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박씨(45)는 최근 게임 문제로 아이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가 코로나19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몰래 게임을 하다가 들키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기존에도 집에 있는 시간이면 늘 게임을 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고, 최근에는 부모가 집을 비운 시간, 취침 시간 등에 몰래 게임을 하는 등 중독된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혼내고 PC·스마트폰을 뺏는 등 강하게 대응해봤으나, 충돌만 잦아질 뿐 게임에 대한 욕구나 게임 사용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두뇌훈련 및 지능향상 효과를 광고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얻고 있다. 10대 청소년과 수험생은 물론 인지력이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에서도 두뇌훈련 게임 삼매경에 빠진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두뇌훈련 게임의 효과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스마트폰 게임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오히려 중독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시중에 출시된 두뇌훈련 및 교육용 게임은 주로 두뇌처리 속도와 기억력 향상을 돕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특정 법칙을 따라 숫자나 문장의 순서를 찾거나, 기억력을 통해 그림 퍼즐을 맞추거나, 수학적 사고로 계산 및 도형 문제를 푸는 등 방식이 다양하다. 세계 각국의 유저들과 대결하거나 점수로 순위를 매겨 흥미를 유도한다.
출퇴근 길에 스마트폰으로 두뇌훈련 게임을 한다는 직장인 최모 씨(27)는 “두뇌훈련 앱은 기억력 등 수치가 향상되는 것을 그래프로 보여주는 데다 매번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쉽게 질리지 않는다”며 “평소 잠 자기 바빴던 출퇴근길에 굳했있는 뇌를 활용할 수 있어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파짓사이선스, 루모스랩스, 코그메드, 루모서티 등은 대표적인 두뇌훈련 게임 개발업체로 2000년대 중후반부터 치매 예방은 물론 각종 두뇌능력 개선에 도움된다는 광고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그러던 중 두뇌훈련 게임 개발업체를 상대로한 허위광고 관련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통상위원회는 올해 들어 미국 최대 두뇌훈련 게임업체인 루모서티를 비롯한 많은 업체가 근거 없는 과대광고를 일삼고 있다며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현재 두뇌개발 게임의 효과 논란은 해외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다. 일본 센다이대 연구팀은 2012년 매일 몇 분 이상 두뇌운동 게임을 하면 인지기능이 향상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연구에서 게임 후 뇌영상으로 뇌 전두엽을 확인한 결과 혈류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가 진행 중인 환자가 게임을 하면 의사소통 능력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됐다.
반대로 게임 후 뇌기능 향상 등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연구도 많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아드리안 오웬 박사와 BBC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두뇌게임이 정말 뇌를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영국과학쇼인 ‘방 고즈 더 씨어리(BangGoes The Theory)’ 시청자 중 모집한 1만 1500명을 3그룹으로 나눠 6주일 동안 실험했다.
첫 그룹은 사고력 계획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 두뇌게임을 하게 했다. 두번째 그룹은 단기기억, 주의력, 수학, 공간지각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둔 두뇌게임을 하도록 했다. 마지막 군은 그냥 인터넷을 뒤져 문제의 답을 찾도록 했다. 6주 후 뇌기능을 분석한 결과 세 그룹의 별다른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웬 박사는 “지능 변화는 없었고 단지 실험 참가자들의 게임 실력만 늘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게임기가 두뇌 개발에 도움된다고 결론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고 조언한다. 두뇌훈련 게임의 기억력 향상 및 치매예방 효과를 밝힌 의학적 연구는 아직 부족한 상태다. 두뇌 훈련 게임 및 앱의 효과를 입증하려면 무작위로 뽑은 대상군과 대조군 실험을 거쳐 의미 있는 임상결과를 도출햐야 하고, 같은 결과가 다른 연구팀에 의해 재현되는 등 치밀한 학문적 검증 과정이 필요한데 아직 그런 단계엔 이르지 못한 실정이다.
이어 단순한 반복 게임으로 점수가 올라가는 것을 뇌 기능이 증진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교육용 앱을 내려받는 경우도 있는데 자칫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 미국에선 자녀에게 주려고 앱을 내려 받았다는 부모가 58%에 달했다. 앱스토어에서 시판되는 인기만점의 앱 중 유아와 취학 전 아동용이 72%를 웃돌았다.
한 앱 개발자는 “교육용 제품이라고 광고되는 제품 상당수가 화면 조작을 통한 단순 동작의 반복에 불과하다”며 “사용 연령이 낮다는 특징을 이용해 눈에 확 들어오는 사운드와 애니메이션을 끼워 넣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교육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유헌 뇌과학 연구 원장은 “아이들의 두뇌발달 및 교육 측면에서 검증된 방식은 어떤 문제에 대해 시간을 갖고 생각하거나, 현실세계에서 시나리오를 구성하도록 유도하는 전략 등이 있다”며 “두뇌훈련 교육앱의 화려한 효과와 움직임이 오히려 아이들의 주의를 분산시켜 학습효과를 떨어뜨릴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앱이나 게임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에게 마음 껏 뛰놀 시간을 주고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길러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서 교수는 “두뇌를 활성화하려면 잘 먹고 운동하며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며 “새로운 언어나 악기를 배우는 것도 두뇌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조언했다.