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의 정의에 따르면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감추고 타인의 감정에 맞추면서 일상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서비스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지면서 업무스트레스와 열악한 처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의사들도 의료서비스에서 감정노동은 상상이상 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소장 우봉식)는 ‘감정노동의 시대, 의사도 감정노동을 하는가?’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감정노동은 ‘외적으로 가능한 표정과 신체적 표현을 만들어내기 위한 감정의 관리’로 육체적・정신적 노동과 별개로 제3의 노동으로 최근 관심을 받고 있다. 감정노동 연구 대상은 주로 서비스산업 종사자(예: 항공 승무원, 호텔 근무자 등)를 대상으로 이루어져왔는데 최근 전 산업 직종으로 확대되고 있고, 보건의료분야 종사자(예: 간호사, 병원 직원 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의사는 병원 존립의 근간이고, 의사의 감정노동은 의사 개인뿐만 아니라 진료 받는 환자, 속한 병원, 더 나아가 보건의료체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의사의 감정노동은 반드시 관리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의사의 감정노동 수준을 측정하는 기초 연구를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본 연구는 문헌 조사 및 설문조사(2020 전국의사조사 KPS, 분석 대상 5,563명)를 통해 한국 의사의 감정노동 수준을 측정하고, 개인적・집단적 특성에 따라 감정노동 수준의 차이와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향후 의사들의 감정노동 관리의 필요성과 시사점을 제시했다.
연구 결과, 한국 의사의 감정노동은 수준은 평균 70.03점(6점 기준 4.2점)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5년 조사된 감정노동종사자 전체 평균인 61.56점*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인구특성별로는 여성(71.69점)이 남성(69.51점)보다 높았으며, 연령이 낮을수록(30대 이하-70.78점), 미혼자(70.92점)가 감정노동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특성별로는 직역은 전임의(71.48점), 개원의(70.70점) 순으로 높았고, 진료과목은 정신과(75.77점), 재활의학과(73.31점) 순으로 높았다. 근무지역은 충남지역(71.21점), 서울지역(70.58점) 순으로 높았고, 근무기관은 의원급 의료기관(70.92점), 군대/군병원(70.58점) 순으로 높았다. 근무기관 형태로 사립 의료기관(69.85점)이 국공립 의료기관(69.70점)보다 감정노동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감정노동과 개인・집단특성은 모두 완전 혹은 부분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사들은 사소한 오해와 편견에 노출되기 쉬운 특수 직업군 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보험이 안 되는 고가의 치료나 검사를 권하기라도 하면 본의 아니게 제 주머니 챙기는 부도덕한 의사로 오해 받기 쉽다. 여기에 더해 사람을 치료하는 특수 서비스 환경이 더해져 감정노동은 한 수위 더 높아진다.
치료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예후를 보이는 것처럼 의료에는 불확실성이 늘 존재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발생하게 될 때 의료사고를 운운하는 환자나 보호자의 따가운 시선을 보듬고 불쾌한 감정들을 수용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들의 폭언과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서도 평정심을 찾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사람들이 바로 의사이다. 일방적인 감정테러에 대한 보호장치도 없이 오직 정신력 하나로 버티는 외로운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엄격한 직업윤리와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이들을 감정노동자로서 인식하고 보호할 것을 주문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명성과 신뢰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의료진들에게 진료실 내 환자의 크고 작은 소란은 부정적인소문과 평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환자들에게 모진 말을 들어도 참아 넘기기 일쑤다. 얼굴 붉힐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넘어가야 하는 의사들의 속사정을 감안한다면 의료진들의 가슴앓이는 끝없는 고행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 소장은 “연구 결과, 한국 의사의 감정노동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향후 의사의 감정노동 관리를 위한 현실적이고 다각적인 방안에 대한 후속연구와 국가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