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만 되면 캠핑이나 여행을 즐기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반복된다. 몇 해 전에 울산시 동구의 한 캠핑장 텐트 안에선 40대 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일산화탄소중독. 경찰은 이들이 추운 날씨에 텐트를 닫아놓고 저녁식사에 사용한 숯 화덕에 계속 불을 피워놨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차 안에서 난방용 LP가스를 켜둔 채 자던 부부가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숨졌다. 경남 합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전 7시 30분께 합천군 대병면 합천댐 인근에서 A씨(68·남)와 B씨(61·여)가 숨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해에는 경북 봉화군의 한 캠핑장에서 텐트 안에 숯을 피웠던 50대 한 명이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숨지고 한 명은 중태에 빠졌다.
경남 함안에서 40대 낚시객이 부탄가스 온수 매트를 켜고 자다 목숨을 잃었다. 캠핑장이나 글램핑장 같은 야영시설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아직 미비한 곳이 대부분이다. 꼭 캠핑장 같은 여행시설이 아닌 주거시설이나 식당에서도 일산화탄소중독 사고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몇 해 전 수능을 마친 고교생 10명이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 놀러갔다가 실내로 유입된 보일러가스에 중독, 결국 3명이 사망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년)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전국에서 26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로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데다 소량으로도 인체에 해를 가할 수 있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따라서 무시동 히터 등을 갖춘 차량에서 숙박하려면 창문을 어느 정도 열어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
무시동 히터는 연료 탱크에 호스를 연결해 취유하는 방식이 일반적이고, 이를 소형 보일러에서 연소해 실내 공기 온도를 높이는 용품이다. 작동 원리는 간단하지만 차체 일부를 변경하는데다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러 설치 등 전문적이고 복잡한 작업을 거쳐야 한다. 무시동 히터 설치로 만일 벌레 등의 유입이 걱정된다면 방충망을 설치하면 좋다. 휴대용 일산화탄소 경보기도 지참할 필요가 있다.
일산화탄소(carbon monoxide)는 무색·무취·무미의 기체로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가 연소될 때 발생한다. 보일러 가스, 자동차 배기가스, 담배연기 등에 다량 포함돼 있다. 일산화탄소중독은 호흡기를 통해 유입된 일산화탄소에 의해 체내 산소 공급이 급격히 저하돼 두통, 어지럼증, 구역 등이 나타나고 심할 경우 중추신경계 마비로 혼수, 발작, 호흡마비 등이 동반돼 사망에 이르게 된다. 1990년대까지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연탄가스중독’이 바로 일산화탄소 중독이다. 일산화탄소 자체엔 독성이 없어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는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문제는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올 때다. 손창환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산화탄소는 산소를 운반하는 혈액 속 적혈구의 헤모글로빈(Hb)과 유독 친화력이 좋아 결합력이 산소보다 무려 250배나 강하다”며 “일산화탄소와 헤모글로빈이 합쳐진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carboxy hemoglobin)이 되면 산소가 결합되지 못해 산소 운반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면서 중독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통 일산화탄소의 공기 중 농도가 800ppm 이상인 상태가 45분 이상 지속되면 두통, 매스꺼움, 구토 증세가 나타나고 2시간 이내에 실신하게 된다. 1600ppm 이상에서는 20분 후 두통을 느끼고 2시간이 지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대기 중 일산화탄소 기준은 1시간 평균치 25ppm 이하, 8시간 평균치 9ppm 이하다. 손 교수는 “의학적으로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40%를 넘으면 치사량으로 본다”며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의 정상 수치는 5% 이하이며,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는 사람은 평균 6~10% 정도”라고 말했다.
당장은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며칠 후 지연성 뇌 손상 등 치명적인 후유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회복 환자의 20~40%에서 발생하는 지연성 뇌손상은 회복 후 몇 주 이내에 의식장애, 인지장애, 파킨슨증, 보행장애, 대소변 조절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
급성 중독과 지연성 뇌 손상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빠른 시간 안에 다량의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노출 시간이 짧고 경증이면 호흡용 마스크를 씌운 뒤 100% 농도의 산소를 4시간 동안 공급하면서 중독 상태를 재판정한다.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의 체내 반감기는 5시간이지만 100% 산소를 공급하면 한 시간으로 단축된다.
가스 노출 시간이 긴 중증 환자에겐 고압산소치료를 실시한다. 이 치료는 환자를 ‘챔버’로 불리는 특수 고압산소장치 내에 눕힌 뒤 2.5~3기압의 고압산소를 60~100분가량 흡입케 해 체내 조직과 장기에 다량의 산소를 공급한다. 기압을 인위적으로 높인 상태에서 산소를 주입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산소가 혈액에 녹아들게 된다. 이럴 경우 일산화탄소헤모글로빈의 반감기가 20분까지 단축될 수 있다. 대부분 한 번만 치료해도 충분하지만 증상이 심할 땐 24시간 이내에 한두 번 더 실시한다.
의식이 떨어지거나, 심근허혈 병력이 있거나, 임신부인 환자에겐 초기부터 적극적인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태아의 헤모글로빈은 일산화탄소에 더 강하게 결합돼 후유증이 클 수 있어 임신부는 빨리 치료할수록 좋다. 이 치료법은 일산화탄소중독 외에 잠수병, 공기색전증, 중심망막동맥폐쇄, 뇌농양, 가스괴저, 괴사성 근막염, 화상 등에서 적용할 수 있다.
다만 부작용으로 산소독성에 의한 발작, 폐 손상, 혈관 내 가스색전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치료 중 높은 기압 탓에 귀통증이나 먹먹함, 코 안 통증, 치통, 흉통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블레오마이신(Bleomycin), 시스플라틴(cisplatin), 디설피람(disulfiram), 독소루비신(doxorubicin), 설파밀론(Sulfamylon) 같은 약물을 투약 중인 사람은 담당의사와 상의해 약물을 조절하거나 고압산소치료 여부를 상의해야 한다.
블레오마이신을 투약 중인 사람이 고압산소치료를 받으면 간질성 폐렴, 독소루비신은 심장독성, 시스플라틴과 설파밀론은 상처 치유 억제, 디설피람은 산소독성 방어물질 작용 억제 등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매년 4000여명의 일산화탄소중독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이 전국에 26곳에 불과해 제대로 된 응급처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서울아산병원, 한양대병원, 구로성심병원 등 3곳만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1인용 기기뿐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연탄가스 중독이 빈번했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 300여개 병원이 고압산소치료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며 “하지만 시간당 수가가 4만~5만원에 불과한 데다 연탄이 점차 사라지면서 일산화탄소중독 환자가 줄어 돈이 안 되는 고압산소 치료기는 수익성이 좋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대체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산화탄소중독 환자가 다시 늘며 뒤늦게 장비 도입을 추진해봐도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고압산소치료기 비용은 1인용이 2억, 다인용은 10억원 정도다. 손 교수는 “고압산소치료 장비 미비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가 제 때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면 지연성 뇌 손상 등 치명적인 후유증을 겪거나 사망할 수 있다”며 “현재 미국에선 전국에 고압산소치료실이 1700여 곳, 일본에선 500~6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보건당국이 발벗고 나서 전국 단위의 고압산소치료 설치와 고압의학 전문의 양성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