리고, 예전에 충분히 해냈던 일도 귀찮아하거나 금방 포기해버리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소와 달리 짜증을 잘 내거나, 울면서 침울해하는 빈도가 잦아지거나, 이유 없이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청소년 우울증은 성인과 달리 피로, 짜증, 신체증상, 반항행동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가면성 우울의 형태로 나타나는 비율이 높다”며 “국내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점을 고려할 때 청소년 우울증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소아의 우울증은 만성화될 위험이 높아 조기발견이 중요하다. 


김붕년 교수는 “아이는 어른과 달리 우울한 감정을 알아내기 쉽지 않지만 이전과 달리 짜증 또는 과격한 반응을 보이거나,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성적이 갑자기 떨어질 땐 우울증이 아닌지 의심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소아청소년기 우울증을 예방 및 치료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급적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김 교수는 “처음엔 아이가 부담스러워하거나 귀찮아할 수 있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함께 놀이를 즐기고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다”며 “잔소리나 훈계보다는 아이의 생각이나 말에 호응해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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